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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향평준화한 SF…“하지만 경이감대신 분노 표출하는 작품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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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소연 SF작가
  • 2018.11.2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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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정소연 SF작가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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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SF작가. /사진=김창현 기자
이번 한국과학문학상 응모작 심사는 상당히 어려웠다. 중단편 부문 응모작들은 전반적으로 고르게 우수해 본심 대상작을 선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중단편 부문 본심 대상작을 각 세 편씩 고르기로 했으나 5명 중 4명의 심사위원이 4편을 고른 것도 이런 상향 평준화 추세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본심 과정에서도 낙선작과 당선작 사이의 간극이 넓지 않아 심사위원들이 여러 작품을 놓고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논쟁했고, 더 많은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없다는 점을 크게 아쉬워했다.

반면 장편 부문 응모작들은 중단편에 비해 수준이 현저히 낮았다. 글의 호흡이나 전개, 장르성이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응모작이 많아 당혹스러웠다. SF가 역사적으로 단편 중심의 장르라는 점이나 장편 탈고는 기성 작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중단편 부문과 장편 부문의 수준 차이가 아주 컸다.

장편 부문 수상작 ‘기파’는 장편 응모작 중 단연 돋보이는 글이었다. 고심해 다듬은 흔적이 역력했고 탄탄하고 충실한 전개가 훌륭했다. 전반적으로 고전적인 면은 있으나, 무리한 참신함보다는 SF로서의 건강함과 안정성에 무게를 둔 작품이었고,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수상자의 발전가능성에 기대가 크다.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단일성 정체감 장애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과 우수상 수상작 ‘개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각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대상 혹은 우수상으로 꼽은 작품들이었다. 두 작품 모두 각자의 장점이 뚜렷했다.

SF 작가의 세계에 온 당선자들을 환영하며, 동료이자 독자로서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심사하며 느낀 점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로봇은 이미 대단히 식상한 소재다. 흔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 될 것 없지만, 남들도 다들 쓰는 소재로 남들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란 아주 어렵다.

특히 공모전에 응모할 때는, 같은 소재로 비슷한 반전을 시도한 글 수십 편을 읽으며 심사위원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전략적으로라도 생각했으면 한다. 아예 안드로이드나 인공지능이 등장하지 않거나 흔한 소재를 정색하지 않고 다루기만 해도(달리 말해, 소재를 이용한 무리한 반전을 시도하지 않기만 해도) 괜찮아 보일 정도였다.

둘째, 비슷한 장면묘사가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파트너 형사나 수사관들이 수상한 빈 공간을 탐색’,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자들’, ‘아내와의 부부싸움’, ‘낯선 여성에게 불현듯 매혹된 순간’ 등이다. 이런 장면에서 여러 응모작의 기술(記述)이 천편일률적으로 흡사했을 뿐 아니라, 마치 다들 동일한 2차 자료를 참고한 것처럼 실재감이 결여됐다.

셋째, 제목을 신중하게 짓기를 권한다. 좋은 제목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면, 차라리 응모 날짜를 제목으로 하는 편이 인공지능, 사창가, 자궁 같은 단어를 제목에 쓰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제목도 작품의 일부다. 다른 책, 음악, 영화 등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영문 혹은 영문자를 사용한 제목도 많았는데, 한국문학에 외국어를 사용할 때에는 그 사용이 필요하거나 적절한지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넷째, 존재론적 고민은 아주 오래된 근본적이고 철학적 질문이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가, 기계가 인간인가 아닌가, 로봇은 인간의 적인가 친구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같은 거시적 주제 외에 ‘소설가’로서 ‘소설’을 통해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정말 하나도 없는지, 독자와 이야기하고픈 다른 질문은 없는지 더 사유하라. 절대다수의 응모작들이 이런 철학적 질문에 교조적으로 함몰돼 있었다.

다섯째, 많은 응모작에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문제점이었다. SF의 미학은 분노가 아니라 경이감에 있다. 애당초 분노는 SF에서 가장 잘 다루어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어떤 작품이 전하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 분노라면, 이는 작가가 장르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하물며 이유나 논리가 불명확한 거친 분노는 독자를 괴롭힐 뿐이다. SF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당신의 글을 읽는 독자를 존중하라. 창작은 화풀이의 도구가 아니고 독자는 화풀이의 상대가 아니다.

<본심>

내가 선정한 본심작은 ‘로보티카’, ‘두 개의 바나나에 관하여’, ‘너를 사랑하는’, ‘소년시절’ 4편이었다. ‘두 개의 바나나에 관하여’는 무엇보다도, 눈에 띄게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의 폭을 넓히는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들이 두루 동의했다.

‘소년시절’은 매끄러운 청소년 SF다. 이번에 비슷한 소재의 응모작이 많았는데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작가가 과욕을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충실히 끌어낸 점이 돋보였다. 지금 한국의 작가가 쓸 수 있고, 독자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모범적인 글이었다.

‘로보티카’는 문장과 전개를 다루는 솜씨, 관계를 빚어내고 드러내는 과정이 두루 우수했다. 다만 주제와 소재 간의 관계가 너무 약해 당위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고, SF 공모전에 적합한 작품인지 자체에 심사위원 간 이견이 있어 당선에 이르지 못했다. 어떤 경로로든 곧 등단하리라 믿는다.

‘너를 사랑하는’은 흔한 설정을 세련되게 끌어간 점이 돋보였다. 다만 인물이 너무나 전형적이고 관계가 평면적이었다. 글에 깊이를 부여할 방법을 고민해 보기 바란다.

<예심>

한편, 예심 단계에서 고민했던 다른 작품들은 ‘접시도둑’, ‘양분리의 깊은벗 이야기’, ‘이름을 붙이면’이었다. ‘접시도둑’은 흥미로운 설정을 깔끔하게 잘 풀어냈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좋았다. 그러나 엄마가 사람이 아니라 종이인형 같았고, 아빠에 대한 심경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도 반전이 무의미했다. 초중반이 좋은 글인 만큼, 결말에 실은 힘을 조금 빼고 이야기에 중요한 인물에게 더 생기를 불어넣는 방향으로 손보면 한결 매력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양분리의 깊은벗 이야기’는 현실감 있는 배경과 체계적인 전개가 눈에 띄는 능숙한 글이었다. 그러나 로봇 친구는 SF에서 매우 낡은 소재다. 똑같은 전개를 이 글과 거의 똑같이 풀어간 글이 기성 작품은 물론이고 이번 공모전 투고작 중에서도 다수 있었다.

이 정도로 유사한 글이 많은 소재와 설정으로는 아무리 잘 써도 출판이나 수상이 쉽지 않다. 이 글의 설정과 배경을 살리되, SF를 더 많이 읽어보고 다른 소재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이름을 붙이면’은 매끄럽게 잘 읽히는 작품이었으나 설명이 과해 약간 지루했고, SF로서는 소설 내 과학기술, 시대상, 인물 간의 내적 정합성이 아쉬웠다.

수상자들을 거듭 축하하는 한편, 낙선자들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좋은 작품이 많아, 한국 SF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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