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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 있으면 뛰어든다' 날씨가 모든걸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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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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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6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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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프랑스 그리고 폭염 ①] 기후변화로 이상고온현상… 재해수준의 폭염 이어지며 생활풍경, 정치지형도에도 변화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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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사진=AFP뉴스1
'물만 있으면 뛰어든다' 날씨가 모든걸 바꿨다

유럽을 덮친 폭염으로 프랑스에서 올 여름 1435명이 사망했다. 프랑스 보건부는 지난 8일(현지시간) 이 같이 밝히며 대다수 사망자가 75세 이상 고령자였다고 말했다. 1435명이라니, 여간 놀라운 숫자가 아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6년, 한반도의 열사병에 의한 사망자 수가 17명에 불과했던 걸 고려하면 이 숫자는 더욱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프랑스 보건부의 태도다. 아그네스 부쟁 보건부 장관은 '1435명'을 거론하며 "프랑스 국민에 보낸 주의 경보 메시지 등 예방 조치 덕분에 사망자를 줄이는데 성공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올 여름 프랑스의 더위는 기록적이었다. 지난 6월28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갈라르그 르 몽튀외는 낮 45.9도를 기록하며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기존 프랑스의 최고 기록이었던 2003년 6월의 44.1도를 넘어선 더위였다.

폭염은 7월에 다시 찾아왔는데, 지난 7월25일 프랑스 수도 파리도 42.6도로 기존 역대 최고 기록(1947년)을 갈아치웠다. 프랑스 현지 언론은 이날 "파리가 아프리카 이집트 수도 카이로보다 더 덥다"고 전했다.

24일(현지시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근처 분수에서 열기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2019.07.26.
24일(현지시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근처 분수에서 열기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2019.07.26.

지독한 폭염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2003년 프랑스에 찾아온 폭염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다. 프랑스에서는 폭염이 20일간 이어지던 2003년 여름엔 약 1만5000명이, 두 차례의 폭염이 유럽을 휩쓴 2006년 여름엔 1388명이 사망한 바 있다. 이 같은 자연재해를 겪으며 프랑스 당국은 2004년 4단계 폭염 경보 체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올해 남부 일부 지역에 적색경보를 발표하고, 대부분의 다른 지역엔 적색경보 바로 밑인 오렌지색 경보를 내렸다. 학교 4000여곳이 휴교했고 예정됐던 공공행사도 취소됐다. 전국 단위 시험도 연기됐다. 프랑스 교육부는 지난 6월 말로 예정됐던 중학생 전국 학력평가시험인 브르베를 다음달인 지난 7월 초로 연기했다.

파리시는 심야 수영장을 개장해 개장 시간을 늘렸고, 거리에선 물을 나눠주는 자선단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에어컨 구입에 나섰다. 파리시도 노인들과 병약자, 노숙자 등 폭염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거리 곳곳에 에어컨이 가동되는 장소를 마련해 쉴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그나마 올 여름 폭염 사망자를 1435명에 그치게했다는 데서 프랑스 보건부는 만족감을 표현한 것이다.

재해 수준의 지독한 폭염은 프랑스의 여름 풍경도 바꾸고 있다. 기존에 유럽은 전통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나타냈던 지역이어서 에어컨을 갖춘 가구가 별로 많지 않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전 세계 에어컨 사용률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23%)과 중국(35%) 두 국가가 에어컨 전체 사용량의 절반을 훌쩍 넘긴 반면 유럽 전체 국가는 6%에 그쳤다.

지난 6월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LGBT 게이퍼레이드에서 소방관이 열사병 방지를 위해 참가자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AFP
지난 6월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LGBT 게이퍼레이드에서 소방관이 열사병 방지를 위해 참가자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AFP

하지만 최근 몇년 간 이상고온 현상이 반복되면서 프랑스인들의 에어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설치도 늘었다. 프랑스의 한 에어컨 업체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지난 5년 동안 에어컨 구매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면서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더운 요즘 에어컨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폭염을 겪으며 프랑스 에어컨 판매율은 지난해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염은 프랑스 인프라 가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7월24일 벨기에에서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향하던 유로스타에서 고장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600명 넘는 승객이 터널 속 40도의 찜통더위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유로스타는 고가 전력공급장치 결함때문에 빚어진 사고라고 설명했는데, 폭염으로 인한 사고로 추정됐다. 지난 7월25일엔 전력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프랑스 원자력 발전 업체인 EDF는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가 너무 더워졌다며 남부 골페쉬 원전의 원자로 가동을 일부 중단했다.

