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하늘에서라도 꽃 피울 수 있기를…

21일은 29명이 사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 1월 밀양 요양병원 화재로 36명이 사망했고, 11월엔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로 7명이 사망했다. 그렇게 한 해가 마무리되나 싶더니 지난 18일 강릉의 한 펜션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개인체험학습을 떠났던 고3 학생 10명 중 3명이 보일러 가스 누출로 사망했다.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달리한 아이들과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감내해야 하는 유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유족들의 고통에 비할 바 아니지만 기자들에게도 이런 참사나 재난을 취재하는 것은 고역이다. 취재는 무엇보다 이 같은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 사고의 원인과 제도적 문제, 책임 소재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뤄진다. 문제는 취재과정에서 벌어진다. 경쟁에 과도하게 매몰되다 보면 본질을 벗어나 정확보다 속보에, 객관적이기 보다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찾게 된다. 나아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피해자 보호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뉴스는 흔히 제2의 구조자라 한다. 재난이나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를 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영국 BBC의 재난 보도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으면 사건에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BBC는 이보다 보도를 접한 희생자 가족이 받을 고통과 충격이 훨씬 크다고 판단한다. 나아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희생자나 가족의 근접 촬영은 물론 인터뷰도 요청하지 않는다. 일본의 방송사들도 대형 사고 발생 시 방송사에서 가급 적 피해자와 가족을 상대로 한 스케치 뉴스는 내보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비로소 ‘재난보도준칙’이 만들어졌다. '전원 구조' 오보 양산에 무차별적인 취재 경쟁, 이에 다른 선정적 보도로 호된 질타를 받은 뒤였다. 개별 언론사가 아닌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5개 단체가 모여 이런 준칙을 만든 사례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준칙은 총 3장 42조로 구성됐다. 길고 복잡하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특종에 눈이 멀어 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4년여가 흐른 지금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심지어 ‘취재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왔다. 보도 선점에 급급해 피해 학생들과 유족,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결여됐던 탓이다. 이들에 대한 취재는 최대한 자제하고, 하더라도 예의를 갖췄어야 했다.


재난영화 ‘터널’에는 생존자가 있는 터널 속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각 언론사가 드론을 떼로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취재 중단’ 청원을 접하며 맹목적으로 돌진하던 드론이 떠오른 건 왜일까. 이번 사건을 다루며 후배들에게 취재를 독촉해 과도한 속보 경쟁을 벌이진 않았는지,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피해자나 피해자 주변인 보호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본다. 머니투데이는 과연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했을까. 공포와 슬픔에 빠진 피해자와 유족, 주변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기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전달해 주려 노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칼럼을 탈고하는 오늘 저녁 사회부 송년회가 예정됐다. 연일 이어진 취재로 고단해 하는 후배들과 재난보도준칙이 혹 노트북에서 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마주하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보도 윤리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지면을 빌어 머니투데이를 대신해 유족, 친구, 교사 등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어른들의 잘못으로 안타깝게 희생된 아이들이 하늘에서라도 꽃을 피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