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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는 무슨, '그 곳'에선 펄펄 날더라[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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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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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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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공생에서 찾는 행복 : 사회적기업 베어베터] 발달장애인 220명이 일하는, 어우러져 행복한 회사 '베어베터'에서 보낸 2일

[편집자주] 웃는 모습을 보려면 함께 웃어야 합니다. 술을 마실 땐 잔을 마주쳐야 더 흥이 납니다. 추운 날엔 서로 붙어 있어야 더 따뜻하고, 달리기를 할 땐 같이 뛰어야 더 기운이 납니다. 홀로 살아 남으려 아등바등 치이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어쩐지 남의 일처럼 소원해졌습니다. 잘 살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마음은 더 외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스무살이 된 머니투데이가 함께 살아가는 일, 그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앞만 보며 달리느라 시야가 좁아졌다면, 주변을 돌아보고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여기서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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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들의 일터, 베어베터에 간 기자(가운데 하얀 옷)가 인상을 잔뜩 쓴 채, 사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명함을 잡아서 오른쪽 사원에게 건네는 일이다. 표정은 가장 심오하지만, 일은 가장 못하는 중이다./사진=베어베터 매니저
발달장애는 무슨, '그 곳'에선 펄펄 날더라[남기자의 체헐리즘]
"어, 이거 잘못 들어갔어요."

명함 96장을 차곡차곡 쌓아 건넨 뒤 들려온 말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곰 청년(나중에 무슨 뜻인지 나온다)'이 갸우뚱 하며, 아까 줬던 명함 한 묶음을 내게 다시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두 명의 명함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이게 '원 플러스 원(1+1)' 행사도 아니고, 대체 무슨 실수랴. 나름 정신 차려 한다고 했는데, 초짜(나)는 그리 미숙했다. 그만 낯이 뜨거워졌다. "큰일 날 뻔했네. 발견해줘서 고마워요. 다행이에요." 곰 청년에게 감사 인사를 하니, 그는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깔끔히 정돈된 짧은 머리에, 인상도 서글서글한 곰 청년이 어찌나 듬직한지. 그의 손길은 투박한 듯 섬세했고, 차분하면서 민첩했다. 처음 이 일을 하고 있는 난, 곰 청년을 부지런히 따라하며 일을 익혔다. 명함 24장을 네 번 잡아서 쌓은 뒤 건네면, 곰 청년이 이를 명함 케이스에 넣어 고무줄로 묶었다. 분업(分業)이라 내가 못하면 다 늦어지는데도, 곰 청년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제 일을 묵묵히 하며, 내 빈 자리까지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일이 점점 손에 익었다. 나를 이해하고 기다려 준 덕분에.

곰 청년들이 일하는 이곳 이름이 '베어베터(BEAR.BETTER.)'라고 했다. 그 뜻을 풀어보니 '곰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더 나은 세상'이란다. 고집은 세지만 약속은 철저히 잘 지키고, 남에게 자신을 표현하긴 어렵지만 익숙한 일은 책임감 있게 잘하는 이들. 그래서 '곰 청년'이라 일컬은 이들은 세상에선 '발달장애인(자폐성 및 지적장애인)'이라 불린다. 혹시 이 말에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나 '서번트 증후군' 같은 천재만 떠올랐다면, 부디 이 기사를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진정 평범히 살아가는 곰 청년들의 이야기니까.

곰 청년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의, 베어베터 로고./사진=베어베터 홈페이지 화면
곰 청년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의, 베어베터 로고./사진=베어베터 홈페이지 화면

어쨌거나 그들이 일하는 베어베터는 전체 직원 중 80%가 발달장애인(230명)이다. 인쇄, 제본, 제과(빵․쿠키), 플라워, 커피(원두), 카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2012년 5월, 네이버 창업 멤버인 김정호, 이진희 대표가 만나 이곳을 세웠다.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 등 문제 때문에 장애인 중에서도 채용이 유독 어려운데, 이를 해결하고자 시작한 일이다. 곰 청년들이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찾고, 이를 쪼개고, 비장애인과 협업해, 함께 다닐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었다. 눈을 뜨면 갈 곳이 있고, 그 곳에선 나를 필요로 하고, 하루 열심히 보내면 너나 할 것 없이 “내일 또 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공존(共存)하면서도, 곰 청년들의 사업은 7년 넘게 잘 되고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심지어 17일까지 곰 청년들을 더 채용한단다. 대체 이곳의 '비밀'은 뭘까. 곰 청년들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이런 것들이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베어베터에서 직접 일해보기로 했다. 6월5일과 10일, 이틀 동안 꼬박 일 해봤다. 인터뷰 한 이들은 '곰 청년'이라 통칭하기로 했다. 세상의 시선에 노출되길 원하지 않는 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발달장애 O급' 같은 따위의 것들은 취재조차 안 했다.



