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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없는' 원단사업 노하우 "틈새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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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훈 기자
  • 2019.07.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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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백년가게' 동양직물 김기준 대표 "단순 판매만 했다면 폐업했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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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준 동양직물 대표. /사진=김지훈 기자
“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1960년대에는 양복지(양복용 원단) 점주를 대단한 부자로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양복지사업만 고집했다면 결국 폐업했을지 몰라요.”

김기준 동양직물 대표(71·사진)는 최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위치한 점포에서 기자와 만나 “섬유·의류산업이 사양산업화하는 환경에 맞서 새로운 상품개발에 힘을 쏟아왔다”며 장수가게를 일군 비결을 설명했다.

동양직물은 1980년 김 대표가 양복지 전문 취급점으로 설립한 직물점포다. 이후 사찰용 ‘승복지’(승복용 원단)를 개발하며 승복시장을 개척한 데 이어 천주교 성직자용 원단 등 차별화된 상품을 판매한다. 지난 5월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부터 30년 이상 업력을 보유하고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점포인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김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67년 이후 광장시장 양복지가게 점원으로 취업하며 직물 판매와 인연을 맺었다. 광장시장은 오늘날 ‘먹자골목’으로 유명하지만 당시엔 맞춤형 양복 수요에 힘입어 200곳 가까운 양복지가게로 북적였다. 그는 “청년 시절엔 양복에 넥타이를 탁 매고 일하는 모습을 동경했다”며 “(점원 생활을 하며) 잡일에서 시작해 판매기법, 상품정보 등을 배우며 창업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32세가 된 해 동경하던 양복지가게를 차렸지만 이미 양복지의 전성기가 끝나가는 단계였다. 기성복 수요가 늘며 양복 원단을 직접 구입하는 고객이 줄어든 것. 더욱이 동양직물은 골목 후미진 곳에 위치한 데다 일대엔 노련한 50대 중장년층 점주가 많아 젊은 김 대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는 “내 가게를 차리니 처음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면서도 “이내 장벽이 높게 쳐져 틈을 뚫기 어렵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김 대표는 우연히 시장에서 만난 스님의 말에 귀 기울이다 ‘대박 아이템’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스님이 원단을 둘러보며 ‘좋은 물건들이 있는데 승복 색(회색)은 왜 없느냐’고 물으셨다”며 “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을 위한 원단을 만들면 불교계의 수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80년대 초반 의류업체와 협업해 선도적으로 혼방 승복지를 개발했다. 양복지 소재에 폴리에스테를를 첨가한 제품으로 구김이 적고 세탁이 쉬운 제품이었다. 김 대표는 판로 개척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 사찰에 있는 스님들에게 직접 손글씨로 홍보편지를 보냈다. ‘귀의 삼보하옵고. 스님 의복생활의 개선을 도모하고자 저희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주문을 하실 때는 전화번호만 말씀을 해주시면 됩니다’는 내용이었다. 40년 전 이미 DM(다이렉트메일)마케팅을 펼친 셈이다.

효과는 적중했다. 전국에서 승복지 주문이 쇄도해 재고가 동날 지경이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부인으로 불심이 깊었던 고 변중석 여사도 트럭을 동원해 승복지를 대량으로 구입할 정도였다. 불교계에 보시하기 위해서다

종교용 원단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김 대표는 천주교 성직자용 원단까지 판매상품을 다각화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선 고학력화 추세에 발맞춰 학사복까지 다양한 직물상품을 출시했다.

김 대표는 “무한경쟁에 놓인 자영업자가 살아남기 위해선 단순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물건을 파는 것 만으론 부족하다”며 “나 역시 여전히 상품의 취급 직물의 색상, 품종을 비롯한 다방면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위해 애쓴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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