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아파트 구매에 ‘무의식적 결정’이 더 나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경쟁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역겹다’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중에게 ‘무의식적’으로 힐러리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금연 광고를 하면 할수록 역설적이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담배에 대한 이미지를 연상해 흡연 욕구를 끌어올린다. 날이 흐릴 때보다 좋을 때 행복하냐는 질문에 더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더 광범위하다. 우리는 의식을 선의 원천으로 여기고(비록 잘못된 판단을 할지라도), 잘못이나 악은 무의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겪는 경험은 모두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믿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조차 무의식적으로 같은 인종의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내집단 선호 경향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무의식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상에 침투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주지사 선거 결과를 얼굴만 보고 판단하라는 실험이 진행됐다. 연구에 참가한 프린스턴 대학생들은 89개 주 주지사 선거의 당선자와 2위 후보의 얼굴 사진을 보고 ‘직감’만으로 예측했는데, 후보 얼굴이 화면에 0.1초 동안 나오든 몇 초 동안 나오든 똑같이 정확히 맞췄다. 다른 집단에는 신중히 고민해서 판단하라고 요쳥하자, 예측의 정확성 비율은 감소했다.

자동차와 아파트 구매를 결정할 때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차원이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할 경우 대체로 무의식적 결정이 더 나았다. 의식의 작업 기억(working memory)에는 한계가 있어 주어진 순간에 많은 정보를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식적 사고는 강력하지만 어느 한순간에 고려할 수 있는 정보의 복잡성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규칙을 따를 수 있다면 의식적 과정이 무의식적 과정보다 낫다.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건 ‘숨겨진’ 과거와 현재, 미래다.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먼 과거나 불과 한두 시간 전의 가까운 과거가 우리 행동에 은밀히 영향을 미친다. ‘숨겨진 현재’도 만만치 않다. 평소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도 주변에 낙서가 눈에 띄면 쓰레기를 투기하는 경향을 보이고 오래 같이 살수록 서로 닮아가는 부부도 무의식적 상황은 마찬가지.

어느 유명한 실험에서 여자들에게 배우자를 찾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자, 태닝 살롱과 다이어트약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었다. 무의식중에 목표로 채색된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여느 때라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을 좋아하고 친한 친구들을 평소보다 덜 좋아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현재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 이런 변화의 과정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무의식의 영향력을 처음 듣는 이들은 자신에게 자유의지나 삶의 통제력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의식적 영향력의 존재와 자유의지의 한계를 인지해야 더 많은 자유의지를 누릴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은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지지한다. 무의식은 의식적 노력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우리가 이미 포기하고 다른 필요한 일로 넘어간 뒤에도 계속 문제를 고심한다.

무의식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어떤 순간에 의식하는 내용과 그 순간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배후의 작용 사이가 단절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모든 행위를 의식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면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무의식이 진화하고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존을 지키고 보다 더 잘살게 해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존 바그 지음. 문희경 옮김. 청림출판 펴냄. 508쪽/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