"기자님, 힘들죠?" 첫 만남에 맘이 녹았다




아침 9시30분에 시작하는, 베어베터 아침 체조 시간. 나도 같이 따라해봤는데 관절에서 뚜둑 소리가 나서 좀 놀랐다./사진=남형도 기자
아침 9시30분에 시작하는, 베어베터 아침 체조 시간. 나도 같이 따라해봤는데 관절에서 뚜둑 소리가 나서 좀 놀랐다./사진=남형도 기자

"하낫 둘 셋 넷 닷 여섯 일곱 여덟". 5일 9시30분. 베어베터에 도착해 유리문을 조심스레 여니 기분 좋은 기합 소리가 들렸다. 곰 청년들은 이미 출근을 마치고, 한데 모여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쭉쭉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듯 했다. 이들을 헤치고 들어가 구석 한 곳에 가만히 자릴 잡았다. 낯선 방문객에 쏠린 눈길에 어색해 서 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나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 때, 내 옆에 서 있던 안경 쓴 곰 청년 한 명이 "안녕하세요, 매니저님!"하고 웃으며 인사를 해줬다. 당황해서 "아, 안녕하세요. 근데 저는 매니저 아니에요"하고 손사래를 쳤다. 그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던 거였다. 다를 바가 없었다. 몇몇은 조금 낯선 듯 스쳐 지나갔고, 또 다른 몇몇은 먼저 다가와 밝고 씩씩하게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네줬다. 그렇게 곰 청년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주로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곰 청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나)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새로 온 매니저님이세요?"(곰 청년)
"아, 저는 기자에요. 여러분들 취재하러 왔어요."(나)
"아, 기자님이시구나. 기자님, 안녕하세요! 어디 기자세요?"(곰 청년)
"그럼 방송에 나오시는 거예요?"(또 다른 곰 청년)

의자에 앉아 있을 땐 따뜻한 일도 있었다. 덩치가 크고, 안경 쓴 곰 청년 한 명이 옆에 살며시 앉았다. 나이를 물으니 스물 한 살이란다. "부럽다"는 말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기자라고 통성명을 했더니, 글쎄 이 곰 청년이 무척 고맙게도 공감(共感)의 위로를 건넨다. "일이 너무 많으시죠?", "기자는 힘들다고 들었어요", "고생이 많으실 것 같아요", "주말에도 일하신다고요?" 등의 말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 물었더니 "오며가며 들었다"며 씩 웃었다.



'곰 청년'이 잘할 수 있도록




박지은 베어베터 매니저(오른쪽)가 사원(왼쪽)과 상담하고 있다. 베어베터 교육팀은 사원들이 동료와 힘들었던 일, 잘 안 되는 일 등 다양한 어려움에 대해 밀접하게 고민을 나누고,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박지은 베어베터 매니저(오른쪽)가 사원(왼쪽)과 상담하고 있다. 베어베터 교육팀은 사원들이 동료와 힘들었던 일, 잘 안 되는 일 등 다양한 어려움에 대해 밀접하게 고민을 나누고,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곰 청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박지은 베어베터 매니저를 만났다. "평소 체헐리즘 기사를 잘 보고 있다. 기자님 팬이다"란 말에, 몸 둘 바를 몰랐다(감사해요 꾸벅). 특수교육을 전공한 그는, 베어베터에서 곰 청년들 교육을 맡고 있다. 아침 조회 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는 가방을 어떻게 메야 할까요? 앞으로 메야하겠죠?", "아는 사람을 만난다고 큰 소리로 말하면 될까요?" 등의 이야길 반복해서 하는 사람. 그게 박 매니저다. 그리고 곰 청년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떤 게 힘들고 잘 안 되는지, 이야기를 듣고 돕는 역할을 한다.

베어베터에서 비장애인 매니저들의 역할이 대부분 이랬다. 곰 청년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조금 힘든 일은 나서서 하는 것. 그리고 혹시나 곰 청년들이 힘든 부분이 없도록 섬세하게 신경 쓰고 배려하는 것. 모든 사업 분야에서 그렇게 어우러져 잘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직무에도 능통해야 하지만, 발달장애인을 이해하는 측면에서도 채용 단계에서부터 고민할 뿐 아니라 충분히 교육하고 있단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 어떻게 함께 일을 잘할 수 있는 지 말이다.

