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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른 ‘위대한 드러머’와의 이별…그 선한 눈매, 과묵의 배려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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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금평 기자
  • 2018.12.2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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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재즈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드러머 전태관 별세…음악 실력과 따뜻한 인간미 두루 갖춘 ‘한국 대중음악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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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암투병 끝에 향년 56세로 생을 마감한 전태관.
전태관은 인터뷰 때마다 나서는 법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기회는 늘 김종진에게 넘겼다. 선한 눈매로 짧은 말만 던지는 전태관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과묵의 배려심’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듯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퓨전 재즈 그룹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이 지난 2008년 8번째 음반 ‘아름답다, 아름다워’를 냈을 때, 음반에서 드럼의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전태관은 이렇게 말했다. “드럼을 치는 제 역할이 축소됐다고 해서 서운하지 않아요. 음악적으로 종진이를 믿기 때문이죠. 종진이는 어떤 장르를 가져와도 재포장하고 재구성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그것이 바로 20년간 봄여름가을겨울이 생존해 온 비결 아닐까요?”

두 사람이 30년간 찬란한 우정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세를 과시하는 각자의 개성보다 신뢰할 친구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어느 한 사람의 희생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카루스처럼 날아오르기만 하는 이상주의자였는데, 태관이는 촛농으로 만든 날개 달고 날면 떨어진다고 늘 옆에서 말린 현실주의자였죠. 그렇게 서로 달라도 사이가 유지된 건 단점을 보는 시각 때문이었어요. 상대방의 단점을 바꾸고 싶어하는 장점 많은 이의 욕망이 크면 클수록 사이가 나빠지지 않겠어요?”(김종진)

김종진이 보는 전태관은 ‘유(柔)’한 친구다. 음악인의 기질이 보통 예민하고 까칠하고 럭비공 같은 성격으로 상징되듯, 김종진도 그렇게 친구를 음악적으로 괴롭(?)혔다. 하지만 전태관은 언제나 웃으며 받거나 묵묵히 맡은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전태관이 신장암으로 수술받고 어깨뼈로 암이 전이돼 다시 병원 신세를 졌을 때, 안부를 묻는 기자 전화에도 밝게 웃으며 되레 상대방의 안부를 걱정할 만큼 그의 배려심은 돋보였다.

퓨전재즈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전태관(왼쪽)과 김종진.
퓨전재즈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전태관(왼쪽)과 김종진.
김종진은 친구 암의 재발 소식에 밤마다 울었다. 가족들 몰래 아래층 계단에서 눈물을 닦아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김종진은 친구를 위해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나 33일간 900km를 걸으며 “드럼은 안 쳐도 된다고. 친구의 건강만 달라”고 기도했다. 산티아고 성당 기둥을 만지며 기도하면 딱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한 가닥 희망도 결국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두 사람은 1981년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재즈피아니스트 정원영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김종진은 허비 행콕의 명곡 ‘카멜레온’(Chameleon)을 기차게 연주하던 전태관을 보고 “아이코, 이 친구 봐라”하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펑크(funk) 스타일의 곡을 연주하는 이가 드물어, 이런 스타일을 연주하면 ‘엘리트 뮤지션’으로 손꼽히기 일쑤였다.

두 사람은 바로 의기투합해 1986년 김현식의 백밴드로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이름을 처음 알렸다. 88년 독립해 내놓은 첫 음반은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실력파 연주자들의 세계가 물씬 묻어있었다.

무엇보다 전태관의 드럼은 스피커를 폭발시킬 만큼 강한 파워와 8비트 정박자를 넘어 16비트 재즈 같은 맛깔난 기술로 당시 밴드 음악에서 가장 소외된 악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드럼이 기타 못지 않은 주류 악기라는 사실을 빠르게 각인시켰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어떤 이의 꿈’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히트곡은 물론이고,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 ‘페르시아 왕자’ 같은 근사한 연주곡을 음반에 실어 뮤지션의 정체성도 잃지 않았다.

전태관은 생전 인터뷰에서 “외국 여행 갈 때 직업란에 연예인이라고 쓰기 어렵다. 연주자란 표현이 맞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한 바 있다.

드러머로서 전태관은 폭발력과 안정감, 16비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펑키(funky) 리듬으로 대중과 전문 연주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드러머로서 전태관은 폭발력과 안정감, 16비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펑키(funky) 리듬으로 대중과 전문 연주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김종진은 최근 데뷔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태관이와 ‘투 두 리스트’(To do list)를 만들어 모두 다 이뤘는데, ‘무대 위에서 죽자’만 못 이뤘다”며 “음악적 실력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자존심’(Pride of K-Pop)이라는 수식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김종진은 최근 음악계 후배들과 함께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돌 헌정 프로젝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을 음반으로 만들어 발매했다. 수익금은 전태관에게 전달할 예정이었다.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보면/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봄여름가을겨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중에서)

힘들고 불안한 국민에게 널리 전파한 이 희망가는 이제 고인을 위해 준비돼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우리가 보내는 박수와 응원을 부디 받아주길.

지난 4월 암으로 부인을 잃은 전태관은 향년 56세로 27일 밤 오랜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9시다. 02-30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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