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반도체 소재·부품 국산화, 연구소 설립부터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 핵심 소재 및 장비·부품의 국산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R&D자금 지원, 각종 규제 개선 등의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핵심 소재 및 장비·부품의 국산화는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지만 국제분업 구조에서 품질·기술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만큼 현실적으로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과 소요되는 지난한 과제이기도 하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차원의 외교적 해법이 우선이고 중장기적으로는 거대 반도체 소자회사와 중소·중견 소재 및 장비·부품 업체들이 공생하는 산업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반도체 관련 업체와 부품.설비 회사에게 더 절실한 과제도 있다. 중소·중견 소재 및 장비 회사들이 반도체 프로세스 개발 및 테스트 등에 공동 이용할수 있는 '종합연구소' 설립이 그것이다. 필요하다면 가칭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 추진위’같은 것도 만들어봄직 하다.


특히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듯이 첫 시작을 무엇으로 어떻게 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들이 30년 가까이 핵심 소재 및 장비·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해왔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택과 집중보다는 업체별 형평성·지역 안배 등을 고려한 나눠먹기식 자금 집행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현재 국내 대다수 반도체 소재·장비·부품업체들은 일본 업체들과 달리 자체 테스트베드가 없어, 정부 R&D예산을 지원받아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실제 양산 라인과 유사한 환경에서 테스트를 하지 못해 국산화가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학회가 지난해 장비업체 22곳, 소재·부품업체 44곳 등 총 66곳을 조사한 결과, 장비 업체의 95%, 소재·부품업체 88%가 테스트베드 구축을 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한국나노기술원·나노융합기술원·나노종합기술원 등 공용 나노팹의 경우 2000년대 중반에 설립돼 현재 장비.소재 관련 제품들을 시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소업체들이 테스트를 받기위해 유럽이나 미국의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실정인 만큼 벨기에 IMEC·미국 Albany 컨소시엄 등과 같은 해외 사례도 참조해 볼만 하다.


현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를 위해 매년 1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바 있으며 추가경정 예산도 집행할 계획이라 하는데, 이 중 일부를 '종합연구소' 설립·운영에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별 기업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이 불가능한만큼 기업들이 공동 이용할수 있는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며, 상용화 할수 있는 기술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장비·시설 낙후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나노펩을 활용하거나 수도권 국립대 반도체연구소 등에 차세대 공정 개발 및 테스트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할 경우 조속한 운영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일자리 면에서도 수백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한 종합연구소 운영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20년 이상 종사한 퇴직 엔지니어들을 활용하고 대학을 졸업한 인력들에게 현장 교육을 실시해 반도체 인력 양성 및 공급 기능도 하게 될 것이다.

국제분업 구조하에서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국내시장에만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 정부와 소자 대기업들이 중장기적 안목에서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 및 인도·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에 국내 소재 및 장비·부품업체들이 진출, 국익을 창출할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연구소 설립을 통한 기술력 확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