베어베터에서 일하며 보니, 곰 청년들과 함께하기 위한 고민들이 곳곳에 잘 녹아 있었다. 5일 아침엔 곰 청년 한 명과 함께 명함 배송을 갔다. 지하철을 타고 9호선 언주역 인근 한 회사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가방에 뭔가를 챙기기에 물으니, "지하철역에서부터 배송 장소까지 가는 길이 적혀 있는 지도"라고 했다. A4 용지엔 어느 역에서 타서, 어느 역까지 간 뒤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 지, 보기 좋게 크게 표시돼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해 배송하도록 한 것도 이를 유독 좋아하는 곰 청년들을 배려한 것이란다. 지하철 앞에 달린 '헤드라이트' 모양까지 구분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베어베터 사원들이 배송을 가기 전 종이 지도를 펼쳐 어디로 가야하는지 다시 확인하고 있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곰 청년들이라, 지하철역 기준으로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베어베터 사원들이 배송을 가기 전 종이 지도를 펼쳐 어디로 가야하는지 다시 확인하고 있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곰 청년들이라, 지하철역 기준으로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배송 도중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원인을 함께 뒀다. 곰 청년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나, 소통에 어려움 등이 있을 때 돕는 역할이다. 그래서 복지 관련 자격증이 있거나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이들과 함께 하도록 한다. 이날 배송 길에 동행한 권정숙 지원인(52)도 큰 딸이 발달장애라서 이들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했다. 권 지원인은 곰 청년과 처음 동행한 날, 그가 지하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만 봤었다고 했다. 그런데 충분히 기다려주니 어느 날 야구장을 지나가며 "나도 야구 좋아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지금은 대화를 많이 한다고. 그러면서 "이해하고 기다려주면 된다"는 걸 강조했다.

배송은 곰 청년들끼리만 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보통 3~4인조, 많게는 5~6인조로 움직이기도 한다. 10일 아침엔 곰 청년 3명과 함께 판교로 커피 원두 배송을 갔는데, 이중 '대장' 한 명이 있었다. 통상 여럿이 배송을 갈 땐 대장을 둔다고 했다. 그는 배송 후 확인 서명을 받고, 회사에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목에 목걸이처럼 걸린 단말기로 전화를 하기에 뭐냐 물으니 그걸로 보고를 한단다. 이 단말기는 보고 뿐 아니라 위치 추적 기능(개인정보 동의는 다 받는다)도 갖추고 있어, 곰 청년들이 혹시나 헤맬 때 찾는 역할도 한다. 이렇듯 배려가 섬세했다.



'일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에 맞는 일'




베어베터 사원들이 10일 꽃바구니 포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장을 마친 꽃바구니는 사원들이 직접 배송까지 한다./사진=이기범 기자
베어베터 사원들이 10일 꽃바구니 포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장을 마친 꽃바구니는 사원들이 직접 배송까지 한다./사진=이기범 기자

곰 청년들이 하는 업무도 실수 없이, 가장 잘할 수 있을 만큼 쪼개고 또 쪼갰다. '분업(分業)'을 통해 곰 청년들이 잘할 수 있는 일자리들을 만들어 냈다. 일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채용한 게 아녔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최적화 된 일을 만들어낸 거였다.

명함 인쇄하는 곳에서 일하며 둘러보니, 실제 업무가 그렇게 잘 나눠져 있었다. 명함에 들어갈 정보를 입력하는 사람, 이에 맞는 종이를 가져와 넣는 사람, 제대로 됐는지 확인한 뒤 출력하는 사람, 그걸 본 뒤 명함 자르는 기계에 넣는 사람, 쪼개져 나온 명함을 한 통 분량으로 모은 뒤 건네는 사람, 그걸 받아서 명함 통에 넣어 고무줄로 묶는 사람, 그리고 인수증을 확인하는 사람, 그걸 다시 포장하는 사람, 직접 배송하는 사람 등이다. 곰 청년들과 매니저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몰입하느라 숨죽이고 있는 그 순간이 좋았다.
분업(分業)화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배려들. 곰 청년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이 같은 매뉴얼들을 곳곳에 마련해 놓았다. 노하우는 장애인을 채용하는 다른 기업들에도 전파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분업(分業)화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배려들. 곰 청년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이 같은 매뉴얼들을 곳곳에 마련해 놓았다. 노하우는 장애인을 채용하는 다른 기업들에도 전파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 과정에서도 곰 청년들을 위한 촘촘한 배려가 있었다. 명함을 담는 자리에 앉으니, 책상 한쪽 모서리에 코팅 된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업체에 맞는 통을 준비한다', '전달 받은 명함 인쇄 상태 및 오타를 확인한다', '확인한 명함을 통에 담고 고무줄 묶는다', '인수증 확인을 담당하는 사원에게 전달한다' 등. 처음 이 자리에 앉은 나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절히 안내돼 있었다. 그리고 책상 한 가운데에는 명함을 주문한 업체 리스트가 붙어 있었다. 곰 청년들이 혹여나 헷갈리지 않도록, 실수하지 않도록.

