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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국처럼 될 수 있다"… 가난한 나라의 발버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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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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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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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②] 식민지 잔재, 토지개혁 실패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 극심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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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필리핀 파나보시의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사진=위키커먼스
"우리도 한국처럼 될 수 있다"… 가난한 나라의 발버둥
조만간 '필리핀'(the Philippines)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사라지고 마할리카(Maharlika·따갈로그어로 '귀족'이라는 뜻)라는 나라가 생길지 모르겠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달 국명을 개명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이라는 국명은 스페인 통치시절(1521~1898년) 스페인 왕 필립 2세 왕의 이름을 따 명명했기에 식민 통치의 잔재라는 것이다.

국명에 스페인의 흔적이 남았듯, 필리핀엔 사회·정치·문화·경제적으로 곳곳에 식민지의 잔재가 남아 있다. 가장 큰 흔적은 필리핀의 경제상황에 남겨졌다. 스페인(1571~1898년)과 미국(1898~1946년)의 식민지, 그리고 그 사이 잠시 일본의 필리핀 점령기(1942~1945년)까지 거치면서 오랜 식민지배 기간 끼친 여러 영향들이 필리핀의 지금의 모습, 세계 최빈국의 모습을 만들었다.

IMF에 따르면 필리핀의 1인당 명목 GDP는 지난해 기준 3095달러로 세계 131위, 세계 최빈국이다. 물론 필리핀은 6.1%(2015년) 6.9%(2016년) 6.7%(2017년) 6.7%(2018년) 등 매년 높은 GDP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 GDP 성장률은 중국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동남아시아에선 '필리핀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2013년 2월 다바오시에서 열린 필리핀개발포럼에서 모투 코니시 세계은행 디렉터도 "필리핀은 더 이상 동아시아의 아픈 손가락이 아니라,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말했다. 2013년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피치레이팅스는 필리핀의 성장이 ‘안정적’이라면서 BBB-를 부여했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필리핀을 2012년 '세계 경쟁력 순위' 10위에 뒀을 정도다.

하지만 어쩐지 아직 필리핀은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발전을 거듭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빈익빈부익부'다. 시사 매거진 디아틀란틱(The Atlantic)은 2013년 5월7일 "필리핀의 발전상은 대부분의 필리핀 서민들에겐 그저 '숫자'로만 느껴진다. 빈민가는 언제나처럼 황량하고, 경제 호황은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영향을 끼쳤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전경/사진=위키커먼스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전경/사진=위키커먼스

2012년 포브스 아시아에 따르면 필리핀 40대 부유 가문의 총 재산은 2010년에서 2011년 1년 사이 37.9%(130억달러) 증가해 474억달러를 기록했다. 2013년에서 2014년 1년 사이에도 또 13%가 늘어나 724억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필리핀 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필리핀의 일일 최저임금은 466페소(약 10.31 달러)로, 3년간 겨우 4.5% 증가했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임금은 그대로니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필리핀 5세 이하 아동의 32%는 영양실조에 따른 심각한 발육부진을 겪고 있으며, 필리핀 국민 중 60%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병원 등 의료케어를 받지 못한다. 2009년 기준 필리핀인의 26.5%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빈곤율(2015년 기준 21.6%)은 또 다른 세계 최빈국 아이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필리핀의 빈익빈부익부가 이처럼 심각한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농업 종사 인구가 필리핀 빈곤층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며 "대다수 농민들의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토지개혁의 실패에서 왔다"고 지적한다. 2014년 기준 필리핀의 노동가능인구 중 30%는 농업에 종사한다.

장소영은 논문 '필리핀의 토지개혁'(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동남아학과, 2000년)에서 "정부가 수없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토지개혁이 계속 실패하거나 한계가 많았던 원인은 과거 식민지배기간에 만들어진 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때 구축한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중심으로 지주계급이 국가의 정책까지도 방해하거나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토지개혁'이란 전후 독립 탈식민지 국가에서, 경제적 근대화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로의 전환을 목표로 국가 주도하에 지주-소작관계의 해체를 추진하는 개혁정책을 일컫는다. 즉 단순히 소득 불평등을 해결해 농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적 외에 지속적으로 권력을 장악해온 통치계급의 정치경제적 기반을 제거한다는 목적을 가지지만, 필리핀은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통치계급을 공고화했고, 탈식민지에 이르러서도 이들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들은 지속적인 사회 개혁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5년 12월1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 아이가 불에 탄 집을 바라보고 있다.
2015년 12월1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 아이가 불에 탄 집을 바라보고 있다.
필리핀은 식민지의 유산인 플랜테이션 위주의 농업형태를 띠고 있다. 스페인은 18세기 말 식민지 경영비용을 현지에서 조달하기 위해 사탕수수와 코코넛을 비롯해 차·고무·바나나 등 열대작물을 중심으로 플랜테이션을 도입했다. 이 플랜테이션 체제가 스페인 식민지 기간 지주 계급에게 '부의 쏠림'이라는 선물을 줬다. 지주 계급은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체제(아시엔다·Hacidenda)를 강화해 부를 축적했다.

