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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잘 죽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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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성희 콘텐츠총괄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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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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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설 연휴 때 집안을 정리하다 옛날 사진을 보게 됐다. 10여년 전 사진을 보며 ‘이 때만 해도 젊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밝고 환하던 그 때, 난 그 아름다움을 맘껏 누리며 행복하지 못했다. 늘 일에 쫓겼고 남과 비교하며 더 갖고 싶고 더 누리고 싶어 마음은 조급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옛날 그 일상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돌아보면 사진 속 환한 과거의 나로부터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십수년의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고 일을 하며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구나, 살아보니 별 인생이 없구나, 반복되는 일상이 정말 소중하구나, 내 옆의 나무가 그리고 자연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어찌 보면 소소한 깨달음들뿐이다. 이 작은 깨달음을 얻으려 나는 십수년의 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직면할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는 또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결국 종착역은 죽음인데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10여년간 죽음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에서 찾았다. 결론은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삽화=김현정 디자이너
/삽화=김현정 디자이너

첫째, 죽음이 끝이 아닐 수 있다=나는 죽음 이후에 대해 모른다. 죽으면 우리의 의식도, 혼도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 이후에 새로운 생이 펼쳐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음 이후에 아무 것도 없다면, 이 세상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별 잘못도 없이 끝없는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주면서도 죽을 때까지 잘만 살아간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이 세상에서 완벽한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다. 정의를 위해서라도 사후생이 있어야 한다고, 당위론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인간의 도덕윤리가 성립하려면 사후생의 존재가 요청된다”고 말했다.

정현채 교수는 책에서 심장이 멎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경험을 소개하며 죽음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벽이 아니라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정신과 의사 카를 구스타프 융도 “죽음은 사라지는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란 말을 남겼다.

중요한 것은 이생에서의 삶이 죽음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우리는 이 세계에서 배운 것을 통해 다음 세계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전생을 탐색한 미국의 신비주의자 에드거 케이시란 인물에 대해 존 G. 풀러가 기록한 ‘에드거 케이시의 삶의 열 가지 해답’이란 책에 따르면 인간이 탄생이나 능력에서 불공평한 것은 조물주의 변덕이나 유전자의 맹목적인 메커니즘 때문이 아니라 과거 생의 행적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생에서 완수하지 못한 영적 성장을 위해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좋은 죽음이 좋은 삶을 만든다=영국의 정신과 의사 피터 펜윅은 ‘죽음의 기술’이란 책에서 “훌륭한 죽음에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며, 그 일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화해”라고 지적했다. 화해는 죽어가는 사람이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남을 사람들이 평화롭게 이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버드대와 예일대에서 강의하다 영성 지도자로 활동한 헨리 나우웬은 ‘거울 너머의 세계’란 책에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맬 때 느꼈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진정한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과 나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기 직전에 빚진 닭 한 마리를 대신 갚아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이런 글들과 일화들을 종합할 때 가장 평온한 죽음은 원한이나 원망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죽음을 맞이 하려면 남에게 상처나 한을 남기지 않도록 사는 것, 남겼더라면 즉각 용서를 구하는 것, 그리고 자신도 원망 없이 사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셋째, 죽음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만든다=이 생에 죽음이 있어야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와 죽기 전까지 완수해야 할 목적을 찾는다. 죽음이 없다면, 혹은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산다면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늘 새로운 쾌락과 자극을 찾을 것이고 무한하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일을 하든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생에 주어진 시간이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즉 늙어감에 따라 더 가치 있는 일, 더 소중한 일이 무엇인지 고심하게 된다. 그리고 앞서간 많은 현인들이 죽음이 가까울수록 깨닫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나 하나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쏟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는 ‘종교를 넘어선 종교’란 책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살 때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96세 때인 2015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백 살 가까이 나이가 드니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지고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 보람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라고도 했다.

윤회를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영적인 성장을 위해 여러 생을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성장의 잣대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이다. 기독교도 본질은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데 있다. 이 사랑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일평생을 살아가고 이 사랑으로 사후생이 결정된다.

정현채 교수가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생과 사란 진주 목걸이처럼 연결된 것이고 좋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했던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다.

덧붙임 1)글에 나오는 인용문은 정현채 교수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에서 재인용했습니다.

덧붙임 2) 지난 2월2일에 출고한 '"내가 미쳤지. 결혼은 왜 했냐" 생각될 때 버핏의 3가지 조언'에 대해 크게 2가지 지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워런 버핏이 첫 부인과 헤어졌는데 부부관계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버핏은 첫 부인인 수잔과 1977년부터 별거에 들어갔고 이후 16살 연하의 아스트리드 멘크스와 살림을 차렸으나 수잔과 법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버핏과 찰리 멍거는 동성의 동업자 관계인데 부부관계와 비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모두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업자 관계도 갈등이 생기기 쉽고 깨지기 쉬운데 어떻게 40년간 단 한번의 다툼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올 수 있었을까'란 궁금증에서 출발해 그 비결을 찾아 부부관계에 적용해 봤습니다. 모든 좋은 관계의 기반은 비슷할 것이란 단순한 생각이었죠. 앞으로는 더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해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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