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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Eat]16년 '터키 술탄 통치' 쓰러뜨린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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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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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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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의 '반값 슈퍼마켓'
대도시 표심 잡기 올인했지만 선거 패배

/AFPBBNews=뉴스1
/AFPBBNews=뉴스1
[인싸Eat]16년 '터키 술탄 통치' 쓰러뜨린 '슈퍼마켓'
지난해 대선과 총선 모두 승리. 기세를 몰아 개헌으로 향후 14년간 장기 집권할 길을 열어,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얼마전 크게 망신을 당했습니다.

지난달 31일 터키 81개주에서 열린 지방선거에서 전체 득표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이 제1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에 조금 앞섰지만, 수도 앙카라를 비롯해 경제 중심지이자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모두 뺏겼기 때문입니다. 앙카라에서 AKP가 패배한 것은 25년 만이었고, 이스탄불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 외신들은 일제히 "에르도안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말그 대로 굴욕스러운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AKP는 앙카라와 이스탄불 모두 재검표 해야 한다며 결과에 불복했고, 터키 최고선거위원회는 이스탄불 일부 지역에서 재검표에 착수했습니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터키 경제난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 이중 '슈퍼마켓'이 패배의 직접적인 원흉으로 지목됩니다. 슈퍼마켓이 대체 선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지난 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격히 뛴 장바구니 물가 때문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심에 빠졌습니다. 연간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만 해도 20%, 채소값은 30%이상 뛰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금값 채소'가 자신의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지 걱정이 된 것입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음달 중순 한 집회에서 '먹거리 테러리즘'을 선포하면서 "그들이 터키에서 게임을 시작했고, 토마토와 가지, 후추 등의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식료품 중간 도매상들이 재고를 비축하고, 여기에 외국 투기 세력까지 가세해 채소값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면서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것입니다. 당시 농민들과 식품업체들은 채소값 급등 원인으로 당시 터키 남동부를 강타한 토네이도과 인건비, 연료 및 비료비 상승 등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AFPBBNews=뉴스1
/AFPBBNews=뉴스1
이렇게 에르도안 대통령은 앙카라와 이스탄불 두 도시에 총 150여곳에 달하는 '슈퍼마켓'을 열게 됩니다. 여기서 파는 채소류는 모두 시중가의 '절반'이 목표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터키 당국은 주요 대도시의 슈퍼마켓들을 돌며 가격을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기준도 없이 '너무 비싸다' 싶으면 창고를 급습해 수십톤의 양파와 토마토를 압수했고, 이를 정부 슈퍼마켓에 가져다 팔았습니다.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중간 도매상을 건너뛰고 농민들에게서 직접 채소들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중가의 절반이 안될 시엔 혈세를 쏟아부어 가격을 맞췄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의 향방을 결정하는 앙카라와 이스탄불, 두 대도시 시민들의 민심을 잡는 데 올인하고, 농민들과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을 버리는 강수를 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도시 시민들이 정부 슈퍼마켓에 만족했을까요?

가디언지와 더애틀랜틱의 이스탄불 탁심 광장 앞에 정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의 풍경을 소개했습니다. 매일 아침 수백명의 인파가 슈퍼마켓에 몰려 1~2시간 이상을 대기를 한다고 합니다. 기다림 끝에 정부 딱지가 붙은 트럭이 토마토, 후추 등 식료품을 가져오면 이들은 1인당 최대 구입한도인 3kg어치를 구입한 후 매장을 떠납니다. 그러면 또다른 수백명의 인파가 다음 트럭이 올 때까지 기다림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에만 3000~4000여명의 사람이 몰리니 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고는 매대 절반이 텅 비는 등 3kg어치도 못사는 일이 비일비재 해졌습니다. 한 시민은 가디언지에 "태어나서 (에르도안이 말한) '먹거리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면서 "오늘 토마토만 샀는데, 초록콩이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 토마토만 씹어먹으란 것이냐"고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어차피 선거용 보여주기식 가게이니 지방선거가 끝난 4월부턴 없어질 것이 아니냐"라거나 "실직에 취업까지 안되는데 이런 데서 쇼핑할 여유조차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왔습니다.

당연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등진 농민과 자영업자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영세 식료품업체 주인은 더애틀랜틱에 "정부 반값 채소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면서 "가게가 망하면 우리 가족 전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고 걱정했습니다. 결국 농민과 자영업자의 민심도, 대도시 민심도 모두 잃은 '악수(惡手)'가 된 것입니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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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 통치 체제는 그동안의 높은 경제성장률로 인해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터키에 구금된 미국인 목사 석방 문제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찰을 빚다가 관세 부과 등 각종 제재를 맞으면서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무리하게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한 것도 위기로 돌아왔습니다.

달러 대비 리라화 화폐 가치는 1년새 40%나 폭락했고, 국가가 진 막대한 해외채무 이자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외국 기업들도 투자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고, 터키 기업들은 파산보호 신청에 나서며 국민 세금을 빨아들였습니다. 여기에 수백만명의 터키인까지 길거리에 나앉게 됐습니다. 터키 청년층 4명 중 1명은 실직 상태입니다. 이들에겐 정부의 슈퍼마켓 조차 호화로운 세금 잔치로만 보일 뿐입니다.

만약 이번 선거의 재검표로 승리가 뒤바뀌더라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16년 철권통치에 구멍이 생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듯 합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슈퍼마켓이 장기적으로 또다른 경제적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한번 생긴 구멍은 곳곳에 생길테고 언젠가는 또다른 손가락을 넣어 구멍을 막아야할지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어떤 사업을 직접 운영하는 걸 고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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