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문학상이 만난 ‘미래의 초상들’…“외계인 등장해도 젠더·학교 폭력, 양극화 여전”

여기 소개하는 5편의 작품은 흔히 보던 SF(공상과학소설)의 결에서 조금 빗겨있다. 식상한 소재에서 일찌감치 떨어진 데다, 남의 세상 얘기가 아닌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철학적 탐구가 촘촘히 배어있기 때문.


무엇보다 고민 없는 오락에 치중하지 않고, 지금 우리 사회 아젠다를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 진지한 사고실험의 우아함마저 안겨준다.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이 발굴한 작품들은 난민, 젠더, 학교폭력 등 지금 시대 가장 뜨겁고 민감한 이슈를 통해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글쓰기 흐름을 선도한다.

작품 5개는 장애인차별, 젠더폭력, 학교폭력, 난민, 양극화 5개 키워드로 구성됐다. 소수자 입장에서 느끼는 사연과 감성을 통해 우리 사회, 나아가 우리 미래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떤 미래 세상에서 맞닥뜨릴 ‘사건’들은 이제 우리의 일상일지 모른다.

대상 수상작 이신주 작가의 ‘한번 태어나는 사람들’(수상 당시 제목은 ‘단일성 정체감 장애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장애인차별을 다뤘다. 다중인격이 다수이고, 단일인격이 극소수인 세계에서 한 개의 인격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그린 의학 보고서다.


영화 ‘23 아이덴티티’의 빌리 밀리건을 빌어 선(善으)로 활용하지만, 선의 의도를 지닌 그들조차 자신들의 시선에 묶인 한계를 통해 우리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본다.

페미니즘 SF로 통하는 우수상 수상작 황성식의 ‘개와는 같이 살 수 없다’가 조준하는 타깃은 젠더폭력. 멸망의 시대에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여성과 개의 연대가 벌이는 생존을 건 사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여성이 ‘방주’로 불리는 안전지대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심사위원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소설적 장치들이 흥미 유발”(김보영) “사건 진행이 훌륭”(김창규)이라고 호평했다.

가작 3편도 구성력과 필력을 앞세운 순수 문학의 바탕에서 장르 문학의 기발함이 여실히 돋보인다. 길상효 작가의 청소년 SF ‘소년 시절’은 하나의 두뇌를 공유하는 ‘왕따’ 고등학생과 우주 난민 외계인 소년의 다른 소외감을 다룬 성장소설이다.

학교폭력을 주제로 두 소년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는지 ‘기억 동기화’라는 과학기술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끈을 조화롭게 잇는다. 인간 게놈 지도부터 신경 가소성까지 낯선 과학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친근한 비유를 곁들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김현재 작가의 감성 SF ‘웬델른’은 난민이 주제다. 지구에 불시착해 한국인의 몸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외계인 ‘문정수’의 한국 정착기로, 생리 작용 방식이 남다른 신체 때문에 생긴 불편함을 섬세한 시선으로 묘사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임의 시대에 새로운 생식능력을 개발한 인류는 어떤 사회와 만날까. 이하루의 환상 SF ‘두 개의 바나나에 대하여’는 불임 세계에서 무성생식 임상 실험에 참여하게 된 비정규직 여성의 삶을 다룬다.

무성생식도 소위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살기 위해 신체를 담보로 돈을 번다. 새로운 기술이 낳은 양극화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소설은 때론 ‘무서운 이야기’로, 때론 ‘발상의 독창성’으로 해석된다.

김보영 심사위원은 “인류의 환상적 진화를 통해 임신과 생식,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신주, 황성식, 길상효, 김현재, 이하루 지음. 허블 펴냄. 234쪽/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