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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제로페이,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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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기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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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9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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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단추를 아무리 잘 끼워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풀고 다시 끼워야 맵시가 난다. 남은 단추까지 마저 끼우면 괴이해진다. ‘제로페이’가 그렇다.

제로페이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가 소상공인의 지급수수료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만든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연매출 8억원 미만인 소상공인에겐 수수료가 ‘제로’다. 출범 초기부터 제기된 것처럼 이 사업은 누군가 비용을 대야 한다. 제로페이를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가맹점을 유치하고 관리하는 게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가 예상한 것처럼 제로페이 사용률은 저조하다. 신용카드와 비교하면 지난해 12월 출범 후 5개월여 동안 사용건수와 사용금액 모두 0.01%도 안 된다. 수익이 날 리 없다.

돈은 계속 들어간다. 먼저 금융결제원이 플랫폼 초기 설치비로 39억원을 썼고 이후 운영비도 매년 35억원이 든다. 금융결제원은 은행들의 분담금으로 돌아가니 실상 은행 돈이다. 제로페이가 계좌이체로 대금을 내는 구조이므로 계좌이체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이 돈 역시 제로페이에 참여한 은행이 떠맡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관제페이’라는 지적이 일자 이를 비켜가고자 제로페이 사업을 전담하는 민간법인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 출연금도 은행에 청구했다.

‘자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세상에 ‘자발적 삥’은 없다. 계열 카드사의 잠재적 경쟁자인 제로페이에 돈을 내는 은행 입장에선 보면 이 돈은 세금과 다를 바 없는 준조세다.

정부의 직접적인 세금도 연이어 투입됐다. 정부는 올해 60억원의 제로페이 예산을 책정했다. 인프라 구축과 홍보 등을 위한 76억원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넣었다. 세금으로 만든 서울시의 공공시설도 동원됐다. 서울시 의회는 제로페이로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최대 30%를 할인해주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한 서울의 공공시설 수입 감소분이 연간 330억원이라니 그만큼을 나중에 세금에서 끌어다 메우거나 해야 할 것이다.

역시 세금인 정부의 업무추진비도 제로페이에 몰아주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업무추진비 등을 제로페이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국고금 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지방공공기관이 제로페이를 쓸 수 있도록 ‘지방공기업 예산편성기준’과 ‘지방출자출연기관 예산집행기준’을 바꿨다. 공공기관 돈도 제로페이 밀어주기에 쓰는 셈이다. 이 정도면 세금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단지 돈을 누가 대는가를 넘어서 신용카드나 민간페이 등 다른 결제시스템과의 불공정이나 형평성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궁극적인 문제는 이런 잡음과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제로페이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느냐다. 민간법인이 된다고 해서 가맹점 모집과 유지비, 마케팅비 등을 감당할 방법이 거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민간법인이 된 뒤에도 공무원을 동원해 가맹점을 유치하거나 세금으로 마케팅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간법인의 최고경영자로 낙하산이 가는 건 아닌지 등을 놓고 논란도 일 것이다. 내 사람을 심으면 사심이 있다고 비난받을 것이고 전문가를 쓰려면 비싼 몸값을 줘야 할 것이다.

[광화문]제로페이, 길을 잃다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하나의 문제풀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몇 가지 문제를 야기한 형국이 된 게 제로페이다. 물리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고 가던 길을 꾸역꾸역 가고 있지만 잡음은 사라지지 않고 무리수가 계속 된다. 아무리 선한 의도였다 해도 나쁜 결과에 대해 정치적·정책적 책임을 져야 하니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다. 그럴수록 정치적 공세나 시장의 비판은 더 거세질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 강기택
    강기택 acekang@mt.co.kr

    비즈니스 저널리즘의 최고 경지, 머니투데이의 일원임을 자랑스레 여깁니다. 독창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기사로 독자들과 마주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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