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독립운동, 무슨 돈으로 했을까?

중국 상하이시 황포구 마당로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기념관 입구 인근. /사진=이건희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가 세워진(1919년 4월11일) 후 100년이 흐른 지난 3일, 중국 상하이. 봄기운이 완연했다. 하늘은 맑았고 곳곳의 나무들은 꽃을 피웠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옷차림은 가벼웠고 발걸음도 활기찼다.


중국의 대표 경제·관광도시 상하이에서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나흘 동안 100년 전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꽃을 피운 자리를 찾아다녔다. 기록 속 현장은 20여곳에 달했지만 실제 흔적이 남은 곳은 손에 꼽혔다.

사적지 대부분은 상하이 대표 독립운동 흔적으로 꼽히는 황포구 마당로 임정 청사 기념관을 중심으로 몰려있었다. 마당로 청사는 1926년부터 매헌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폭탄 의거 전까지 사용하던 장소다.

프랑스 조계지였던 중국 상하이시 신톈디(신천지)역 인근. 현재는 쇼핑거리가 됐다. /사진=이건희 기자

100여년 전 마당로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외국인 출입과 거주가 허용되고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이었다. 유럽풍 양식의 건물이 올라간 곳으로 현재는 그 양식을 살린 쇼핑몰이 들어선 지역이 됐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프랑스 조계지를 주요 활동 거점으로 삼았다. 청사를 중심으로 도보 20분 이내 거리에 백범 김구 가족 거주지와 임시정부 요인들 거주지를 비롯해 집회장소였던 부흥공원이 자리했다.

그러나 온전한 당시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김구 가족 거주지였다는 '영경방 10호'는 세련된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부흥공원은 지금도 공원이었지만 현지 주민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공원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한국노병회 창립총회지, 김문공사 터 등 임시정부 관련 사적지가 적잖게 위치했던 자리에 세워진 쇼핑몰. /사진=이건희 기자

독립운동의 핏줄이 된 현지 자금의 흔적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조계지 인근에 잡화점을 세워 독립운동 자금과 한인사회를 지원했다는 김시문이 운영한 '김문공사' 터, "독립자금과 독립군을 함께 양성하자"는 뜻으로 1922년 김구가 결성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창립총회지 등은 쇼핑몰과 도로로 바뀌었다.
그나마 현장이 보존된 곳이 마당로 청사다.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 정부와 상하이시가 공동조사를 진행한 결과 지켜낼 수 있었던 장소였다.

이곳 관리는 삼엄했다. 내부는 비닐 덧신을 신고 들어가야만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도 금지됐다. 대신 임정 요인들의 활동 모습을 그대로 눈에 담을 수 있다. 회의실에 등받이 없는 의자, 어른 남성 키보다 작은 화장실, 자칫하면 넘어지기 쉬운 가파른 계단 등이 그때 분위기를 대변했다.

임정은 나라를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 흔적을 자금 모금 노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임정 청사 기념관에 놓인 '독립공채'가 한 예다.

상하이 임시정부 당시 발행된 독립공채. /사진제공=증권박물관

독립공채는 미주와 중국 동포들에게 독립 후 연 5% 이자를 더해 5~30년 내 상환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액면가 100원, 500원, 1000원짜리 공채다. 주권잃은 나라의 채권은 사실상 '깡통공채'였다. 하지만 동포들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기꺼이 사들였다.

국내에서 보내온 자금의 흔적을 인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상하이 임정 수립 초기 재무차장을 맡은 윤현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14년 부산에서 백산 안희제가 세운 백산상회에 참여했다. 백산상회는 GS 창업주 허만정도 참여한 곳이었다.

20대였던 윤현진은 백산상회의 이익뿐 아니라 원금까지 받아들고 상하이로 넘어왔다. 자금 없이 이어질 수 없는 임정의 상황을 이해한듯 재무차장으로 일하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임정 수립 후 2년 만인 1921년 29세 나이에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피와 눈물로 지켜진 상하이 임정의 활약은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의거를 기점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윤 의사는 훙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져 대한민국의 항일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상하이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던 임정 요인들은 1940년 충칭에 자리잡기까지 8년 간 피난생활을 거쳤다. 먼저 피난한 곳은 저장성 자싱시(가흥시)였다. 상하이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2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윤봉길 의사 의거 후 백범 김구가 피난생활을 시작할 때 머무른 중국 저장성 자싱시 피난처 침실. /사진=이건희 기자

자싱시에 남은 김구와 임정 요인들의 피난처를 찾았다. 국내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남호라는 호수에 둘러싸여 이곳 분위기는 더 쓸쓸했다. 김구와 임정 요인들은 중국인 추푸성(저보성) 가족의 도움으로 이곳 매만가에서 피신생활을 했다.
김구는 가명을 사용하고 대야만한 크기의 욕조와 긴급탈출구가 마련된 침실에서 머무르는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현재 금액으로 200억원에 달하는 현상금이 그에게 걸려 있었다. 심지어 그는 선상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80년 뒤 그의 피난처는 한없이 평화로운 곳이 됐다.

자싱시에 남은 임정 요인들의 피난처도 뒤늦게 보호됐다. 2000년 자싱시 단위의 보호대상으로 지정돼 국내 독립기념관과 협력을 거쳐 2006년이 돼서야 대중에게 공개됐다.

자칫 방치될 수 있었던 사적에 힘을 보탠 건 뜻있는 기업이었다. 1990년대 후반 자싱시에 공장을 세우며 진출한 국내기업 효성이 그 주인공이다. 2007년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아 자싱시의 임정 요인 피난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국 저장성 자싱시에 위치한 임시정부 요인 피난처 안내판 모습. 국내 기업 효성이 세웠다는 표시가 돼있다. /사진=이건희 기자

효성은 피난처의 관리현황 점검, 시설물 개선 등을 위해 자금을 보탰다. 이같은 결정은 1926년 6.10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뜻을 품었던 창업주 조홍제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것에서 비롯됐다.

실제 현지 교민들도 독립운동 흔적을 지켜주는 것에 그 고마움을 표했다. 자싱시 임정 요인 피난처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교민은 "자싱시처럼 국내 관광객들이 쉽게 발 닿기 어려운 곳도 지키려는 노력 덕분에 현장이 이만큼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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