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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복동’ 하나는 기억에 남았네

  • 강명석 ize 기자
  • 2019.04.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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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마셨습니다… 영화가 잘 안 돼도 좋습니다. 하지만 엄복동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후략)” 비가 자신이 주연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개봉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은 현실이 됐다. 1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자전차왕 엄복동’은 개봉 당시 172,212명을 기록하며 실패했지만, 사람들은 ‘엄복동’을 기억한다. 영화나 실존인물이 아닌 흥행의 단위로 기억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17만 관객은 ‘1엄복동’이고, 엄복동의 이니셜을 따서 ‘1UBD’로 불린다. 예를 들어 오늘 개봉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지난 16일 예매 시작 24시간만에 65만명이 예매해 ‘3UBD’를 넘겼고, 지난 22일에 170만명 이상이 예매해 ’10UBD’를 넘겼다. 또한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한국에서 역사상 최다 관객을 기록한 영화 ‘명량’의 관객수는 공교롭게도 ‘100UBD’다.

망한 영화는 많다. 못 만든 영화도 많다. 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은 돈까지 많이 썼다. 라이벌 ‘리얼’이 있기는 하지만 ‘리얼’의 제작비는 115억 원, 관객수는 470,107명(2.76UBD)으로 ‘자전차왕 엄복동’과 비교하면 미묘하게 제작비 대비 매출이 좋다. 또한 ‘리얼’은 스토리가 요약하기 어려울 만큼 이상하다. 못 만든 것을 놀리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비판하기엔 귀찮아진다. 반면 ‘자전차왕 엄복동’은 쉽고 명쾌하다. 일제강점기에 자전거로 영웅이 된 주인공이 있고, 한편에서는 독립 운동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못 만들었다.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재미없는 영화도 볼 만한 것처럼 풀어내기로 유명한 ‘김경식의 영화 대 영화’에서 “자진 방아를 돌리고 있는 한 때 월드스타를 보고 있자니 이게 대체 뭐하는 영화인가”, “결말을 궁금해하실 분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한 것은 확인 사살과도 같았다. 영화가 VOD 시장으로 넘어온 뒤에는 조악한 CG가 나오는 오프닝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UBD’의 탄생에는 완성도 외에도 좀 더 많은 맥락이 얽혀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그 모든 잘나갔던 것들의 몰락이라 할 수 있다.

‘자전차왕 엄복동’이 개봉할 즈음, 비는 모두가 놀려도 되는 남자가 돼 버렸다. 그가 2017년 발표한 앨범 ‘MY LIFE愛’의 타이틀 곡 ‘깡’에서 그는 “They call it! 왕의 귀환 / 후배들 바빠지는 중!”이라고 외치며 노래를 시작해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 /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지”라며 자신의 인기를 과시했다. 하지만 잘나가는 후배들은 그냥 바쁘게 살고, 영화제 관계자들은 그를 초청하는 데 딱히 마음 졸이지 않았다. 허세가 심했던 이 가사는 2014년 곡 ‘차에 타봐’의 가사를 재발굴하게 만드는 연쇄효과를 일으켰다. 이 곡의 가사는, 익히 알려진대로 다음과 같다. ‘지금 어디야 XX놈아 내 전화 빨리 받아라 / 지금부터 내 여자한테 전화하면 죽는다 / 너따위 남자가 바라볼 수도 아니 감히 나조차도 바라볼 수 없는 / 소중한 내 여자 내 여잘 니가 건드렸어’ 비는 이 가사를 어셔가 ‘Yeah!’도 아닌 ‘U remind me’를 불렀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스타일로 온 힘을 다해 노래 부른다. 아아. 그런데 ‘자전차왕 엄복동’은 하필이면 또다른 거대한 시대착오였다. 150억의 제작비를 투자한 영화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착한 한 남자가 우여곡절 속에 영웅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선악구조는 단순하다 못해 유치하고, 주인공에 독립 운동을 엮어 억지로 액션을 끼워넣고, 이시언의 코미디는 MBC ‘나 혼자 산다’보다 재미없다. 그 와중에 CG는 조악하다. 이범수가 ‘자전차왕 엄복동’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캡틴 마블’에 대해 “재미없다고 하더라”라고 말한 영상은 ‘자전차왕 엄복동’과 관련된 모든 현상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개봉 전부터 시대착오로 결론 나버린 작품의 제작자가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를 걸고 넘어졌다. 그것도 150억원을 들인 나름대로 규모가 큰 영화다. 그 결과 ‘자전차왕 엄복동’은 개봉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망하기를 바라는 상황이 됐다. 개봉 직후부터 저조한 관객수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갔고, 상영이 끝난 뒤에는 영화의 '망함'에 대한 조롱이 계속 이어졌다.

‘자전차왕 엄복동’처럼 영화를 만들면 흥행할 거라 생각하던 시절이 한국 영화계에도 있었다. 오래전 일도 아니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제작자이기도 한 이범수가 3년 전 출연한 ‘인천상륙작전’은 7백 만 이상의 관객을 기록했다. 이 영화도 이른바 ‘국뽕 영화’라는 비판, 단순한 선악구도와 개연성 대신 액션에만 치중한 전개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이범수에게는 ‘인천상륙작전’과 ‘자전차왕 엄복동’이 달라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에는 리암 니슨처럼 관객이 영화의 스케일을 크게 느끼도록 만들 캐스팅이 없었다. 그 사이 ‘국뽕’은 젊은 관객들에게 비하의 의미로 굳어졌다. 시대극과 액션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볼거리는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극장에 가지 않아도 즐길 방법이 많아졌다. 공교롭게도 ‘자전차왕 엄복동’ 개봉 한 달 전, 넷플릭스에서 좀비를 소재로 한 사극 ‘킹덤’이 공개됐다. 비와 이범수와 ‘인천상륙작전’ 모두 좋았던 어떤 시대가 지났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좋다고,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이 모든 것들이 죄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인 ‘자전차왕 엄복동’은 한 때 잘나갔던 것들이 우스워졌다는 증거가 됐고, 지금 인터넷에서 노는 관객들이 싫어하는 모든 요소들의 최대공약수가 됐다.

‘UBD’의 등장은 지금 관객들이 싫어하는 영화를 단죄하는 방법처럼 보인다. 관객들은 싫어하는 영화, 또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영화에 단지 악평을 남기는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온갖 장면들을 파헤쳐 비판할 부분을 찾고, 문제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조롱거리로 만든다. 망한 영화의 아이콘, ‘클레멘타인’의 네이버 영화 평점란에는 아직도 글이 올라온다. 그리고 '자전차왕 엄복동’에 이르러 이 놀이는 완성도뿐만 아니라 흥행 실패에도 적용된다. 관객은 그렇게 영화산업에 더 적극적으로, 더 큰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딱히 교훈이라고 할 것은 없다. 다만 과거 평론가나 기자가 가지던 영향력을 관객이 다른 방식으로 행사하게 됐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리얼’처럼 이상하게 못 만든 작품이 ‘자전차왕 엄복동’ 같은 시대착오보다는 그나마 덜 놀림 받는다. 그게 딱히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일단, 망하지 않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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