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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할머니 잠들자, 간병인은 비로소 울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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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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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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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돌봐도 '시급 3400원', 열악한 간병인의 삶…잠 못 드는 경우도 다반사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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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간병인이 된 기자. 파란 가운까지 입긴 했지만, 막상 무슨 일을 해야할 지 몰라 다른 간병인들을 쫓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늘 그랬듯 두툼한 턱살은 블러 처리하였다./사진=간병인 A씨
치매 할머니 잠들자, 간병인은 비로소 울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오후 2시. 폭풍이 휘몰아치던 병실도 겨우 고요해졌다. "저녁 밥 차려야 한다"던 이모 할머니(87)는 쌔근쌔근 숨을 죽였고, "약 먹기 싫다"던 송모 할머니(85)도 아기처럼 얌전해졌다. "이제 낮잠 잘 시간이에요." 이를 지켜보던 간병인 A씨가 나지막이 설명했다.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던 그는 그제서야 처음 앉았다. 병상 옆 간이 침대가 잠자는 곳이자, 쉬는 곳이었다. 그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던 나도, 그 옆에 가만히 앉았다. 까먹고 있던 피로가 다리에서 어깨로, 그리고 눈으로 올라와 고개가 무거워졌다.


눈꺼풀에 눈을 묻은 채 얼마나 쉬었을까. 오른편에서 훌쩍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살짝 곁눈질을 하니, 스마트폰 영상을 보던 A씨가 울고 있었다. 눈을 비비느라 안경이 들썩들썩. 휴지를 건네려다 짐짓 모르는 척, 그냥 앞만 보기로 했다. 그에게도 맘 편히 울 시간은 필요하겠지 싶어서. 그리고 그게 할머니들이 겨우 잠든 지금인 것 같아서. 5분 정도 지난 뒤, 비로소 맘을 추스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슬픈 영상을 보셨나봐요." 그러자 A씨가 대답했다. "많이 힘든 시간을 견딘 것 같아서요."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한 가족 사연이라 했다.

돌봐야 할 사람이 여섯, 돌보는 사람은 둘. 짐작한 게 맞다. '간병인'을 자처한 날이었다.

아프다는 건, 삶에서 꼭 거치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중 하나니까.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좀 궁금했었다. 물론 나도 아팠던 적이 많다. 감기인 줄 알고 누워있다 열이 40도까지 끓어오른 새벽, 병원에 실려갔다 5일간 입원했었다. '홍역'이었다. 팔목을 다쳐 2주간 4인실에 입원했을 땐, 같이 있던 형님들과 호형호제했다. 족발을 시켜, 소주 한 병을 숨겨달라고 해 몰래 나눠 홀짝이곤, 간호사 선생님에게 걸릴까 숨죽였던 기억들. 근데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아플 때 돌봐주는 이들의 삶을 경험하고 싶었다.

의사·간호사 선생님 모두 불철주야 고생하지만, 그중 간병인은 좀 각별하게 느껴졌다. 환자 맘이 무너질 때, 가장 가까이서 돌봐야하니까. 또 열악하단 얘길 많이 들어서,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동안 많이 조명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시선(視線)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밀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간병인이 돼 보기로 했다. 섭외가 쉽잖아 충북 제천 명지병원에 가서야 할 수 있게 됐다(발 벗고 도와준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께 감사). 6월18일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7시간 동안 체험했다.



'낙상'과 '욕창'을 맘에 새기고




병상 위쪽에 '낙상 고위험군'이라 표시돼 있는 환자들은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병상 위쪽에 '낙상 고위험군'이라 표시돼 있는 환자들은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3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병원. 부랴부랴 올라가, 옷을 병원복으로 갈아 입고 4층 병실로 갔다. 할머니 여섯 분이 입원해 있는, 공동간병인 병실이었다. 출입문 옆 달린 입원 환자 이름표를 보니 평균 나이 83.5세(암산한 것 아님). 대부분 고령이라 긴장이 됐다. 믿을 건 간병인 두 분 뿐. 들어가니 간병인 A씨와 B씨가 "아이고, 멀리서 오셨다"며 반갑게 맞아줬다. A씨는 간병 경력 15년, B씨는 5년이라 했다. 이름, 나이를 물으니 쑥스러운 듯 얼버무렸다. 노출되는 걸 원치 않는단 뜻으로 알고, 더 묻지 않았다.

