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의 역습…보험사 자본잠식 '카운트다운'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권화순 기자

사상 최악의 초저금리 시대에 직면하면서 보험업계가 ‘금리의 역습’에 휘청이고 있다. 오는 2022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본확충 압박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거세진 것이다. 특히 과거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명보험사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국고채 5년물 금리가 1% 밑으로 떨어지면 생보사들이 무더기로 자본잠식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추정이 나올 정도다.

◇설마했던 초저금리 회귀…다시 시작된 자본 압박=올해 3월만 해도 2%를 웃돌던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5월 이후 급격하게 떨어지며 이른바 ‘금리절벽’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전격 인하한 이후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16일 사상 최저치인 1.172%까지 떨어졌다. 불과 5개월 새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금리는 보험사의 부채와 자산에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떨어지면 부채와 자산 모두 현재가치 평가금액이 커진다. 보험사는 부채 규모가 크고 부채의 만기도 길기 때문에 자산 변동 폭보다 부채 변동 폭이 더 크다. 자산과 부채 모두 현재가치가 떨어질 경우 부채가 더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금리가 하락하면 자본확충 부담이 커져 악영향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보험업계는 보험 판매 당시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 도입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 경우 금리가 0.1%(=10bp) 떨어질 때마다 보험부채가 수조원대씩 늘어날 수 있다. 금융당국이 금리 시나리오별 분석 결과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업계는 국고채 금리가 1% 아래로 진입하면 생보사 중에서 라이나생명 등 일부 보험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본다.

금리가 0.1% 하락할 경우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 3사는 회사별로 부채가 8000억~1조원 씩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국고채 금리가 급락한 데다 기존에 인정해줬던 산업위험 스프레드까지 인정해 주지 않게 되면 생보사 보험부채가 수십조원씩 증가할 수도 있다.

특히 생보사는 과거에 팔았던 고금리 확정형 상품으로 금리 역마진에 시달리고 있다. 금리가 높던 시절 고금리를 약속한 상품을 대거 판매했는데 저금리로 돌려줄 보험금에 대한 대규모 역마진이 생긴 것이다. 금리가 떨어질수록 역마진이 커지기 때문에 초저금리 기간이 길어지면 손실도 눈덩이처럼 커진다. 생보사가 판매한 고정금리 상품 중 연 5% 이상의 확정금리 상품은 6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생보사의 전체 보험료 적립금 중 연 5% 이상의 확정금리를 약속하고 받은 보험료도 약 30%로 추산된다.

가파른 저금리 추세로 인해 자산건전성이 악화되는 점도 문제다. 국내 보험사들의 자산운용 수익률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5.0%에서 3.6%로 떨어졌다. 생보사의 금리부담이율이 평균 약 4%인 점을 감안하면 역마진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금리 민감한 상품 금지” 영업 위축, 주가도 요동=초저금리로 영업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역성장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다.

생명보험업계는 금리에 민감한 저축성보험과 연금보험의 비중이 높은데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이 상품들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기 어려워졌다. 저축성보험과 연금보험은 최저보증이율을 제시하고 일정 수준의 금리를 내줘야 하는데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수익률을 올리기 힘들어졌다.

건강·상해보험 등 보장성 상품 위주로 주력 상품을 바꾸고 있지만 시장포화로 판매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다 보험사들은 부채 적립 부담이 큰 저축성보험 판매를 줄이고 보장성보험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당기순이익이 급감했다. 올 상반기 생명보험사 당기순이익은 2조128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조1487억원 대비 32.4% 줄었다.

대내외적 영업환경 악화에 실적까지 나빠지면서 주가도 요동치고 있다. 23일 종가 기준 상장한 생보사의 PBR(주가순자산비율) 0.34배다. PBR이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미래에셋생명(0.30배), 동양생명(0.25배), 한화생명(0.18배) 등은 업계 평균에 미치지 못할 정도다.

무엇보다도 향후 금리전망이 어둡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시장에서는 역대 최저금리는 시간문제라고 내다본다. 최소한 내년까지는 금리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사상 최저인 1.0%까지 떨어질 것이란 의견이 우세한 것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로 갈수록 정부 소비 여력이 축소될 것이고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한국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