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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이야기[체헐리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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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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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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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國論) 분열, 멀찍이 떨어져서 본다면, 일본 입장에선 좋아할 것 같아서…

[편집자주] 지난해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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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아베(왼쪽) 일본 총리./사진=뉴스1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이야기[체헐리즘 뒷이야기]
'좌파'냐 했다. '문재인 정권'을 위한 기사냐 했다. 중국 사드 보복 때는 왜 입을 닫았냐고 했다. 일본 부품 들어간 카메라는 왜 쓰냐고 했다. 한일청구권협정 때 무상으로 받은 3억 달러(당시 환율로 1080억원 정도) 얘기도 했다. 그 때 피해 보상을 다 받아놓고, 왜 국제법을 우리가 어기냐 했다. 개인 청구권은 없단 얘기도 했다. 그러니 감정적이란다.

지난주(20일) 나간 일본 제품 불매 체험 기사를 향한 비판들이다. 관심이 뜨거웠다. 한 명이라도 더 참여했으면 했었다. 다행이라며, 내 기사에 댓글을 달고 종일 들락거렸다.

꼼꼼하게 살펴봤다. 지지하는 응원도, 비판하는 의견도, 뜬금없는 얘기도. 암튼 한글로 써 있는 건 다 봤다. 한국 사람이 하는 얘기니까. 그게 이념이 다르든, 관점이 다르든 간에. 각자 삶이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아는 것도 다르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게 필요한 때인 것 같아서.

특히 기사에 대한 비판은 상세히 들여다봤다. 기사 초반에 언급한 얘기들이다. 논리를 다투려는 게 아니라, 생각이 다른 부분이 알고 싶어서. 모든 게 다 다르진 않을테니, 어디쯤에선 그래도 생각이 만나지 않을까 싶어서. '공통분모'를 찾으면 대화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일부 일리 있는 얘기도 있고, 잘 모르고 하는 얘기도 있고, 반론을 펼치고 싶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일갈하고픈 맘도 있고. 여하튼 속으로 이런 저런 말들이 한 움큼씩 쌓여서, 참 생각이 많은 한 주를 보냈다.

촘촘히 따지는 기사를 준비하다 그만뒀다. 누가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한반도라는, 다 같은 배를 타고 있으니까. 옳고 그름을 겨뤄 이기거나 진들, 같은 한국 사람이니까. 지금 상황으로도 충분히 속상하니까.

다른 의견은 당연한 거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란 증거려니. 그래도 안타깝긴 하니까. 극우 세력인 아베는 장기 집권이 현실화됐고, 평화헌법을 고쳐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고, 일본에선 그리 똘똘 뭉치고 있는데, 우린 이러고 있다는 게.

어쩌겠는가. 흩어져봐야 우리 손해니까. 그러니 좀 멀찍이 떨어져서 '한국'을 생각해본다. 일본 입장에서 우릴 바라봐 본다.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 선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 선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그들은 좋아할 것 같다. 우리끼리 싸우는 걸. 똘똘 뭉치면 아마 두려워 할 것이다. 조선을 침략한 왜구가, 가장 두려워 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때 배 열두 척만 갖고 외치지 않았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가장 위기의 순간 힘을 합쳤고, 12척의 배로 일본 배 330척을 '수장(水葬)'시키지 않았나. 그 때 일본인들은 다 사라졌어도, 역사는 잊혀지지 않으니, 뼛 속 깊이 새겼을 것이다.

그 바람대로 지금까지도 이어지지 않나 싶다. 왜곡된 역사를 갖고 여전히 갈등하니까. '식민사관(일제가 한국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조작한 역사관)'이란 걸 남겨 놓았으니. 그들이 미국의 원자폭탄 두 방에 '무조건 항복'을 외치고, 1945년부터 한반도를 떠났지만, 왜곡된 생각들은 차마 떨쳐지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에 좌우 이념 갈등까지 겹쳐, 첨예하게 싸우는 중이다. 아베가 넌지시 웃을 일이다.