'초짜 간병인' 모드를 발동하고, 병상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이래봬도 코흘리개 때, 동네 어르신들에게 "고놈 인사 잘한다"고 사랑 받았었다. 물론 여섯 살 때, 동네 형(30)에게 '바보 똥꼬'라고 놀렸다가 손 들고 벌을 선 적도 있지만(TMI). "어떻게 왔냐"고 묻기에, "할머니들 뵙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병상 머리맡과 아래쪽, 두 군데에 적힌 이름과 나이, 입원 날짜를 외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오셨는지 물었다. 할머니 두 분을 오래 전 떠나보낸 터라, 괜시리 옛 생각이 났다.
낙상 환자 안전 관리 요령을 설명해주고 있는 간호사. 침대 난간을 항상 위로 올려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하다간 뇌출혈이나 골절 등 위험에 빠질 수 있다./사진=긴장한 남형도 기자
낙상 환자 안전 관리 요령을 설명해주고 있는 간호사. 침대 난간을 항상 위로 올려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하다간 뇌출혈이나 골절 등 위험에 빠질 수 있다./사진=긴장한 남형도 기자

의욕만 앞서 쓸모 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 친절한 김지애 간호사가 왔다. 그가 내민 '간병인 서약서'를 읽었다. '밝은 표정으로 예의를 지키며'란 문장을 읽으며, 어색하게 활짝 웃어봤다. 뭉쳐 있던 안면 근육이 다소 저항했다. '간병인은 환자 상타에 따라'란 오타를 보곤, 백스페이스를 눌러 고치고 싶어 혼났다(직업병).

가장 중요한 주의사항 두 가지는 '낙상(넘어지거나 떨어져 다치는 것)'과 '욕창(한 자세로 오래 누워 있을 때 피부 등 조직이 죽는 것)'이라 했다. 아무래도 연세가 많고, 긴 시간을 누워 계시니, 쉽게 짐작이 됐다. 김 간호사는 "침대 난간을 항상 올리고, 휠체어를 이용할 땐 잠금장치와 안전벨트를 꼭 매라"고 당부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 2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각 병상엔 누가 '낙상 고위험군'과 '욕창 위험 환자'가 표시돼 있었다. 한 가지 더, 손은 수시로 닦으라 했다.



가장 약할 때, 가장 가까이에




인공 관절을 넣어 무릎을 수술한 윤모 할머니. "언제 걸을 수 있겠느냐"며 많이 답답해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인공 관절을 넣어 무릎을 수술한 윤모 할머니. "언제 걸을 수 있겠느냐"며 많이 답답해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발걸음이 금세 분주해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할머니가 다 도움이 필요했다. 자세를 바꾸는 것도, 몸을 일으키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도, 밥을 먹고 약을 먹는 것도. 이쪽 병상으로 와 있으면, 저쪽 병상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가면, 또 다른 할머니가 찾았다. 뒤에도 눈이 달린 듯, 이쪽 일을 해결하며 저쪽 일까지 예정하고 있었다. 초짜 간병인인 난, 감히 엄두도 못 냈다. 바삐 따라다닐 뿐.

힘껏 내봐도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자그마한 움직임조차 힘겨워하는 모습. 기나긴 세월에, 병(病)까지 온몸으로 맞은 이들은, 아마도 살면서 가장 약한 순간에 놓여 있을 터였다. 가까이서 한 분씩 마주하니 여실히 알게 됐다.

50일 입원했다 퇴원한 뒤, 다시 병원에 왔다는 박모 할머니(82). 폐렴에 면역력까지 떨어졌단다. 자꾸 누워 있으려 하는 할머니에게 간병인 A씨는 "할머니, 자꾸 누워서 주무시고 하니까 눈도 붓고 얼굴도 붓고 그렇잖아"라며 걱정 섞인 핀잔을 줬다. 얼굴을 가린 채 못 들은 척하자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아? 그러면 안돼"하며 재차 재촉했다. 윤모 할머니(81)는 무릎이 안 좋아 인공 관절 수술을 했다. 왼쪽은 마치고, 오른쪽만 남았다는 할머니는 "사람 걸어 당기는 거 보면 부럽다니까"라며 신세 한탄을 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이모 할머니. 기자를 손님이라 여겼는지, 자꾸 "밥을 차려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당혹스러웠다./사진=남형도 기자
치매를 앓고 있는 이모 할머니. 기자를 손님이라 여겼는지, 자꾸 "밥을 차려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당혹스러웠다./사진=남형도 기자

치매를 앓고 있단 이모 할머니(87)는 자꾸 뭘 널어놓으라 했다. 간병인 B씨가 "응응, 내가 다 해놨어. 걱정 안 해도 돼"라고 답하자 할머니는 "저녁은 어떻게?"하며 되물었다. 새로 병실에 온 날 보고 "손님이 왔으니 밥 해야 된다"고 맘이 바쁘신 거라고. B씨가 "할머니, 아프잖아. 내가 할게"하고 안아주며 달래놓자, 할머니는 내게 "어디 살아?"하고 물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여기까지 왔어? 어떻게?"하고 되물었다. "할머니 뵙고 싶어서, 얘기 좀 듣고 싶어서 왔다"고 하자 "으응"하고 더 묻지 않았다.

