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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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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19.08.0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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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귀결되어 가던 1945년 2월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만났다. 사실상 서로의 이익을 보장하며 전후 질서를 구획해 가던 회담에서 스탈린이 폴란드 국경선을 300Km 서쪽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고 루즈벨트는 이에 동의했다. 이른바 커즌 선으로 불리는 폴란드 동쪽의 영토를 소련이 차지하고, 대신 오데르 나이세 강 동쪽의 독일 땅을 폴란드에 줌으로써 1200만여 명의 강제이주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결정이었다.


루스벨트가 스탈린의 이런 무자비한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몇 가지 정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두 사람이 대지주의 아들과 구두수선공의 아들로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의외로 서로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진 사이였고, 아직 냉전이 본격화하기 전 미국과 소련은 전후 세계 질서 운영에서 우호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동아시아에서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에 고전하고 있던 미국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폴란드 영토문제에서 소련의 주장을 용인해 줬다는 점일 것이다.


당시 소련과 독일이 싸우던 동부전선에서 약 270여만 명의 독일군이 전사했고 소련군은 800여만 명이 죽었다. 반면 미군은 41만여 명, 영국군은 38만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 국무부는 20만 명의 미군 희생이 일본전에서 추가로 나올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리고 있었다. 실제로 1945년 4월 오키나와전투에서 미군은 일본군의 결사항전에 가로막혀 3달 가까이 공방을 지속하면서 1만2천여 명의 전사자를 내었다. 미국은 국내에서 루스벨트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미군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보다 소련군이 대신 희생해 주기를 원했고 그만큼 미국에게 소련의 대일전 참전은 중요했다.


어쨌든 얄타에서 스탈린은 독일전이 끝나고 나면 2~3개월 안에 참전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결국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후인 1945년 8월 8일에서야 대일 선전포고를 했고 다음 날인 9일 만주전선에서 157만여 명의 병력으로 일본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참전의 대가로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의 섬 등을 보장받은 소련군은 예상 밖의 속도로 빠르게 남하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38선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분할점령안을 제안하게 만들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시작점이 되었다.


폴란드의 영토변경과 한반도 분단과정에서 분명한 점 두 가지는 첫째, 폴란드와 한국 누구도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협상의 주체로 대표되지 않았다는 점이고, 둘째, 강대국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여 약소국의 이해에 반하는 상상을 초월한 결정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떤 강대국도 역사에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고 상대적 힘의 지속적인 우위를 추구하다가 결국 비극적 결말에 이르곤 했다.


따라서 국제정치에서 누군가 우리의 이익을 대신해 중재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동시에 한국이 처한 안팎의 어려움을 힘을 중심으로 한 현실주의적인 접근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해결책마저 현실주의적 방식에서 찾는 것은 강대국 중심의 기존질서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길일 수 있다. 스스로를 강대국의 일원으로 착각하는 현실주의적 현실주의자 보다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중심의 국제규범을 지지하는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가 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 경제력 규모 세계 12위, 국방비 규모 세계 10위의 한국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운명을 가르는 역사적 순간에 당당하게 자신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내야한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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