같은 층 제본하는 곳에서도 제본 출력물 여러 개를 한 번에 모아서 가져오는 사람, 이를 각각의 책으로 나누는 사람, 그걸 다시 표지와 플라스틱 커버를 입혀 구멍을 뚫는 사람, 거기에 스프링을 끼우는 사람, 스프링을 기계로 눌러 완성하는 사람 등으로 나눠져 있었다. 플라워를 하는 2층에서도 꽃에 다는 리본을 1차로 만들어 스테이플러로 찍는 사람, 여기에 다른 리본을 추가로 넣어 철심으로 묶어 완성하는 사람 등이 구분돼 있었다.



'곰 청년'들이 날아다닐 수밖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빵들. 빵을 넣고, 넣은 빵을 포장하고, 이걸 다시 옮기고, 품질 검사를 하는 모든 과정이 척척 진행됐다.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빵들. 빵을 넣고, 넣은 빵을 포장하고, 이걸 다시 옮기고, 품질 검사를 하는 모든 과정이 척척 진행됐다.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니 혼란스럽지 않게,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됐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분업의 시너지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쉴 새 없이 옆 공정에서 작업하는 게 밀려들었고, 순식간에 완성물이 쌓였다. 캡틴 아메리카가 방패를 날리면, 그 옆에 있던 토르가 그걸 망치로 다시 때려 악당들 여럿을 잡는, 영화 어벤져스 한 장면이 생각났다.

체험하며 이를 온몸으로 느꼈다. 첨엔 솔직히 슬렁슬렁 해도 괜찮겠지 싶었다. 일이 잘 나눠져 있으니까. 그 중 하나만 맡아서, 잘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녔다. 곰 청년들은 진정 능숙했다. 날아다닌단 표현이 잘 어울렸다.

베어베터 빵을 포장하는 일을 할 때였다. 왼쪽에 있던 곰 청년이 빵을 비닐 포장지에 담아 주면, 그걸 받아 포장지 테이프를 뜯고 붙여 밀봉한 뒤, 쟁반에 차곡차곡 담아야 했다. 그런데 빵 담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포장 속도가 따라가질 못했다. 접착 부위 파란색 테이프가 잘 안 떼어져 헤매고 있는데, 금세 포장을 기다리는 빵이 대여섯 개씩 쌓였다. 보다 못한 다른 곰 청년이 쌓여 있는 빵을 함께 포장해줬다. 지원군이 나타나니, 어찌나 든든하던지. 일에만 집중해도 벅차서 진땀이 났다. 앞에 있던 곰 청년이 "기자님, 인터뷰는 안 해요?" 하고 묻기에, "잠시만요"만 반복해서 외쳤다. 빵에서 시선도 못 뗐다.
곰 청년이 만든 리본(왼쪽)과 내가 만든 리본(오른쪽). 손재주가 좋다고 자부했건만./사진=좌절한 남형도 기자
곰 청년이 만든 리본(왼쪽)과 내가 만든 리본(오른쪽). 손재주가 좋다고 자부했건만./사진=좌절한 남형도 기자

플라워 분야에 가선 꽃바구니에 붙일 리본 만드는 일을 했다. 눈썹이 짙은, 똘똘한 곰 청년이 리본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검은색 점이 찍혀 있는 연습용 리본을 들고, 대 여섯 번을 접으면 되는데 모양이 잘 안 났다. 손가락이 긴 곰 청년이 수차례 먼저 시범을 보여줬음에도. 겨우 하나 완성을 했더니, 그는 "모양이 좀 아닌 것 같다"며 리본을 가져가서 여러 번 다시 매만졌다. 그러니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곧 예쁘게 모양이 잡혔다. 플라워 작업을 총괄하는 매니저는 "장례식장 근조 화환에 들어가는 리본 등은 만들기 정말 어려운데, 저희보다 더 잘 만드는 곰 청년들도 있다"고 칭찬했다.