"아들·딸들이 언제 오냐"며 자주 찾는다는 할머니들 옆엔, 사정 많은 보호자들 대신 간병인이 있었다. 간병비가 공동간병인실이 하루 4만원, 일대일 간병은 하루 8만원이라 하니 부지런히 벌어야 할터, 그러니 충분히 이해도 됐다.



차가운 할머니의 손, 꼭 잡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드렸다. 손에 열이 많은 편이라, 금세 따땃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이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드렸다. 손에 열이 많은 편이라, 금세 따땃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간병인들 역할은 불편한 신체 활동 보조에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큰 건 '정서적 지지'라 느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할머니들 마음을 일으키는 걸 봤다. 면역력에 피부가 약해져 간지럽다고 벅벅 긁던 박 할머니에게 A씨가 피부 연고를 발라줬다. 얼굴 구석구석을 바르고, 양쪽 팔도 살살 문지르고. 그걸 본 박 할머니가 소용 없단 듯 "아, 치워! 이거 바르나마나 계속 간지러운 걸 뭐"하며 누우려 했다. 그러자 A씨는 "자꾸 긍정적으로 얘기해! '아, 바르다보면 나을 것이다, 나을 것이다' 이래야지. '바르면 뭐하나'하면 낫겠어?"라고 했다.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얘기였다.

걷지 못해 답답하다며 울적해 있는 윤 할머니에겐 옛날에 퇴원한 환자 얘길했다. 할머니가 "그럭저럭 4주는 걸려. 아이고 답답해"하자 A씨는 "두 달 만에 간 환자 있었잖아. 그 분, 지금 나보다 더 잘 걸어"하며 "고맙다고 밥 사준다고 해서 나갔는데, 아주 쌩쌩 다니는 거야"라고 했다. 그 얘길 들으며 "그래?"하고 답하는 할머니의 구겨졌던 표정이, 1cm 정도 더 펴진듯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자주 뵙지도 못하고 떠나보냈던 할머니 두 분이 생각나서. 치매를 앓는, 이모 할머니에게 다가가 한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았다. 손이 차갑게 느껴져 맘이 안 좋았다. 몸에 열이 많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 온기로, 따숩도록 잡고 있었다. 서서 엉거주춤 그렇게 하고 있으니, 누워있던 할머니가 뭐라고 말했다. "네?"하고 가까이 귀를 대 들어보니 이런 얘기였다. "서 있으면 힘들어. 앉아." 기억이 스러져 없는 딸도 있다고 하시는 와중에도, 앞에 있는 어설픈 청년이 그리 고단해보였는지.

할머니 손을 15분 정도 붙잡고 있다가, 놓을 때쯤엔 많이 따뜻해져 있었다.



점심은, 불편하게 앉아 먹는 '냉동밥'




간이 침대 위에서 신문을 깐 채 단촐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간병인 두 분. 난 점심을 이미 먹은 상태였는데, 배가 또 고파서 옆에 껴서 한끼 더 먹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간이 침대 위에서 신문을 깐 채 단촐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간병인 두 분. 난 점심을 이미 먹은 상태였는데, 배가 또 고파서 옆에 껴서 한끼 더 먹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낮 12시. 간호 팀장이 지하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 해서, 간병인 분들과 먹으려 한사코 거절했다. 그랬더니 거듭 얘기해서, 그것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병원 지하 식당에 갔다. "그럼 간단히 먹고 올라올게요" 하자, 간호 팀장도 "어차피 우리도 밥 오래 못 먹어요"라며 웃었다. 잠깐 잊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엄청 바쁘다는 것을. 10분 만에 밥 먹고 올라가기도 한다고. 빨리 먹어야, 다른 동료들이 먹을 수 있으니.

