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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돈은 한꺼번에 빠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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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기택 금융부장
  • 2019.08.0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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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각축’이란 상투적인 표현이 현실에서 생생히 구체화되고 있다. 겉으론 무역분쟁 형태를 띤 미중 갈등도 본질은 패권전쟁이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의 조치 역시 미국의 동조 아래 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하려는 일본의 무력행사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굳이 손자병법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정확하고 냉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실물과 금융은 칸막이로 분리된 것이 아니어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실물부문의 불안은 결국 금융부문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의 직접적인 금융제재는 우리 금융당국의 예측대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해도 간접적 파급력까지 없을 수는 없다. 글로벌 유동성이 넘쳐 일본돈이 나가도 다른 데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했지만 실물부문에서 금융부문으로 위기가 옮겨지는 순간 미국돈이든 유럽돈이든 먼저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고 이미 나쁜 조짐은 적지 않다. GDP(국내총생산) 2% 성장을 정부도 한국은행도 장담할 수 없다. 수출 비중이 70%에 가까운 나라에서 수출이 8개월째 줄었다. 달러를 벌어 석유와 식량을 사야만 국가가 존립할 수 있는 조건에서 수출이 줄어든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도 긍정적이지 않다. 올 들어 급격히 저점을 높인 원/달러 환율은 5일 단숨에 1215원대로 치솟았다. 주요국 증시에 비해 유독 약세를 보인 증시 역시 이날 코스피지수 2.56%, 코스닥지수 7.46%의 급락세를 보였다.

신용평가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스탠더드&푸어스(S&P)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한국 200대 기업의 신용도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부정적 사이클에 들어섰다고 했다. 이런 시각은 GDP와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S&P는 같은 날 한국의 올해 GDP 전망치를 2.4%에서 2.0%로 내렸다. 또다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3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피치는 지난 6월 2.0%로 낮춘 상태다. 피치는 추가적인 성장률 하락을 경고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S&P, 무디스, 피치 등의 역내 사무소를 돌며 한국의 경제상황을 설명한 것도 혹시 있을지 모를 이들의 관점 변화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것일 터다. 물론 현재 한국의 신용등급은 역대급이다. S&P는 AA, 무디스는 Aa2로 등급을 매겼다. 그들의 21개 등급 중 세 번째로 높다. 피치는 AA-로 네 번째로 높게 평가했다. 여기서 더 이상 올라가기는 정황상 쉽지 않고 셋 중 하나라도 국가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을 내리면 금융시장에서 자금이탈이 시작될 수 있다.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이 피해를 입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금리를 낮춰주는 방식으로 실물 쪽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금융시장에서 돈이 빠질 때 당국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광화문]돈은 한꺼번에 빠져 나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했지만 정부가 유출되는 돈의 흐름 자체를 역류시킬 수는 없었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맺은 뒤에야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시와 달리 지금은 국제공조는커녕 ‘스트롱맨’들의 힘겨루기가 일상이 됐다. 펀더멘털은 악화일로고 금융당국이 가진 카드는 더 빈약하다. 금융은 실물과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갖고 있으므로 외부와 대립해 내부를 결집시켜 선거를 치르겠다는 수준의 정치공학적 사고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금융시장은 주장보다 사실이 반영되는 냉엄한 세계다. 프레임으로 팩트를 극복할 수는 없다. 금융시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적절한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대처하는 게 정부고, 그렇게 하는 게 정치다.



  • 강기택
    강기택 acekang@mt.co.kr

    비즈니스 저널리즘의 최고 경지, 머니투데이의 일원임을 자랑스레 여깁니다. 독창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기사로 독자들과 마주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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