그냥 지켜볼 순 없겠다 싶다. 사실 갈등을 부추기긴 쉽다. 보수와 진보, 반일과 친일, 좁혀지지 않는 양쪽 입장을 대결(vs) 구도로 해놓고, 논란을 만들면 된다. 그럼 벌떼 같이 달려들어, 저마다 각자 주장을 펼 것이다. 잘 안다. 댓글은 수천 개씩 쌓일 것이고, 조회 수는 올라갈 것이다. 그럼 회사에선 반길지 모른다. 내용이 어쨌든 간에, 잘 보는 기사니까.

그렇지만 뭐가 남을까. 분열은 심해지고, 감정은 끓어오르고, 결론은 안 나고, 우리 힘은 줄어들게다. 국론 분열과 내분으로 수 없이 깨진 역사적 사례들을 다 열거하지 않아도, 그쯤은 알지 않을까. 비유를 좀 하는 게 나을까. 바깥에 적이 와 총을 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 뒤에 총을 겨누는.

그럼 어떻게 해야할 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생각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 여겼다. 역사적으로 이 정도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사진=뉴스1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사진=뉴스1

어디까지 거슬러가야 '소통'이 될까.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일까. 이걸 대체 어디쯤에서 좁힐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충분치 않은 협정이었단 점이다. 일본이 식민 지배를 인정한 게 아녔다. 한반도 통치가 합법적이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회담 내내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36년간의 식민통치에 따른 한국경제 파괴와 국민이 겪은 희생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한국의 민생안전과 경제협력을 위한 자금이라 고집했다. 이에 명확히 하지 못했다. 불법이란 걸 못 박고,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았어야 했건만 그리 못했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호하게 남게 됐다.

청구권 금액이 너무 적었단 비판도 나온다. 한국이 일본에게 받은 청구권 금액(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말이다. 장면 정권에서 외무 장관을 역임한 정일형 의원은 장면 정권이 일본에 요구한 금액(8억5000만달러)에 비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또 필리핀이 받은 배상액(무상 5.5억달러, 상업차관 2.5억달러)과 비교해도 부족하다 했다. 그리고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의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규정도 논란거리다. 그 규정을 내세워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됐다"고 주장하니까.

그러나 무작정 또 욕만 할 순 없다. 협상할 당시 비단 한일 뿐 아니라, '냉전 시대'란 특수 상황이 있었다. 1949년 10월 중국 본토에 마오쩌둥의 공산 정부가 생기고, 1950년 6·25가 발발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대응할, 전초기지가 필요했다. 그게 일본이었다. 이를 중심으로 한 '방공 지역통합구상'을 했다. 그러니 패전국 일본을 부흥시키길 원했다. 그러니 한국이 일본에 대해 식민지 지배 청산을 위한 배상 요구를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러니 원하는 걸 다 얻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기엔 우린 그 당시 국력이 많이 약했다. 외교 인프라도 열악했다. 한일 회담 당시 외무부 인원이 1948년 7월 최초 정원 160명으로 출발했고, 80명으로 줄었다가, 6·25 전쟁 중엔 30명으로 운영됐다. 반면 일본 외무성은 1950년 기준 직원만 1066명에 달했다. 그 무렵, 우린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경제 발전을 위해선 자금이 시급했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이 85불에 불과했단다. 미국 원조마저 1958년부터 양적으로 줄어들었단다.

부족한 게 많지만, 13년 8개월이란 교섭 기간 얻은 나름의 결과물이라 한다. 외교부 일본 담당 과장을 지낸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는 저서 '대일외교의 명분과 실리'에서 "개인의 청구권을 국내보상방식으로 유보시켰다는 불완전함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것 마저도 시대적 요구에 따른 한국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단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평가했다.