부리나케 밥을 식도로 밀어 넣은 뒤, 올라오니 12시13분. "왜 이리 빨리 왔냐"고 해서 맘이 급했다고 했다. 체험도 고작 7시간 밖에 못하는 주제에, 늘어지게 밥을 먹고 있기엔 죄책감이 너무 커서. 할머니들을 일으키고, 테이블을 놓고, 식사를 부지런히 옮겼다. "맛있게 드세요"하며 수저와 젓갈을 놓아드리자 몇몇 분은 "고맙다"고 했다. 이 할머니 등 몇몇 분은 거동이 어려워, 직접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식사를 도와야 했다. "할머니, 아~ 한 숟갈만 더"하면서, "에이, 이것도 드셔야지, 옳지"하며 어르고 달래가면서. 그렇게 다 드시는 걸 보니 어찌나 배부르던지.

할머니들 식사를 돕고, 다 치우고 나니 1시간 만에 허기가 밀려왔다(실화?). 오후 1시20분이 다 된 시각, 간병인 분들도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푸릇푸릇한 쌈 채소에, 맛깔나게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된장. 그리고 보호자 한 분이 알록달록 예쁘게 싸다준 김밥. 그걸 보니 또 다시 배가 고팠다(뭘 했다고). 옆에서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 와서 앉으란다. "괜찮다"고 예의상 거절을 한 번 한 뒤, 부리나케 쪼르르 가서 앉았다.
낮잠을 자는 할머니들. 모처럼 병실이 고요해지면 간병인들도 비로소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낮잠을 자는 할머니들. 모처럼 병실이 고요해지면 간병인들도 비로소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식탁은 간이 침대. 자는 곳이, 곧 쉬는 곳이고, 또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열악할 데가. 허리를 꺾어 비스듬히 앉은 자세로, 그렇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밥은 어떻게 하시느냐" 물으니, 한 번에 밥을 많이 챙겨둬서 냉동해뒀다가, 하나씩 해동해서 먹는단다. 나무젓가락으로 밥을 집으니, 한 뭉텅이가 통째로 쑥 올라오는 게 아닌가. "이게 밥인지 떡인지"하며 B씨가 말하자, A씨가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어"라고 응수했다. 그래도, 보호자들이 많이 챙겨준단다. 쌈 채소도, 된장도, 다 고맙다며 챙겨다 준 거라고. 신문지 위 소담한 밥상을, '진수성찬'이라 하며 먹는 모습. 그걸 보는데, 김밥을 한 번에 너무 넣은 탓인지 목이 메었다.



'시급 3400원', 집에 가는 건 한 달에 한 번




바깥에 쉬이 나가기 힘든 간병인들을 위해 누군가 놓고간 카탈로그. 립스틱, 치약, 칫솔, 로션 등을 주문할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바깥에 쉬이 나가기 힘든 간병인들을 위해 누군가 놓고간 카탈로그. 립스틱, 치약, 칫솔, 로션 등을 주문할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할머니들이 단잠에 빠진 뒤, 간병인들이 그동안 지낸 얘길 들으며, 그런 고민에 빠졌다.

A씨는 몸이 한창 아플 때, 간병인들이 돌봐주는 정성에 감복해 이 일을 하게 됐단다. "들어올 때 눈도 못 뜰만큼 아팠던 환자가, 돌봐주며 건강해져서 나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반대로 더 나빠져 나가는 환자를 보면 그렇게 맘이 안 좋았단다.

하지만, 단지 이런 보람으로 버텨가며 하기엔 많이 열악했다. 24시간 일을 하는데, 처우를 조심스레 물어보니 월급이 250만원. "최저시급도 안 될 것"이라 해서, 실제 계산해보니 세후 시급이 '3400원' 남짓이었다. 참고로 올해 최저임금은 8350원,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간병인 두 분 다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여기에 식사 비용까지 다 포함돼 있단다.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묻자, A씨는 "매년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며 그냥 웃고 말았다.

이를 두고 누군가 "자는 시간은 빼야 하는 것 아니냐" 반문할 것 같아서,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병상 침대를 위 또는 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수동형 손잡이. 하루에 많게는 10번 가까이 올리고 내릴 때도 있어, 힘이 많이 든다고 했다. 자동으로 바뀌었으면./사진=남형도 기자
병상 침대를 위 또는 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수동형 손잡이. 하루에 많게는 10번 가까이 올리고 내릴 때도 있어, 힘이 많이 든다고 했다. 자동으로 바뀌었으면./사진=남형도 기자

자는 시간도 절대 맘 편히 못 잔다고 했다. 병실에 할머니가 여섯 분, 그런데 꼭 누군가는 잠을 안 자고 깨어 있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무슨 상황이 생긴다고 했다. 잠을 맘 놓고 자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기에 고약한 치매가 온 할머니라도 한 분 들어오는 날엔, 잠은 다 잔 거라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거나, 간병인에게 욕을 하거나, 이런 일도 다반사란다. 이래도 자는 동안 일을 안 하는 거라 할 수 있을런지.

