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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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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2019.04.18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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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다니던 1996년 선배가 불쑥 일 좀 도와달라고 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니 대한민국 최악의 산불로 꼽히는 1996년 4월 고성산불의 시간대별 이동 및 확산경로를 정책결정권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지도에 표시하는 일이었다. 지극히 간단하지만 중요한 일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 일은 정부기관이 아닌 대학원생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방제를 책임지던 해경 관계자는 확산경로, 대책을 묻는 기자들에게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던 해안가 대책본부 천막 아래에서 모니터에 위성사진과 지도를 띄워놓고 답답해하던 연구원을 만났다. 유출된 원유가 어떻게 확산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있지만 막상 입력할 데이터가 제대로 없어 써먹지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자료도 부족했고, 그나마 있는 자료의 공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그랬다.
 
2014년 4월16일. 선장과 선원이 수백 명의 학생과 승객을 침몰하는 배에 버려놓고 도망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대한민국의 모습이라 생각했고, 각자도생의 사회임을 새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2019년 4월 속초산불이 발생했다. 산림과학원의 산림재해예측분석센터가 바빠졌다. 현재 상황과 산불확산 예측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를 종합해 만들어진 상황도는 실시간으로 산불중앙상황실, 행정안전부 상황실 및 국가위기센터 등 관련기관과 공유됐다. 헬기가 뜰 수 없는 일몰 후에는 불길과 열을 탐지하는 센서를 탑재한 드론을 띄워 수천 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15분 만에 통합해 상황도와 산불확산 예측지도를 새로 만들어 관련기관과 공유했다. 이러한 절차는 야간에 3~5회 반복되었다. 전국에서 소방차 872대와 헬기 51대가 지원에 나서 산불을 진압했다. 한곳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이 정도 장비를 짧은 시간에 동원해 집중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2019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우리는 많은 사건·사고를 겪였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외에도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로 292명,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32명,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로 192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과 정부의 무능을 탓하고 “이게 나라냐”는 울분에 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런 순간마다 묵묵히 질책을 감내하고 폐허 위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개인과 집단이 있었다. 오래되고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제도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사람을 확보하는 것은 분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흥분과 분노, 허탈의 순간을 지나 무관심이 돌아오는 그 순간에도 이러한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은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조금씩이나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개인의 잘못, 불운, 불완전한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예방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사고가 난 이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많은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 선진국이라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이고, 그런 곳의 개인과 사회 역시 과거와 다른 행동과 판단으로 변화를 이뤄낼 것이다.
 
매년 4월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과 함께 아픔의 기억이 찾아온다. 불행한 기억, 아쉬움과 괴로움이 많은 사람을 힘들고 괴롭게 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과 슬픔을 딛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사회가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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