파리 곳곳에서도 의도치 않은 워터파크가 생겼다. 물이 뿜어져나오는 곳이라면 시민들이 들어가 몸에 물을 적셨다. 시내 곳곳 분수나 바닥분수, 교외 강이나 바다, 호수 등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물에 뛰어든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 6월2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센느강 근처에서 시민들이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AFP
지난 6월2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센느강 근처에서 시민들이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AFP

동시에 익사자도 늘었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해 여름 같은 기간에 비해 익사로 인한 사망이 약 30%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소 60명이 수영 미숙에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비슷한 사고도 이어졌다. 파리 북부 생드니에서는 6살 시리아 출신 여아가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려고 틀어놓은 소방 호스 물세례를 맞고 공중에 솟구쳤다가 넘어져 중태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이번 폭염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공기가 유럽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이어진 것으로 진단된다. 사하라 사막 상공에서 48도 정도까지 달궈진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제트기류(지상 1만m 안팎에서 수평으로 부는 공기 흐름)를 타고 북상해 유럽 곳곳으로 넓게 퍼져 여름철 열파(heatwaves) 현상을 낳았고, 이게 이번 폭염의 원인이 됐다.
지난 6월2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한 소년이 거리의 바닥분수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AFP
지난 6월2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한 소년이 거리의 바닥분수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AFP

문제는 이 같은 열파 현상이 화석연료의 사용 등에 따른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로 잦아지고 있고, 재해 수준의 폭염이 찾아오는 여름 기후는 이미 유럽의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는 것이다. 클레어 널리스 세계기상기구(WMO) 대변인은 "최근 유럽 열파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온실가스 증가와 극단적인 기온 변화가 일치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라며 "열파가 더욱 강렬해지고 길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과학자들은 기후 위기가 여름철 열파 현상이 이전보다 5배나 많이 나타나도록 자극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올해 최고 기온 기록이 새로 수립된 유럽 나라는 최소 12개국'인데, 앞으로도 매년 최고 기록이 경신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재해 수준의 폭염이 뉴노멀이 된 유럽에선 이로 인한 여러 사회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선 청소년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이전보다 더 강력히 내고 있다. 최근 매년 기록적인 찜통더위를 몸소 겪으며 자신이 살아갈 터전이 더 이상 변화하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이 청소년과 젊은이 사이에 공유되면서다.
지난 8월1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FFF시위/사진=로이터
지난 8월1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FFF시위/사진=로이터

이에 프랑스, 스웨덴, 독일, 벨기에,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선 매주 금요일 이들을 중심으로 '기후변화를 막자'는 행동 촉구 시위, FFF(Friday for Future)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촉발한 시위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그레타 툰베리는 프랑스 의회에서 "만일 2030년까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심각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적 지형도도 변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공유는 유럽에서 녹색당의 지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 따르면 녹색당 그룹은 현재 의석수인 52석에서 17석을 늘리며 69석을 차지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가 젊은 유럽인을 중심으로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26일(현지시간) 독일의 유럽의회 선거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녹색당 당사에서 환호가 터졌다. 이날 출구조사에서 집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저조한 득표율로 승리를 하고, 녹색당이 급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05.27 베를린=AP/뉴시스.
26일(현지시간) 독일의 유럽의회 선거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녹색당 당사에서 환호가 터졌다. 이날 출구조사에서 집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저조한 득표율로 승리를 하고, 녹색당이 급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05.27 베를린=AP/뉴시스.

프랑스 내무부 공식 집계에 따르면 프랑스 녹색당은 34세 미만 유권자에게 가장 높은 득표율(18~24세 25%, 25~34세 28%)을 얻었다. 독일 녹색당도 젊은 유권자(18세~24세)의 1/3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자본주의나 사회구조적 문제를 짚는 좌파당 보다 환경 문제 그 자체를 다루는 녹색당이 젊은 세대의 공감을 더 자아냈기 때문이다.

AFP통신은 "기성 정당들이 쇠락한 유럽의회에서 녹색당이 각종 이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녹색당은 기후변화 대응 조치에 대한 서면 약속 등을 연정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향후 녹색당은 환경과 관련해 산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무역 정책에 대한 수정 등을 요구하며 기후변화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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