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정책에 지름길 없다… 국민에 끊임없이 이해 구해야"

스위스 방사성폐기물관리공동조합(NAGRA·나그라)이 운영 중인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 지하연구시설(UL)인 그림젤연구소(GTS) 잉고 플레쉬미트 소장이 지난달 4일 연구소 사무실에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유영호 기자 yhryu@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국민을 끊임없이 이해시켜 설득하고 마침내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잉고 블레쉬미트 스위스 그림젤연구소(GTS) 소장은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수립하는데 ‘지름길(fast track)’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특히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 관리 문제는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을 다 해야 한다”며 “투명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젤연구소는 스위스 방사성폐기물관리공동조합(NAGRA·나그라)이 운영 중인 지하연구시설(UL)이다. 지난 35년간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해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연구를 전담하고 있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마련하는데 체계적인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스위스는 나그라를 중심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건설 등 관리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을 착실히 진행했다”며 “전 국토를 대상으로 과학적 조사를 거쳐 후보지를 3곳으로 압축하는 데만 30여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보지 3곳 중 1곳을 확정하고 인허가 절차를 거쳐 건설을 마쳐 운영을 시작하는데 다시 4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나그라는 1972년 출범 직후부터 그동안 축적된 지질자료 분석을 진행하는 한편 연구인력 100여명을 투입해 직접조사도 진행했다. 계획대로 2060년 최종처분장 운영이 시작된다면 총 준비기간만 88년이 걸린 셈이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워낙 민감한 문제라서 반대 여론도 많았지만 ‘원자력 에너지의 혜택을 누린 우리 세대가 책임도 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고했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진행 중인 한국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가장 강조했다. 그는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에 있어 해당 지역의 반대 의견은 과학적으로 틀린 것이 아닌 혐오시설에 대한 반대”라며 “투명하고 객관적인 부지 선정 절차를 기반으로 국민을 끊임없이 이해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장기적 안전성은 물론 국토의 미래가치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내왔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암질이 튼튼한 그림젤연구소를 왜 최종처분장으로 사용하지 않느냐 묻는데 이 곳은 지질학적으로 불안정할 뿐 아니라 6만년쯤 후 빙하시대가 도래해 빙하가 산을 깎으면 처분된 사용후핵연료가 지면 위로 노출될 위험성이 있어 부적합하다”며 “수만년 뒤 후손들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 중요한 자원이나 입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부지를 선정해 사용후핵연료 처분했는데 미래에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 되거나 매우 중요한 입지가 될 수도 있다”며 “미래세대의 기회를 우리가 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충분한 조사·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