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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알파스타의 10승 1패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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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쇼미더스타크래프트저자
  • 2019.01.29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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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스타크래프트' 저자 이성원이 본 알파스타와 인간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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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딥마인드 사무실에서 열린 알파스타와 폴란드의 '마나'(MaNa) 그레고리 코민츠 선수의 대결을 긴장한 채 보고 있는 딥마인드 팀의 모습. /사진=딥마인드 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25일(현지시간)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사인 딥마인드의 홈페이지에 흥미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자사가 개발한 스타크래프트용 인공지능 '알파스타'(AlphaStar)가 12월10일과 19일 2명의 프로게이머와 5판씩, 총 10판 펼친 경기내용을 해설한 것이다. 결과는 10승 0패로 알파스타의 압승이었다. '알파고'(AlphaGo)에게 압살당한 바둑계의 3년상(喪)을 채 끝내기도 전에 들려온 또 다른 부고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오랫동안 즐기고 분석해온 한 명으로서 인정할 수 없었다. 상대방과 나의 활동 정보가 모두 공개되고, 361개의 점이라는 한정적인 전장에 흑과 백이 번갈아가며 한 수씩 두는 바둑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활동 정보를 능동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10^26(10의 26승)개 픽셀 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십가지의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유닛을 움직여야 하는 스타크래프트는 인공지능이 아직까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10판의 경기를 모두 보고나니 그런 나조차도 알파스타의 승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는 나름대로 대등한 조건에서 펼쳐졌다. 프로게이머들의 수준도 한국선수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높았다. 특히 마지막 다섯 판을 펼친 폴란드의 '마나'(MaNa) 그레고리 코민츠 선수는 세계 최상위권 실력자다. 주 종족도 알파스타와 같은 프로토스기 때문에 최고수준급의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신생 인공지능이 이긴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알파스타의 승리가 치열한 머리싸움, 즉 전략에서의 우위보다 하드웨어의 우위에 바탕을 둔 전술적 우위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물론 프로브(자원 채취와 건설을 담당하는 기본 유닛)를 과도할 정도로 생산하거나 한 종류의 병력만 대량 생산하는 특이한 전략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경기를 전략보다는 압도적인 병력 컨트롤로 이긴 경향이 크다. 전투의 승리만으로 전쟁의 승리를 만들어낸 격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비라도 한듯 딥마인드는 알파스타의 능력에 핸디캡을 부여한 채 이번 경기를 진행했다. 알파스타의 APM(Actions Per Minute·1분당 내린 명령의 수)을 프로게이머의 평균 수준인 300보다 낮은 277로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명령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내리는 인공지능의 277APM과 마우스와 키보드를 통해 아날로그하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 인간의 300APM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국내외 게임커뮤니티의 중론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핸디캡을 부여하지 않을 경우 인간은 이미 알파스타를 이기지 못한다는 얘기도 된다. 제 아무리 신묘한 전략을 들고 나와도 결국 전술적 한계에 부딪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양으로 질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가령 알파스타는 마나 선수와의 대결 2주 전에 완성됐으나, 그 2주 동안 사람으로 치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200년 치의 경기를 연습했다고 한다. '스타크래프트의 황제' 임요환도 평생 20년밖에 못했다.

이번 경기 결과는 결국 양적 우위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완벽해질 것임을 증명했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됐다. 오히려 이쯤에서 우리는 인간과 기계, 오락과 생활의 경계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1차 산업혁명 이래 인간은 기계에게 많은 것을 위임해왔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말과 인간의 다리는 쉴 수 있었고,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더 자세한 풍경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말의 발보다 빨리 달리는 기계가 나타났다고 해서 육상선수와 승마선수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람의 손보다 정교한 기계가 나타났다고 해서 회화(繪畫)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스포츠와 문화예술의 영역은 오직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고, 인간이기에 의미가 있다.

지(智)의 스포츠인 바둑과 e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생각을 대신 해주는'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바둑과 스타크래프트에서 인공지능의 승리는 예고된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인간의 영원한 패배로 단정짓고 허무주의에 빠질지, 기계의 청출어람으로 인식하고 스승의 미소를 지을지는 오로지 인간이 결정할 몫이라 하겠다. 단 기계는 게임을 이기도록 프로그래밍됐고, 인간은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프로그래밍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알파스타와 두 명의 프로게이머가 치른 경기에 대한 해설이 끝나고, 마나 선수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11번째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마나의 승리였다. 하지만 알파스타는 끝내 'GG'(Good Game·경기 패배 시 항복 선언으로 스타크래프트 플레이들 사이에선 매너로 자리잡은 말)를 치지 못했다. 아직은 패배를 인정하고 즐거운 게임이었음을 인식하도록 프로그래밍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성원 저자는 '쇼 미 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로 배우는 군사·경제·정치'(동아시아 펴냄·372쪽)를 썼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치트키'를 통해 군사·경제·정치 현안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한반도의 현실도 '스타'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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