“비오면 어때요”…일한다는 자부심




"비가 와도 괜찮아요." 궂은 날씨에도 발걸음을 재촉하는 곰 청년들, 일하는 게 곧 자부심이고 자랑거리다./사진=남형도 기자
"비가 와도 괜찮아요." 궂은 날씨에도 발걸음을 재촉하는 곰 청년들, 일하는 게 곧 자부심이고 자랑거리다./사진=남형도 기자

10일 오전, 곰 청년 셋과 판교에 커피 원두 배송을 가던 날이었다. 비가 쏟아진다기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쳐서 비 냄새만 슬며시 남아 풍기던 아침. 오른손으로 그들이 멘 가방 밑바닥을 슬쩍 들었다. 무게가 꽤 무겁기에, "몇 개냐 들었느냐" 물으니 "5개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총 15개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무겁지 않느냐"고 하니 이구동성으로 괜찮단다. 무겁겠다고 재차 말하려다, 곰 청년들의 표정이 빛나는 걸 보고, 걸음걸이가 씩씩한 걸 보고, 그만 말을 삼켰다. 정말 괜찮은 모습이라서.

그러니까, '의심'이 많은 게 생명인 직업인 터라, 사실 곰 청년들에게도 슬쩍 많이 물어봤었다. "혹시 일하는 것 힘들지 않아요?"라고. 특히 매니저들이 없을 때 집중적으로. 혹시 베어베터가 힘들게 하는 건 없나 싶어서. 순박한 곰 청년들이 고생하진 않았으면 싶어서. 그랬는데 다들 "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어떤 게 좋냐니까 그냥 막연하게 좋단다. "학교에 있을 때랑, 일할 때랑 어떤 게 더 좋냐"고 물으니 당연히 후자란다. 그 막연한 대답에서 진정 일하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봤다.
"원두 15개, 무사히 배달 완료." 한결 가벼워진 가방을 들고, 가볍게 발걸음을 내딛는다./사진=남형도 기자
"원두 15개, 무사히 배달 완료." 한결 가벼워진 가방을 들고, 가볍게 발걸음을 내딛는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들에겐 그저 기회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그것도 이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이제 스물 한 살이라던 한 곰 청년은 "예전 직장에선 허드렛일만 했는데, 이곳에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좋다"고 했고, 하루 4시간 일한다는(오전 근무조) 곰 청년은 "앞으로 더 잘해서, 종일반(8시간 근무)에서 일하고 싶다"며 목소리에 힘을 줘 말했다. 정장을 말끔하게 입고, 넥타이까지 멘 곰 청년에겐 "덥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정신없이 인터뷰를 하느라 성수역에 도착한 것도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그런데 곰 청년이 정확히 알려주는 바람에 무사히 내렸다. 늘 시계를 보며 긴장하고 있던 그는, 진정 '프로'였다.

커피 배송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성수역에 도착했다. "오늘 비가 안 와서 다행"이라며 "고생할 뻔 했다"고 내가 말했다. 그 때 곰 청년이 답한 한 마디가 날 숙연하게 했다. "비가 와도, 배송 가는 것 괜찮아요."

그 말에서 느꼈다. 사회가 제 멋대로 씌워 놓은, '발달장애'란 테두리와 굴레 안에서, 이들은 살면서 처음으로 가치를 인정해주고, 기회를 주는, 이 일이 얼마나 필요했을지. 공사장을 지나던 길에 "기자님, 차가 와요" 하며 내 어깨를 한쪽으로 밀어주던 배려에 하루 내 쌓여 있었던, 몇 번이고 스스로 묻고 또 물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곰 청년에겐 더 많은 일이 필요했다.



