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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21세기 통신사선과 신(新)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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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민 기자
  • 2019.07.19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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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를 찾은 관람객이 전시된 반도체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소재에 쓰이는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추가로 외국환관리법상 우대제도인 '화이트(백색) 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아예 제외하는 내용으로 정령(한국의 시행령에 해당)을 개정하기 위해 이날부터 의견수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2019.7.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복이라는 두 글자로 축약되는 일본의 공세가 전방위적이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무회의 등에서의 공식발언에 일본 장관은 ‘사견이라지만’ 트위터를 통해 대거리할 정도다.

역사의 시계추를 돌려보자. 420여년전인 1592년 4월 일본군(왜군) 선발대 1만8000여 명을 태운 700여 척의 배가 바다를 새까맣게 뒤덮으며 부산포로 들이닥쳤다. 국토를 찢어놓았던 임진왜란이다.

새벽을 틈타 이동했다지만 조짐은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왜란 발발 3년 전인 1589년 일이다.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의 일본을 통일했던 실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해 여름까지 조선의 왕을 데려오라고 쓰시마 영주를 다그쳤다. 조선과 일본간의 교역으로 먹고 살던 영주는 고심 끝에 조선의 통신사 파견을 어렵사리 이끌어냈다.

임박한 전쟁 위험을 조선에 알려 대비토록 하고 통신사와 마주 대한 도요토미의 출병 의지를 늦추거나 꺾을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왜란 당시 권력자의 반성문이자 참회록이기도 한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9개월(1590년 5월부터 1591년 2월까지 ) 간 일본에 머문 통신사 황윤길(정사), 김성일(부사)는 귀국 후 문제의 보고를 올린다.

당쟁이 치열했던 당시 상황에서 서인 황윤길은 ‘반드시 전쟁(병화)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동인 김성일은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도요토미의 인물됨과 용모가 근거였다. 서인이었던 이이의 계책(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한 10만 양병설)은 혹세무민 수준이라며 불발된 데다가 정권의 주도권을 쥔 것은 이황의 수제자인 유성룡과 김성일 등 동인이었다. 자연스레 김성일의 의견이 채택됐고 방비 없이 전쟁은 현실이 됐다.

‘거짓을 보고한 게 아니라 혼란을 염려한 것’이라는 사후 주장을 내놓았던 김성일은 왜란 발발 후에는 행동을 통한 참회에 나섰다. 조선의 보루인 호남의 최후 방어선이었단 진주성 전투에서도 헌신했던 것. 일단 조정에서도 그를 벌주려다 국란 수습에 헌신토록 했다.

다시 현재. 20세기 전반기에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을 겪은 대한민국은 굴욕적인 조건이긴 하지만 외교적,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일본과 1965년 한일협정을 맺었다. 2015년에는 ‘피해자들과 논의하지도 않았지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위안부 합의도 있었다.

하지만 민심과 무관한 정부의 일방통행은 역풍을 불렀다. 2012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역사적 판결을 했다. 위안부 합의도 2017년 대선 국면을 거치며 파기 선언됐다.

그 사이 대통령 중 한명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화끈하지만 성급한 발언을 했고 심지어 대통령이 직접 독도를 방문하는 등으로 외교문제를 정치문제로 이용했다. 일본과의 막전막후 협상도 찾기 힘들었고 반일 민족주의만이 선으로 포장됐다. 부품소재 수입 다변화와 국산화 등 경제.산업판 10만 양병설 실행은 언감생심이었다. 합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국가 간 합의를 깰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김성일의 후견자였던 유성룡은 징비록 말미에 ‘앞수레가 이미 엎어졌는데도 뒤에 고칠 줄을 모르고 지금에 이르도록 오히려 엎어진 자국을 뒤따르고 있는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다만 요행을 믿을 따름이라 하겠다’고 한탄했고 ‘위태로운 일’이라고 울부짖었다.

마침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실물 크기로 재현해낸 ‘조선통신사선’이 다음달 일본으로 건너가는 행사가 열린다. 자치단체(일본 쓰시마와 한국의 부산) 차원의 축제긴 하지만 한일간 관계를 생각하면 시기가 남다르다. 21세기의 통신사선이 한일을 오갈때 갈등 해결의 실마리로 신(新) 징비록의 첫장을 써나갈 수 있을까. 요행을 믿는 후손을 향한 유성룡의 절규가 귀에 쟁쟁하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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