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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우리 언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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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 2019.04.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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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이경림 시인 ‘급!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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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한 이경림(1947~ )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급! 고독’은 바람처럼 자유롭다. 시적 발상과 상상력, 사유가 유쾌하면서도 깊다. 한 곳에 고정되거나 정지하지 않고 강물처럼 유장하다. 잠과 꿈, 현실이 쉽게 구분되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굴레 역시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지만 애써 답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시력(詩歷) 30년, 일흔을 넘긴 시인은 죽음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불교의 윤회나 장자의 도(道)를 통해 풀어내지만, “삶은 덧붙일 어떤 것도 없다”(‘1월’)는 사실을 알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다만 인생이 고독하다는 것은 굳이 숨기지 않는다.

눈이 와서
문득 하늘이 있다 막 퍼붓는
하늘을 쓰고 눈 쪽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잔가지에 쌓인 눈
위태롭고 안온해서 아름다운 눈을 어루며
미친 척 부는 바람이 있다

눈이 와서
문득
유리 안에 소파가 생겨나고
후우욱
긴 숨을 내쉬는
네가 생겨난다

유리(琉璃) 속을 번지다
유리(遊離)로 가라앉는 그림자

어딘지 외따로 서 있을 오두막같이
앞이나 뒤나 안이나 밖이나 온통

눈이 와서
오솔길은 뱀처럼 숲의 가슴을 파고들고
적송은 풍파 소리로 지나간다

- ‘눈이 와서’ 전문


시 ‘눈이 와서’는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한 존재론이나 가치관·세계관의 변화와 같은 인식론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외롭고 쓸쓸한 한 가정의 상황으로 읽을 수도 있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폭설을 맞으며 한 사람이 집을 나가자 “위태롭고 안온”했던 집에 금방 찬바람이 분다. 너는 “미친 척” 소리치다가 소파에서 긴 한숨을 내쉰다. 집을 나간 사람도, 남은 사람도 “외따로 서 있을 오두막같이” 고독하다. 떠난 사람과 함께 산(어쩌면 그 이전부터) 세월이나 여생(餘生), 집을 나간 사람이나 남은 사람도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적송처럼 우직하게 자리를 지킬 줄 알았던 사람은 눈 내리는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앞이나 뒤나 안이나 밖이나” 폭설이 내리는 것 같은 상황이다.

“눈이 와서” 문득 생겨나고 움직이는 하늘과 소파와 사람 그리고 오솔길과 적송은 ‘나’의 의지나 시간과는 무관하다. 우연하고도 무심한, 예측 불가능한 ‘문득’은 내 외부에서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문득 생겨나기 이전과 그 이후의 삶을 “온통” 바꿔놓는다. ‘문득’으로 인해 집 내부에 고여 있던 일이 외부로 흘러나간다.

그전까지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투명한 유리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투명한 유리의 경계를 벗어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놓으면서도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것은 유리만이 아니다. 오래 같이 산 사람도 유리나 물처럼 투명하다. 떠난 사람이 유연한 물이라면 남은 사람은 완고한 유리다. 몸은 유리(遊離)되어 있으되 서로의 생각(속)과 행동은 빤하다. 시집 제목 ‘급! 고독’처럼 ‘웃픈’ 현실이다.

혹시 표제시 ‘바위’가 위의 시 ‘눈이 와서’의 뒤를 잇는 작품이라면, “눈이 와서” 숲속 오솔길로 사라진 사람을 봄에 문득 찾아가는 상황이라면…. 끝내 그 사람도, “그가 앉았던 바위”도 찾지 못한다. 사실 그를 만나기 위해 “오솔길을 계속 올라”간 건 아니다. 그를 꼭 만나고 싶었다면 “그가 앉았던 바위”의 위치를 “키 큰 나무 그늘”이나 “회색 도넛 구름 밑”, “새 울음 사이”나 “연초록 바람 사이”와 같이 움직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 ‘눈이 와서’에서는 떠난 그가 유연한 물이라면 시 ‘바위’에서 그는 완고한 유리로 상황이 역전된다. 두 시를 통해 정지한 것과 흐르는 것, 떠남과 만남, 빈 것과 채우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가고 있었다
폭우가 퍼붓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물의 유리 조각들이 내리꽂혔다
그때 허공은 물의 유리 폭포
아스팔트에 부딪쳐 깨진 낭자한 물의 조각들을 밟으며

나는 가고 있었다
비 맞은 노랑 줄무늬 고양이처럼
젖은 꼬리를 깃대처럼 세우고
윗집 통장 마누라처럼
품위 있게

새 한 마리가 막 정수리를 지나가는 듯도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있었다
채 이름 지어지지 않은, 말하자면
그런 것

- ‘우중산책’(雨中散策) 전문


시 ‘우중산책’(雨中散策)은 그냥 산책이 아니라 “폭우가 퍼붓”는 중에 치르는 장례식이다. 비수처럼 내리꽂히는 “물의 유리 조각들”과 아스팔트에 “낭자한 물의 조각”은 장례를 치르는 대상이 원통한 죽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채 이름 지어지지 않은”은 신생아이거나 그에 준하는 가족의 죽음을 말한다.

비통한 심정에도 “윗집 통장 마누라처럼/ 품위 있게” 우중장례(雨中葬禮)를 치르는 상황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막 정수리를 지나가는 듯”한 새는 영혼을, 우중의 지하에 묻혔으므로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아니 그래도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은 게 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세련되고 “품위 있”다.

이처럼 시인이 죽음 앞에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생이 꼭 같은 상황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걸 눈치채고부터”(‘시인의 말’)다.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만물의 근본원리인 ‘도’(道)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고 모습만 변화한다는 깨달음은 세상의 세사(世事)로부터 시인을 초탈케 한다. 헤어짐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므로 죽음 앞에서도 편안하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 십년 후에 운 좋게 이 별에서 다시 만난다면 너는 네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까? 그럴까?

- ‘너는 말한다’ 부분


◇ 급! 고독=이경림. 창비. 190쪽/9000원.


[시인의 집] 우리 언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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