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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얼굴 공개, 여자에게 유독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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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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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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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공개 결정, 공개 요구 여론에 근거해 목사·의사·경찰·변호사 등 심의위서 결정… 주관성·모호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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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고유정, 김다운, 안인득 /사진=뉴스1
"뭘 잘했다고 얼굴을 숨기냐. 머리카락 치우고 얼굴을 들라." (지난 12일 전 남편 강모씨(36) 살해 피의자 고유정(36)씨가 제주지검 송치 과정 얼굴을 가리자, 유가족들이 고씨를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얼굴 공개냐." (지난 3월26일 경기 안양동안경찰서 앞에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33)의 부모 살해 피의자 김다운씨(34)가 바람막이로 얼굴을 가리자 이를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고씨의 얼굴 공개가 결정된 이후 고씨가 머리카락으로 가리며 얼굴 공개를 강력 거부하고, 고씨 가족 신상 정보가 노출되는 등 2차 피해도 잇따르면서 강력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에서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정보 공개가 실시된 지는 올해로 10년째다. 하지만 아직까지 객관적인 기준이 없이 공개가 이뤄져 지속적으로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10년째 시행 중… 올해만 3명째 공개
2008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강도·살인·강간 등 강력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추가 범죄의 예방과 국민의 알권리의 보장을 위해 피의자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2010년 4월, 피의자의 얼굴 공개를 허용하는 것을 주축으로 하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후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강력 사건 △또 범죄를 소명할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는 경우 △마지막으로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등 총 4가지에 해당하는 사건에 한해 피의자 신상공개가 이뤄져왔다.

신상공개는 큰 잡음 없이 이뤄지는듯 했다. 2010년 이후 한 해 최대 3명을 넘지 않았고, 2013년에는 한 건도 없는 등 제한적으로만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1~6월 사이 3명이나 공개되며 문제 의식이 커졌다.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의 부모를 살해한 김씨와 진주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안인득씨(42), 전 남편 강씨를 살해한 고씨 등이다.

◇얼굴 공개 실효성 논란… 무죄추정 원칙에도 벗어나
올 들어 많은 수의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실효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졌다.

경찰은 '사회적 관심', 즉 여론에 기반해 사건을 맡은 해당 지역위원회에서 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기본적으로 여론을 민감하게 체감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이며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위원회는 경찰과 변호사, 목사, 의사, 언론인, 시민단체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때는 정신과 의사가 참여했고 2016년 '제주성당 묻지마 살인사건' 때는 목사가 참여해 신상공개 결정을 논의했다.

정철호 안동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논문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에 대한 법적 고찰'을 통해 피의자 신상공개 관련 법적 문제들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신상공개가 향후 범죄피해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학술적,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법원의 유죄 판결이 있기 전에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이며, 피의자의 프라이버시나 인격권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제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사진=제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실제 고씨의 신상이 공개된 이후 고씨의 출신 학교, 졸업사진 등은 물론이고 고씨 가족의 신상정보까지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이에 따라 지난 7일 제주지방경찰청은 페이스북에 "제주에서 발생한 '전 남편 살인사건' 관련,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의 신상 정보 등을 게시하거나 유포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또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 등에 게시 중단과 검색차단 등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후 신상공개의 부작용을 경찰이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전 남편 살해' 피의자 고유정(36·여)이 지난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머리카락으로 얼굴(왼쪽부터)을 가렸으나 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진술 녹화실로 이동하며 고개를 들고 얼굴을 보였으나 12일 제주지검으로 송치되면서 또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2019.06.12.    /사진=뉴시스
신상 공개가 결정된 '전 남편 살해' 피의자 고유정(36·여)이 지난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머리카락으로 얼굴(왼쪽부터)을 가렸으나 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진술 녹화실로 이동하며 고개를 들고 얼굴을 보였으나 12일 제주지검으로 송치되면서 또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2019.06.12. /사진=뉴시스
◇기준 없어 여자 살해 피의자에만 가혹?
피의자 신상 공개를 둘러싼 원칙이나 기준이 주관적이고 모호한 만큼 형평성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고씨의 신상 공개를 두고 일부 여성들은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얼굴이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즉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사건들이 수적으로 훨씬 많은데, 여성이 남성을 살해한 데 대해서만 유독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다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상견례를 앞두고 예비신부를 춘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심모씨(28)는 고씨 사건과 범행 수법이 유사하지만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왼쪽),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사진=뉴시스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왼쪽),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사진=뉴시스
또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보다 남성일 때, 피의자 신상 공개가 더 자주 이뤄진다는 주장도 있었다. 여성이 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흉기로 여성을 살해했다는 의혹에 따라 '여성혐오' 관련 시위를 촉발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정신과 치료 전력'이 이유였는데, 반면 지난해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의 경우 역시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고 역시 흉기로 피해자(남성)를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상이 공개됐다.

이 같은 형평성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상공개 결정이 여론에 근거해 이뤄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신상공개 문제는 인권침해 등 논란을 동반하기에 여론이 뒷받침될 때만 제한적으로 이뤄지는데, 잔혹한 범죄라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건이라면 신상공개 논의 없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여성이 살해 피의자인 경우나 남성이 살해 피해자인 경우, 그 수가 적기에 그 만큼 여론의 이목을 더 끄는 경우가 많다.

경찰청 관계자는 "다양한 논란과 관련해 피의자 신상공개에 일관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신상공개 결정한 뒤라면… "강제성 필요"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가 합당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신상공개가 결정된 뒤에도 제대로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경우도 다수다. 피의자가 이를 강력 거부하면 신상공개를 위해 얼굴 공개를 강제할 방안이나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씨는 지난 5일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됐지만 줄곧 머리를 풀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에 경찰은 '머리를 묶자'며 고씨를 설득했다. 얼굴 공개를 결정한 경찰이 했던 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 뿐이었다.

앞서 지난 3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의 부모 살해 피의자 김씨 역시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에 따라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지만, 바람막이 형식의 외투를 목 위까지 모두 올려 얼굴을 모두 가렸다.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렸던 이희진씨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다운이 지난 3월26일 오후 경기 안양동안경찰서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2019.03.26.   /사진=뉴시스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렸던 이희진씨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다운이 지난 3월26일 오후 경기 안양동안경찰서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2019.03.26.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의자가 얼굴을 가리려는 심리는 자연스러우므로 신상공개 제도를 운영할 것이라면 강제력을 부여해 제대로 운영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고씨 입장에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려는 심리는 당연하다"며 "가족이 있는데 누가 뻔뻔하게 얼굴을 드러내려 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신상공개 제도가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증명사진 조차 공개할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신상공개라는 제도를 끼워넣어 운영을 하고 있다"며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신상공개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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