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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나는 중국인 아니다"…'시위로 표출' 홍콩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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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희석 기자
  • 2019.08.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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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홍콩>150년간 英 식민지 독특한 정체성…본토 이민자 등 통해 경제 발전
中 반환 뒤 '일국양제' 흔들려…자유 억압·경제 불평등 불만 시위로 표출

[편집자주] 동양의 진주라고 불려온 홍콩이 위태롭다. 동서양이 절묘하게 융합된 홍콩은 자본주의의 관문이자 중국식 사회주의의 출구였다. 빛바랜 일국양제의 구호 아래, 때로는 우산을 펴들고, 때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10주 이상 시위를 이어온 이들은 홍콩은 ‘중국의 홍콩’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홍콩’이라고 외친다. 불안한 앞날의 홍콩을 두고서도 물러서지 않는 G2(미국, 중국)의 속내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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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13일 (현지시간) 홍콩에서 시위대의 폭력이 홍콩을 되돌이킬 수 없는 길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콩에서 도시기능이 마비될 정도의 대규모 시위가 10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과의 범죄인 인도 협약, 이른바 '송환법'을 막는 것. 하지만 이면에는 중국에 반환된 후 점차 본토에 흡수돼가는 과정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홍콩 사람들의 절규가 자리한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그 덕분에 사회주의 중국과는 다른 자유롭고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한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이 홍콩과 마카오, 대만 등을 끌어안기 위해 제시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英 식민지 150년, 中 반환 22년=홍콩은 1842년 아편전쟁으로 영국령이 됐다. 이후 잠시 일본에 점령당했던 것을 제외하고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15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는다. 영국은 홍콩을 아시아의 물류 거점으로 활용했고, 곧 자유무역항으로 발전하게 된다.

서양과 동양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동양의 진주'라고도 불린 홍콩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후 아시아를 대표하는 경제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본토에서 내전과 빈곤,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몰려든 이민자들이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산업이 발전했고, 지리적 이점으로 무역이 발달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이후로는 본토와 서방세계를 잇는 거점으로, 자본이 모이는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영국이 청나라로부터 홍콩을 조차한 기간이 끝나가던 1980년대 초 영국과 중국 정부는 홍콩 장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때 중국이 들고 나온 것이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이 제시한 일국양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더라도 사회주의를 강요하지 않고, 50년 동안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홍콩은 외교와 국방권만 중국에 넘기고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남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 정부의 간섭은 점점 심해졌고, 민주화 세력은 약화했다. 홍콩 시민들은 정부수반인 행정장관을 간선제가 아닌 직선제로 뽑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중국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2014년 9월 이에 반발하는 홍콩 시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 이른바 '우산혁명'이다. 경찰이 쏘는 최루탄과 최루액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우산을 들고 나온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식에서 연설하는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통신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식에서 연설하는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통신
◆치정살인이 발단 된 송환법 반대시위=우산혁명은 자유를 열망하는 홍콩 시민의 의지를 세계에 알렸지만, 지지부진하게 마무리되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2월 한 홍콩인 남성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죽이고 홍콩으로 귀국한 사건이 벌어졌다. 홍콩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속지주의를 채택한 홍콩 경찰은 그를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아 범인을 대만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홍콩 당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 등과 범죄인 인도 조약 체결을 추진한다. 문제는 체결 대상에 중국이 포함되면서 홍콩 시민이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상 홍콩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홍콩 내 반(反)중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본토로 잡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의 불안은 지난 6월 4일 '톈안먼 사태' 30주년을 기점으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홍콩에서는 매년 톈안먼 사태 기념행사가 열리는데, 중국 정부가 행사를 앞두고 주요 민주화 운동가들을 감금하거나 강제 휴가를 보내는 등 단속을 진행한 것이다. 특히 2015년 중국 공산당 지도층 비리를 폭로하는 책을 출판하던 홍콩의 한 서점 주주와 직원 5명이 중국 당국에 납치됐었던 트라우마는 홍콩 시위에 불을 붙였다.

앞서 홍콩에서는 정당한 선거로 뽑힌 입법회 의원이 민주화나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고, 의원 선서식에서 중국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원 자격이 박탈되는 등 친중 인사를 앞세운 중국 정부의 간섭이 계속 수위를 높여왔다. 영국 BBC방송은 "(일국양제를 보장하는) 홍콩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은 2047년 만료되는데, 홍콩 시민은 이후 홍콩의 자치가 어떻게 될지 불안해한다"면서 "특히 송환법이 통과되면 중국 정부의 홍콩 통치가 더욱 강해져, 홍콩이 다른 중국 도시와 똑같아질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홍콩 반환 22주년이었던 지난 7월 1일 홍콩 입법회에 진입한 홍콩 시위대가 홍콩 정부 휘장을 검게 칠하고 있다. /AFP통신
홍콩 반환 22주년이었던 지난 7월 1일 홍콩 입법회에 진입한 홍콩 시위대가 홍콩 정부 휘장을 검게 칠하고 있다. /AFP통신


◆중국인과 다른 홍콩인=홍콩 시민 대다수는 홍콩이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중국인'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홍콩대학의 지난해 12월 조사에서 홍콩 시민 대부분이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인'이라고 답한 사람은 15% 정도였다. 특히 18~29세 젊은 응답자 중에서는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3%에 불과했다. 홍콩인은 중국인과 혈통은 같지만, 사회 , 문화적으로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본토로부터 몰려드는 자본과 관광객으로 부동산 가격과 물가가 폭등하고, 이 때문에 홍콩 시민의 삶의 질이 악화한 것이 중국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무역정책그룹의 데이비드 도드웰 이사는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90% 이상의 홍콩인들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면서 "홍콩의 일반 시민들은 지난 30여 년간 소득이 거의 늘지 않았고, 이런 불만이 중국에 대한 시위로 분출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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