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각자 할 말만 한 LG·SK…배터리 분쟁 '평행선'

"두 시간의 '양자독백'이었다." 소송 141일만에 성사된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의 회동 결과에 대한 촌평이다. 양사 최고경영자가 마주했지만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LG-SK 간 배터리(2차전지) 소송이 '끝까지 가는' 국면을 맞고 있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한 두 사람=신 부회장과 김 총괄사장은 16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두 시간여 회동했다. 양사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날 회동에서 이뤄진 대화는 각자 할 말만 하는 독백에 가까웠다.


김 총괄사장은 회동 후 "두 경영진이 만나 현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LG화학도 "양 사가 각자 입장에 대해 진정성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짧게 밝혔다. 양측 모두 표현은 신사적이지만 '의견차이만 확인했다'는 속뜻이 명확하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관련 핵심 연구인력을 빼갔다며 지난 4월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에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달 특허 관련 맞소송을 냈고, LG화학이 다시 추가 특허 소송을 준비하며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신 부회장은 이날 김 총괄사장에게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기술침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합리적 수준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총괄사장은 "구체적 피해내용도 밝히지 않고 배상을 요구하느냐"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업계는 이날 회동 결과에 대해 예견됐던 대로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LG화학은 배상 규모에 대해 "침해한 쪽이 더 잘 알 것"라는 입장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먼저 밝혀야 한다"고 맞선다. 현실적으로 대화를 풀어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도 마찬가지다. LG화학이 최우선 조건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직원이 자발적으로 입사지원을 해도 뽑지 말라는 거냐"고 반박한다. 역시 답이 없는 문제다.

◇CEO 접촉 무의미…그룹 오너, 나설까?=양사는 대화의 문을 닫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접촉도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전권을 보유하거나 위임받지 못한 대화채널 간 회동에서는 의견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재에 나선 정부 입장도 복잡하다. 이날 만남을 주선한 산업통상자원부는 회동 직전 불참을 결정했다.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자리에 굳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기업 간 소송에 정부가 개입하는 게 한쪽을 편드는 꼴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터다.

반면 신속한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성장하는 배터리 시장 선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번 소송이 판결까지 이어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한쪽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중국·일본 경쟁사들의 유사 소송 제기 우려도 있다.

거의 모든 사안에서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직접 만나 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두 오너가 쌍방 소 취하에 전격 합의한 후 실무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양사 입장이 명확하게 엇갈린다. SK는 오너 간 회동에 대해 "현실적으로 유일한 해법"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LG 측은 "양사가 제기한 소송의 심각성이 다른데다 LG화학이 명백한 피해자인데 소 취하를 전제로 하는 대화에 응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