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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프리즘]글로벌 IT 생태계 역린 건드린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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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 2019.07.3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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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정부 정책과제로 개발한 한국형 모바일 플랫폼 ‘위피’( WIPI). 관치형 기술정책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로 회자된다. 취지는 좋았다. 당시만 해도 이통사나 단말기별로 콘텐츠나 프로그램을 따로따로 개발해 납품해야 했던 상황. 호환되는 단일 플랫폼을 통해 낭비를 줄이고 세계 기술표준까지 주도한다는 야심찬 국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한국의 모바일 혁신이 늦어진 요인으로 비난을 받아야 했다. 2005년부터 국내에서 출시되는 모든 휴대폰에 의무적으로 위피를 탑재시킨 게 결정적 패착이다.

 정부 주도형 독자 플랫폼 개발사업은 ‘위피’만이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예속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에서 여러 번 추진된 독자 OS(운영체제) 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형 4세대 이동통신기술 ‘와이브로’도 있다.

 이들 사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글로벌 IT(정보기술) 생태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관 주도형 기술 생태계 조성 정책은 당장은 우리 기업과 시장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될 순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갈라파고스를 자청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용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받고 관련 산업은 경쟁력을 잃는다.

 IT 시장은 국경이 따로 없다. 기술변화 속도도 빠르다. 특정 기업이 모든 요소기술을 내재화할 시간적 여유도 여력도 없다. 국경을 초월해 경쟁력 있는 기업과 손잡고 적기에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부품·소재부터 단말기·플랫폼·서비스 영역에 이르기까지 IT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글로벌 분업체계가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첨단소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중국은 하드웨어 완제품 제조, 미국은 플랫폼(SW·서비스)에 강하다.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진 그 분야에 특화된 지역·기업들로부터 조달받다 보니 자연스레 역할이 구분됐다. 구글이 굳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도 모바일 시장의 최고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글로벌 분업체계 덕분이다.

 굳건했던 IT 공급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정치가 생태계 전면에 개입하면서다. 미국 트럼프정부의 반(反)화웨이 정책이 출발점이고 일본 아베정부의 반도체 수출규제 정책이 하이라이트다. 특정 국가나 기업의 제품 수입을 중단해 자국 기업을 지키는 보호무역 정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자국 기업들에 바이어와의 거래 단절을 강요한다. 다분히 반시장적이다. 핵심 소재 공급을 중단해 한국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겠다는 아베 정권의 수(數)는 아둔하기 짝이 없다. 적어도 시장원리로 보면 그렇다. 수십 년 한솥밥을 먹으며 유지한 민간 기업간 신뢰가 한순간 깨졌다. 설령 그것이 국가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해도 언제 또다시 같은 사태가 재발할지 모른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 다른 국가로 수급처를 다변화하거나 부품·소재 수직계열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스마트폰, 서버 등 IT기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등 세계 디지털 경제가 타격을 받게 된다. 일본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 프리즘]글로벌 IT 생태계 역린 건드린 아베
 트럼프 정부의 화웨이 정책도 아쉽다. 자국 기업 혹은 우방국 기업들에 화웨이로의 기술·부품 공급 중단을 요구할 게 아니라 국제분쟁기구 혹은 자국 사법기구를 통해 대응했어야 옳았다.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윈도’와 ‘안드로이드’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한순간 중단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해외 서버로 넘어간 자국 데이터는 언제든 ‘볼모’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유럽연합(EU) 지역의 구글 반독점 제재를 시작으로 미국 IT 기업들에 대한 견제가 가속화되는 도화선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다른 국가들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기술 생태계에 개입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 아베가 오는 8월2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결정을 통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품목을 더욱 늘리겠다며 꼬장을 부리는 것처럼.

 시대를 거슬러 20년 전 ‘소재 국산화’ 프로젝트가 다시 국가의 당면과제로 거론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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