‘세계를 뒤흔든 3일’…南·北·美의 롤러코스터 드라마

/사진=afp=뉴스1

'엔딩'을 앞둔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며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시청자들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말이다.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향한 남북미의 행보도 그랬다. 롤러코스트의 반전과 재반전을 거듭하며 세계를 뒤흔든 3일 간의 드라마를 정리한다.


◇ 24일 → 판을 뒤엎은 트럼프 대통령
지난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며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취소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바로 직전 한국과 미국 등 5개국 취재진을 초청한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약속대로 이행했던 터라 충격이 더했다.

표면적으로는 최선희 외무성의 맹비난으로 백악관이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부상은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언급한 펜스 부통령을 향해 '아둔한 얼뜨기'라며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 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백악관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실 이같은 행동은 그간 북한이 세계 무대에 수차례 보여줬던 태도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북한이 '어깃장'을 놓으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어떻게든 앉히려 노력하며 달래고 그 과정에서 북한은 마지못해 들어주는 태도를 취하며 얻을 것을 얻어내는 게 그동안의 방식이었다. 늘 '판'을 걷어차는 건 북한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공식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북한에 선수를 쳐서 먼저 회담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실제 회담을 취소하겠다는 의지라기 보다는 북한을 상대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공개서한에서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며 여지를 남겨놓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을 인용해 이번 회담 취소를 결정한 것은 "트럼프가 그(김정은 위원장)의 헛소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리한 협상 본능을 발휘해 거꾸로 '기술'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발을 뺀다"며 그가 상대방인 김정은 위원장의 돌발 행동보다 한 차원 높은 움직임으로 당황케 만드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에 대해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요구를 하고 고통을 가한 뒤 협상을 시작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협박과 회유'를 동반하는 부동산 거래 협상 방식을 이번 협상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다고도 분석했다.

◇ 25일 → 북한이 털어놓은 진심
북한은 고자세를 버리고 즉각 대화모드로 나왔다. 북미 정상회담 취소가 전해진 지 약 9시간만에 담화를 발표하면서 최대한 발 빠르게 입장을 발표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발표는 인류의 염원에 부합되지 않는 결정"이라며 "(미국과)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갈 용의가 있다.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 상봉이라는 중대 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여왔다"며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김 부상의 이름으로 나온 성명이었지만 '위임에 따라'라는 표현이 있는 만큼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보내는 답신이나 마찬가지다.

회담 취소의 명분이 된 최 부상의 담화에 대해서는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소위 '밀고 당기기'를 하는 중 미국이 손을 놓아버리자 '밀었다고 정말 밀려나가는 게 어딨니'라는 투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다 북한은 "'트럼프 방식'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며 북미 정상회담 성사가 절박한 속내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북한의 유화적인 태도에 트럼프 대통령은 더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한국시간 25일 밤 9시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발표를 받은 것은 매우 좋은 소식"이라며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례없이 공손한 김 부상의 담화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원하는 답이 된 셈이다.

◇ 26일 → 문대통령의 오작교
화룡점정은 26일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4.27 정상회담 이후 29일 만이다. 통일각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27일 기자들에게 직접 2차 정상회담에 대해 설명하며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어제 다시 한번 분명하게 피력했다"며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배학화 할 경우 미국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점을 신뢰할 수 있는지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김 위원장에게 앞선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경우 적대관계를 확실히 종식시킬 뿐 아니라 경제적 번영도 돕겠다'고 한 그의 의사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불안감을 달래는 동시에 미국을 향해선 북한의 의지를 확실히 전달해주는 '오작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사전에 전해들은 미국은 당장 북미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할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 협상이 매우 잘 돼왔다"며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동안에도 (북미 회담 관련)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장소는 말할 수 없지만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전했다. 북미 간 협의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을 태그하며 "주목하라. 미국과 세계가 안전해지는 결과가 곧 나온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전제로 싱가포르에 회담 실무팀도 예정대로 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