이완용./사진=위키백과
이완용./사진=위키백과

좀 더 거슬러서, 한 1910년 8월22일까지 가보면 어떨까. 식민 지배가 그 때부터 시작됐으니. 어찌 보면 한일청구권협정도, 뿌리를 들여다보면 식민 지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니. 일제가 '한일합병'이라 불렀고, 우리는 '경술국치(庚戌國恥: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라 일컫는, 그 역사적 사건 말이다.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통치권을 넘기도록 강제 체결한 조약 얘기다.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말이다. 국새도 찍혀 있지 않았고, 순종의 서명도 없었다. 자발적이라 일컬었지만, 사실은 조약 체결 당시 4대문과 경성 주요 입구에 예외 없이 군대가 있었단다. 그러니 식민 지배 자체가 불법인 거라고.

여기까지 오면, 의견이 다른 건 한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아닐까. 그럼 생각이 좀 맞닿게 될까. 35년 식민 지배가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사람은 그래도(우려스럽지만), 아마도 없을 테니. 이건 좌익이든, 우익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그리 다르진 않을 것 같으니.

그러면 거기서부터 다시 단추를 꿰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맞닿은 시점부터, 다시 뭉치면 되지 않을까. 그 땐 힘이 없어서, 제대로 따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힘이 생겼으니까. 일제 식민 지배가 잘못 됐다는 걸 먼저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우린 반만년 동안 단일 민족이었고, 숱한 외세의 침입에도 굴하지 않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근대화' 같은 명분 없이도 알아서 잘 발전해 왔으니까.
자위대 행사에 참석한 아베 일본 총리./사진=뉴스1
자위대 행사에 참석한 아베 일본 총리./사진=뉴스1

아베와 일본 우익 세력들은 지금도 1947년 패전 이후 만든, 평화 헌법9조를 개정하려 한다. 그 내용은 '전쟁과 무력 행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 금지' 등이었는데, 이를 바꾸려 한다. 전쟁 가능한 국가를 만들겠단 것이다. 2021년까지 세 번 연임한 아베는, 네 번 연임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장기집권이 현실화됐다.

혹자는 글로벌 시대에 무슨 전쟁이냐 한다. 정치적 이유로 반일을 앞세운다 한다. 경제 발전을 이유로 들어, 한일 협력이 우선이라 한다.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장담할 수 있는가. 35년 식민지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고. 이번엔 다를 거라고. 절대 당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 생각하고 국론을 모아봤으면. 이게 그리 큰 바람이 아녔으면. 지난주 일본 제품 불매운동 기사를 201만명(포털·홈페이지 합산)이 봤으니, 이걸 보고 의견이 조금이나마 모아졌으면. 그래서 이 글이,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이야기가 됐으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일본 전역서 가장 규모가 큰 신사) 참배.  호국신사이자 황국신사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서 사망한 자들의 영령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사진=머니투데이db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일본 전역서 가장 규모가 큰 신사) 참배. 호국신사이자 황국신사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서 사망한 자들의 영령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사진=머니투데이db
마지막으로, 강제 한일합병조약 문서를 첨부한다.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실제 벌어졌던 역사다.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절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함을 승낙함.
제3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 황후, 황비 및 후손으로 하여금 명기지위를 응하여 적당한 존칭 위엄 그리고 명예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보장하기 위해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함.
제4조. 일본 황제 폐하는 전조 이외의 한국 황족 및 후손에 대하여 사당한 명예와 대우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할 것을 약속함.
제5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훈공 있는 한인으로서 특히 표창을 행함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영작을 수여하고 또 은, 금을 수여할 것.
제6조. 일본 정부는 전기 병합의 결과로서 전연 한국의 시정을 위임하고 동시에 시행하는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의 신체와 재산에 대하여 충분한 보호를 하며 또 복리의 증진을 도모할 것.
제7조. 일본국 정부는 성의와 충실로 신제도를 존중하는 한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하는 한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 관리로 등용할 것.
제8조. 본 조약은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의 재가를 경한 것으로 공시일로부터 시행한 무증거로 양 전권위원은 본조약에 기병조인하는 것이다.

융희4년8월22일(서기1910년)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명치 43년8월22일(서기1910년)
통감자작 사내정의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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