곰 청년들은 다르지 않다




발달장애인들에 그동안 체육 시설이 '치료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베어베터와 제휴를 맺고 있는 별별센터는 발달장애인들이 즐겁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사진=남형도 기자
발달장애인들에 그동안 체육 시설이 '치료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베어베터와 제휴를 맺고 있는 별별센터는 발달장애인들이 즐겁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사진=남형도 기자

체험이 끝나자 곰 청년들은 "기사가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다. 몇몇은 이미 나오는 줄 알고 찾아보기도 했단다. 그런 그들을 위해 꼭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정말 중요한 말이라서, 마지막 문단에 배치했다. 긴 기사라 집중력이 흐트러질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이 이야기만큼은 잊지 않고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곰 청년들은 다르지 않았다. 이따금씩 목소리가 큰 이들도 있고, 가끔 소통이 서툴기도 하고, 또 몇몇은 행동이 좀 느리더라도 말이다. 그런 건 사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 아닌가. 곰 청년들도 그런 특성 중 하나를 갖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이들도, 반복해서 알려주면 잘 안다고 했다. 기다려주니 좋아졌다고 했다. 온 사회가 경쟁으로 치닫느라 그런 시간도, 기회도 주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렇게 내쳐진 곰 청년들을 베어베터는 이해하고 배려하고 기다려줬다. 그러니 마침내 그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베어베터에서 만난 곰 청년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봤다. 8층 베어베터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6층에서 다른 층 회사원들이 내리려 했다. 그 때 앞쪽에 서 있던 곰 청년들은 누구보다 재빨리 내렸다. 오히려 다른 회사원 몇몇은 스마트폰을 하느라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러자 내리던 회사원들이 곰 청년들에게 "감사합니다"하며 인사했다. 플라워 업무를 할 땐, 리본 매는 걸 알려주던 곰 청년이 목소리를 좀 크게 냈다. 그랬더니 한 매니저가 "조금 작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곰 청년은 소곤소곤하며 목소릴 절반으로 낮췄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다.
곰 청년이 기자에게 건넨 커피캔 하나.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마실지. 농담이고 단숨에 다 마셨다, 피곤해서./사진=남형도 기자
곰 청년이 기자에게 건넨 커피캔 하나.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마실지. 농담이고 단숨에 다 마셨다, 피곤해서./사진=남형도 기자

일하면서 본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2만보씩 걸을 땐 힘든 날도 있단다. 저녁 7시까지 야근하는 날엔 피곤할 때도 있다고 했다. 휴게실에 모여선 "OO 부서에서 일하는 게 더 좋다"고 했고, "오늘은 빨리 끝나서 좋다"고 하기도 했으며, "내일은 쉬는 날(현충일)이라 늘어지게 잠을 자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첨엔 누가 비장애인 매니저이고, 누가 곰 청년인지 찾던 나도 달라졌다. 어느 순간, 함께 일 하는 이들을 구분 짓지 않고 있단 걸 깨닫게 됐다. 경계가 필요한 게 아녔다. 그저 다들 함께 어우러져 일 하는 이들이었다. 커피 캔 하나를 건네며 "기자님, 고생이 많아요"라는 곰 청년 말에 힘이 났고, 나 또한 "정말 고생 많아요"하며 응원을 건넸다.

그 때 난 베어베터를 사전 취재하면서 봤던, 김정호 대표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뜻을 알게 됐다. "이 회사는 없어져야 한다"던 의미를. 곰 청년들이 특히 많이 일하는 회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모든 회사에 곰 청년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래야 함께 사는 좋은 사회라 부를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내 주위에서 곰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도 생각했다. '곰 청년과 함께 취재를 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도.
곰 청년들에게 깔끔한 와이셔츠를 맞춰서 준 건, 혹시나 세상의 잣대로 차별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그런 마음이 담겼다. 퇴근하는 곰 청년의 와이셔츠엔 '곰 청년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곰 청년들에게 깔끔한 와이셔츠를 맞춰서 준 건, 혹시나 세상의 잣대로 차별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그런 마음이 담겼다. 퇴근하는 곰 청년의 와이셔츠엔 '곰 청년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적당히 후덥지근한 날씨에 아이스크림이 무척 당겼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베어베터 휴게실 카페서 먹었던, 그 500원짜리 우유 소프트 아이스크림이었다. 입에 녹으면 시원하면서 부드러운 탄력이 있고, 적당히 고소하면서 달짝지근한. 곰 청년이 인심 좋게, 넉넉하게 담아줬던. 그 아이스크림은, 내로라하는 아이스크림 업체와 비교해도 더 나았다. 하루에 아이스크림 6개씩 먹고, 투OO 아이스크림 통도 하나씩 비울만큼 좋아하는 내가 호언장담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곰 청년 한 명이 퇴근하는 중인지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성수역 에스컬레이터를 함께 타고 오르는데, 곰 청년이 입은 파란색 셔츠 윗부분에 적힌 문구가 새삼 눈에 크게 들어왔다. 'BEAR MAKES THE WORLD BETTER(곰 청년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 거기에 내가 하고픈 말들이 다 담겨 있었다.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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