게다가, 집에 가는 건 한 두 달에 한 번 뿐이란다. 2~3일 비우는 걸로 대체 인력을 찾는 건 무리라고. 열흘 이상 비울 수 있어야 대신 해줄 간병인을 업체서 보내준다고 했다. 그래서 병실에 꼼짝 않고 있는 게 많이 답답하다고 했다. 몇 시간 병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좀이 쑤셨기에, 그 기분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간이 침대 위에 '카탈로그'가 하나 있길래, "이게 뭐냐"고 물으니 생필품이나 화장품 같은 걸 주문하면 배달해주는 곳이란다.
옴짝달싹 못하는, 간병인들을 위한 고마운 서비스랄까.



중국동포 80%, 서비스 격차 극심…간병인 '사각지대'




치매 할머니 잠들자, 간병인은 비로소 울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병원에 정식 고용된 것도 아니고, 환자와 일일이 계약하는 방식이라 어디 하소연을 할 곳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얼마든 일할 준비가 돼 있는 중국 동포들이 밀려 들어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간병인 수는 18~20만명, 그중 중국 동포가 80% 정도 된다고. 의료계에 종사하는 한 전문가는 "숙식도 절실한 중국 동포의 경우, 월 200만원만 넘게 줘도 얼마든 일할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간병인협회 또는 업체 입장에선, 많을 수록 수익(수수료 매달 6만원 남짓)에 도움이 되니, 이 같은 중국 동포 간병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단다.

우후죽순으로 늘고, 관리를 못하는 새 피해를 보는 건 오롯이 환자 몫이다. 간병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커지는 것. 경력 10년 이상인 간병인 C씨는 "예전엔 치료 교육 등까지 다 받고 왔는데, 요즘 간병인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투입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이에 따라 간병 서비스에 대한 격차도,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를 두고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 및 보호자들도 늘고 있다.

최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하루 2만원)가 확대되고 있지만, 대안이 되긴 역부족일 거란 전망도 있다. 간호사와 환자 간 일대일 케어가 사실상 불가능 할 뿐 아니라, 간호사 업무 부담도 커지고, 이를 간호조무사 등 인력으로 커버하기엔 어렵다는 것. 의료계 한 전문가는 "6개월 교육 받고 투입되는 간호조무사보다, 수십년씩 환자들을 돌봐온 간병인들이 하는 게 서비스면에서 훨씬 낫다"며 "그럼에도 업계간 이해 관계가 첨예해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특히 간병 비중이 큰 요양병원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체감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간병인이 '관리 사각지대'에서 손 놓은 채 방치돼 있는 새,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런 추세다. 국가가 나서서 법망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아버지 간병 때문에 간병인을 썼다는 직장인 오모씨(45)는 "간병이 정말 필요한데, 대부분 중국 동포라 믿음이 많이 안 가고, 한국인들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어 참 힘들었다"하며 "비싼 비용, 간병인 서비스 질 관리 등을 국가가 왜 모르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간병인들이 먹은 그릇을 대신 설거지했을 뿐인데, "덕분에 호강한다"며 활짝 웃은 이들. 설거지는 내가 전문이라, 뽀드득 깨끗하게 씻었다. 돌보는 이들도 당연히 돌봄이 필요한 것을./사진=남형도 기자
간병인들이 먹은 그릇을 대신 설거지했을 뿐인데, "덕분에 호강한다"며 활짝 웃은 이들. 설거지는 내가 전문이라, 뽀드득 깨끗하게 씻었다. 돌보는 이들도 당연히 돌봄이 필요한 것을./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간병인들과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괜찮다"고 하는 걸, 빈 그릇을 억지로 뺏다시피 챙겼다. 큰 통 하나, 밥 그릇 두 개, 젓가락 두 개, 그래봐야 고작 그 정도였다. "아이고, 기자님 덕분에 처음으로 호강하네"라고 했다. 오늘 본 것 중에 가장 활짝 웃는 걸 봤다. 누군가를 돌보는 이들도, 돌봄이 필요한 거였다. 그 당연한 걸 생각조차 안 하고 산 건 아닐지.

세제를 묻혀 밥그릇을 뽀득뽀득 닦았다. 그리고 차가운 물줄기로 시원하게 헹궈냈다. 고단한 간병인 분들 마음도, 이렇게 조금이나마 씻기길 바라면서.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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