방법은 이랬다. 지주들은 개간된 땅을 무작위로 강탈하고 관료와 결탁해 관료에게 바칠 토지세 등 각종 세금을 농민에게 부과했다. 당연히 소수의 자작농도 파산했다. 그들의 토지는 대지주의 소유가 됐다. 스페인 당국은 이 같은 권력 쏠림을 방관하고, 오히려 부추겼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입장에서도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편이 경영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지주들의 힘이 세진다는 건 국가의 독립성과 자율성엔 제약이 걸린단 걸 의미한다. 독립 이후 필리핀은 지주제 폐지와 자작농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 1955년 토지개혁법 이래 점진적이지만 끊임없이 토지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해집단을 만들어 국가 주도의 토지개혁에 반대했다. 필리핀농업회의소(PCA), 전국미곡생산자협회(NRPA), 전국사탕수수농장주협회(NSPA)등은 의회 밖에서 개혁법안의 반대를 주도했다. 시민단체와 자선단체, 협동조합과 은행까지 소유한 지주 계급은 토지재분배정책을 공산주의적 사고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또 지주 계급은 번번이 사탕수수와 코코넛을 비롯한 지주 소유의 수출용 재배작물을 농지분배의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강제규정을 두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그리고 '온건하고 건전한 반공국가'를 세우고자 한 미국의 대한 정책 등에 영향을 받아 1950년 6월 농지개혁을 실시, 지주를 거세하고 자작농 체제를 성립한 한국과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필리핀 지주계급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 하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6~1986년) 정권의 20여년 독재정치 기간에도 지주계급을 통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르코스 정권에 충성을 다한 지주 출신 엘리트와 크로니들은 온갖 특혜를 보장받았다. 즉 마르코스는 자신을 후원하는 소수의 지주계급(크로니)에게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정실(족벌·패거리) 경영과 정경 유착의 경제 체제)를 형성해나갔다.

지주의 힘은 역설적이게도 '투표권'이 생긴 뒤 더 강해졌다. 토지를 장악한 지주 계급이 가난한 민중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여기서 오는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 권력(표)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행태를 후견주의(클리엔털리즘)라고 부른다. 후견주의에 따라 지주 계급은 경제적 권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까지 장악했고, 자연히 경제적 불평등도 지속됐다.

1987년 피플파워 혁명을 통해 21년간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6~1986년)을 몰아낸 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재임 1986~1992년)을 대통령에 올려놓고도, 필리핀 국민은 1987년 5월 선거를 통한 의회 구성에서 대부분의 의원을 지주 계급으로 채워 토지개혁 등 일련의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국민의 선택 역시 후견주의로 풀이된다. 물론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나 아키노 전 대통령 역시 본인과 가족이 지주 계급인 만큼 애초에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한국은 성공적인 토지개혁을 통해 농업의 생산력과 농업잉여를 증가시켜 그 잉여를 제조업이나 기타 공업 등 기본설비시설에 투자함으로써 저발전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이뤘다. 반면 필리핀의 지주계급은 산업자본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잉여자본을 제조업분야나 산업기반시설에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토지를 지속적으로 매입, 아씨엔다를 넓혀가면서 부를 축적했다. 필리핀의 GDP 대비 투자 비율은 19.7%로, 인도네시아의 33%, 태국의 27%, 말레이시아의 24%에 비해 현저히 낮다.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외세의 힘을 막기위해 도입한 60·40법도 성장을 발목잡았다. 대부분의 필리핀 사업에서는 외국인 지분이 40%를 넘을 수 없다. 이 같이 외국인 투자에도 제한을 걸면서, 필리핀의 발전을 위한 투자에도 늘 제동이 걸렸다.

2015년4월4일, 필리핀 마닐라 슬럼가 거주민들이 마닐라 베이에 모여 더위를 달래고 있다. 당국은 '태풍 위험'이 있다며 수영을 금지했다. /AFPBBNews=뉴스1
2015년4월4일, 필리핀 마닐라 슬럼가 거주민들이 마닐라 베이에 모여 더위를 달래고 있다. 당국은 '태풍 위험'이 있다며 수영을 금지했다. /AFPBBNews=뉴스1
여기에 태풍·지진·화산 폭발 등 빈번한 자연재해는 발전하려 하면 좌초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2007년 7% 성장하고 2008년 경제위기 여파에도 3.8%의 성장을 기록한 필리핀이 2009년 두 차례에 걸친 강한 태풍으로 인해 0.9%의 저조한 성장률을 보인 게 그 예시다. 또 7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국토는 강력한 국가권력 체계가 발동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필리핀에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반군 등이 등장한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필리핀은 결국 아시아의 호랑이가 될 수 있을까? 필리핀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읽어보면 한국이나 태국, 싱가포르 등과 비교하며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토지개혁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필리핀의 미래는 어두워만 보인다. 그리고 국가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필리핀 국민들은 세계 곳곳에서 아주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필리핀이 '가정부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와 필리핀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짚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③] 계속

참고문헌
필리핀의 토지개혁, 서강대, 장소영
후견주의가 필리핀 민주화에 미친 영향, 이화여대, 송세시리아
한국과 필리핀의 민주적 이행에 관한 비교연구, 동국대, 서문수
필리핀의 토지개혁과 농업 현대화 과정의 전개와 한계, 농업경영 정책연구, 김광종 전운성
필리핀과 한국 토지개혁 법령의 특징, 경제연구, 김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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