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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일본만큼이라도 일하게 해달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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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기용 산업1부장
  • 2019.08.2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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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노광기의 국산화 가능성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좋은 의견 있는 분들은 얘기해주세요." 최근 부품·소재·장비 국산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정부와 재계, 학계 전문가들은 노광기가 거론되자 침묵을 지켰다.

노광기는 빛을 쪼여 반도체 웨이퍼나 박막 트랜지스터(TFT) 유리기판에 회로를 그려주는 장비다.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EUV(극자외선) 노광기는 1대당 1500억원이 넘는 초고가 장비인데 다행(?)히 네덜란드 ASML사가 독점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디스플레이 생산에 투입되는 노광기다. 니콘, 캐논 등 일본 회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만약 일본 정부가 수출을 통제할 경우 한국이 자랑하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생산라인이 멈춰 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5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 노광기를 5년 안에 국산화할 100대 핵심 품목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5년 안에 노광기 국산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광기는 빛을 쪼는 광학 기술이 핵심인데, 한국에는 삼성이 철수하면서 광학 기술연구가 사실상 중단됐고, 100년 이상 렌즈에 집중해온 일본의 광학기술을 단시일 내에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일 관계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경제전쟁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경제에서 안보로 전선이 넓어지면서 총력전 양상이 되고 있다.

일본의 보복 대상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조치가 시행되는 28일부터 규제 품목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일본에게는 한국을 견제할 카드가 많다. 노광기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OLED 생산에 필수적인 섀도마스크는 일본이 시장을 100% 점유하고 있다. 블랭크마스크, 실리콘웨이퍼, 2차전지 분리막 등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쏟아부어도 국산화를 장담할 수 없는 부품·소재·장비가 다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조사한 결과 주요 산업의 국산화율은 반도체 27%, 디스플레이 4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은 1차 공격에 사용했던 고순도 불화수소, 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종처럼 한국을 골탕먹일 또 다른 무기를 신중히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우리 기업을 위협하는 게 일본만은 아니다. 미·중 무역갈등과 세계 경제둔화, 홍콩 사태 등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겹쳐 발생하는 최악의 위기)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초강대국이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내셔널리즘이 충돌하고 있다. 일개 기업이 어찌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이럴 때 일수록 정부-기업-국민간 연대가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 통화는 하나의 시사점을 보여준다. 이윤을 쫓아 중국에 공장을 지은 애플이 트럼프에 ‘관세 해결’ SOS를 쳤다. 애꿎은 삼성전자로 화살을 돌렸다. 누가 봐도 황당한 주장인데, 트럼프의 답변은 "그(쿡 CEO)를 돕겠다"였다.

이 기사를 보고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건의가 떠올랐다. 경총은 일본의 규제를 넘기 위해 일본만큼의 근로시간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유연근무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 R&D(연구·개발)를 하려는데 일본보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구조를 바꿔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정당한 관세부과를 막아달라는 쿡의 요구와 비교하면 소박하기까지 하다.

한·일, 그리고 미·중 경제갈등은 21세기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총칼이 아니다. 기업이 무기다. 기업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최소한 우리 기업이 맨몸으로 광야에 서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광화문]일본만큼이라도 일하게 해달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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