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MT리포트] 나는 왜 아기를 안고 '베이비박스'에 갔나

머니투데이
  • 박보희 , 안채원 인턴 기자
  • 카카오톡 공유하기
  • 카카오톡 나에게 전송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2018.11.21 18:23
  • 글자크기조절
  • 댓글···

[the L] [축복과 절망 사이] ② 사회안전망 벗어난 청년빈곤층…벼랑 끝에서 찾은 '베이비박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사진=안채원 인턴기자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사진=안채원 인턴기자
은혜씨(가명)가 22살이던 4년 전.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던 은혜씨는 자신이 임신 5개월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남자친구와는 이미 헤어진 뒤였다. 어지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 아빠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낳아야겠다고, 혼자서라도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2년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사람들이 미혼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웠고, 그들이 바라볼 시선이 무서웠다. 병원도 갈 수 없었다. 병원비도 부담이 됐고, 병원이라고 미혼모에 대한 시선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헐렁한 옷으로 배를 감추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알려야할지,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는건지,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지, 아니 그래도 낳아서 키워야지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찾아보지도 않았다. 미혼모니까,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도움을 청하려면 미혼모라고 말해야하는데,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정부라고 뭘 도와줄수 있을까. 은혜씨는 알지 못했고, 인터넷을 검색해봐야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인터넷에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법' 대신 '입양을 보내는 법'이 있었다. '정 안 되면 입양이라도 보낼 수 있겠지' 막막한 가운데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를 수천번쯤 되뇌였을 때, 진통이 왔다. 임신 사실을 안 뒤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진료 기록이 있어야 분만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대학병원으로 갔다.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은혜씨가 누워있는 사이, 병원이 가족을 찾아 연락을 했고, 친오빠가 병원에 왔다. 은혜씨의 임신과 출산은 그렇게 가족에게 알려졌다.

그렇게 낳은 아기는 아팠다. 아기는 한 달 간 입원 끝에 퇴원을 했지만, 앞으로도 여러차례 수술이 필요했다. 친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결혼한 오빠 집에서 계속 함께 살 수는 없었다. 살 곳도 없는데, 혼자서 일하며 아픈 아기를 돌볼 수도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터넷을 뒤졌고, 비로소 베이비박스란 걸 알게 됐다.

아기를 안고 베이비박스에 갔다. 그곳에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주민센터는 은혜씨가 월급을 받고, 4대 보험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충분히 키울 수 있다"며 ""우리가 해줄 것은 없다"고 했다. 그곳에서 말하는 요건은 일을 하면서는 충족할 수 없었다. 일을 하지 않아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지원은 아픈 아기와 함께 살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입양을 생각했지만 아픈 아기를 데려갈 양부모는 찾을 수 없었다. 아기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아픈 아기를 두고 돌아설 수도 없었다. 갈 곳 없던 은혜씨는 그렇게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에서 아기와 함께 살게됐다.

후원을 받아 아기는 몇차례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수술이 잘못돼 아기는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 은혜씨에게 아기가 찾아왔다가 그 품을 떠나는 짧은 시간 동안 은혜씨는 정부의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아기 아빠는 이 모든 일을 알지 못한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은혜씨는 많은 부모를 만났다.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울면서 찾아와 아기를 맡겨두고, 수개월 뒤 돌아와 다시 아기를 찾아가는 어린 엄마가 있었다. 아기와 함께 살 준비가 될 동안 조금만 아기를 맡아 달라고 호소하는 어린 부모가 있었다. 아기를 키울 수 없었던 한 외국인 엄마는 한국에서 아기를 낳아 본국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방법을 찾지 못한 엄마는 결국 아이를 두고 떠났다. 출생신고를 못해 학교도 병원도 못가는 '없는 사람'으로 가난하게 사느니 시설에 들어가는게 더 나을 거라고, 운이 좋아 착한 양부모를 만날 수도 있을거라고, 엄마는 짐작한 듯 했다. 한국은 부자나라니까.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아기를 지키고자 나름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했다고 은혜씨는 기억한다.

'베이비박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윤지 비투비(BtoB) 대표는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와 부모 500여명의 정보를 분석한 결과 8가지 공통 요소를 발견했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거주지가 없음 △한부모로 남겨짐 △가족이 부재함 △임신과 피임에 무지 △아기가 건강에 이상이 있음 △사회가 정의한 전형적인 혼인관계가 아닌 관계에서 아기가 태어남 △원치않는 성관계(성폭행 등)로 아이를 낳은 경우 등이다.

김 대표는 "많은 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온) 부모들이 무책임하다,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부모들은 그들 자체가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청년 빈곤층으로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마지막에서야 결국 베이비박스를 온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여러 정부 기관이나 입양기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베이비박스로 온 사례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겼다가 다시 찾아간 부모가 30%에 달한다. 이들이 아기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결코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준다면 기꺼이 자신의 아기와 함께 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클릭

오늘의 꿀팁

  • 날씨
  • 건강쏙쏙

많이 본 뉴스

부동산 유튜브 정보채널 부릿지
머니투데이 기업지원센터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