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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여론재판과 유죄확정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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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동희 사회부장
  • 2019.06.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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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난달 말 '부탁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검찰수사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의 내용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보도경쟁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디어 경쟁의 대표적 사례는 1880년대 후반 옐로저널리즘의 시초가 된 '뉴욕월드' 신문 창업자 조지프 퓰리처다. 그는 경쟁자인 '뉴욕저널'의 창업자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자사의 인기만평인 '옐로 키드(노란 아이)의 작가를 뺏어가자 다른 작가를 고용해 똑같은 노란아이 그림을 그리도록 하며 경쟁에 열을 올렸고, 이게 옐로저널리즘의 용어의 출발점이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 미디어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집단을 알리는 선전도구에서 독자가 소비하는 상품으로 바뀌었고, 그 결정적 변화의 모습이 핵심취재 영역에서 나타났다.

그 이전까지 사건기자들의 취재 영역은 법원이었으나, 옐로저널리즘이 득세하면서 '더 선혈이 낭자한' 묘사가 가능한 경찰의 사건 현장과 검찰의 수사상황을 중계하는 것으로 사건기자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게 미디어학자들의 얘기다.

법원에서 피고와 원고의 주장을 듣고 양측 논리의 타당성을 판단하거나 중립적인 판사의 판단을 전하던 것에서, 현장 목격자의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진술이나, 왕권(정권)의 대리자로 출발했던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흘러나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를 통해 1페니(센트)짜리 신문을 누가 더 많이 팔 수 있느냐의 경쟁이 된 것이 옐로저널리즘의 시작이다.

그 이후 나타난 현상은 의혹, 추정, 정황이 득세하고, 법조계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무죄추정의 원칙'보다는 '유죄 확정의 원칙'이 더 힘을 얻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법원이 미디어 취재의 중심일 때는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인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수 있을 정도의 증거'가 있을 때에만 유죄로 볼 뿐 그 이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여론이라는 힘을 등에 업고, 일단은 포토라인에 세워서 유죄를 추정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가장 큰 방패막이로 미디어의 사적 이익 추구에 기여한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해 이미 여론재판으로 유죄를 사실상 확정 짓고 법정 안으로 들여보내, 여론의 반대방향으로 판결이 이뤄지면 그 판사에 대해서는 다시 여론재판을 하는 시대가 됐다. 유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의 절차를 거친 자의 몫이 됐다.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 살인사건이나, 2000년 전북 익산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 당시 범인으로 몰렸던 사람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후 무죄가 입증된 사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죄가 추정된 이후에는 그 피해를 돌이킬 수 없다. 언론재판이나 여론재판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수준의 입증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최근 법조계에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미 여론으로는 이 재판은 더이상 입증할 필요도 없는 '유죄확정'의 사건이 됐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왜 기업이나 총수들에게만 적용하려느냐는 국민들의 인식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최근 법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관련 본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내린 징계를 멈춰달라는 회사 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합리적 의심이 배제되는 입증을 한 이후에 처벌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오동희 사회부장(부국장)
오동희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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