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證, 시스템 오류로 유령채권 거래할 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상장채권이 거래될 뻔한 아찔한 일이 발생했다. 매매거래가 체결되지 않아 투자자나 시장의 피해는 없었지만, 앞서 삼성증권이나 유진투자증권의 '유령주식' 사고를 겪고도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관투자자 위주 시장으로 분류돼 별다른 제약이 없었던 채권시장에도 사고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9시를 전후해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JTBC의 회사채(10회차) 매도 주문이 800억원어치 쏟아졌다. 한국투자증권 창구 두 곳을 통해 각각 300억원, 500억원 매도 주문이 나왔다. 이 회사채의 총발행금액 510억원을 뛰어넘는 물량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6일 전자증권제도 도입으로 전산시스템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채권 수량이 실제보다 1000배 많게 입고되는 오류가 발생했다"며 "문제 발생 직후 고객 문의로 매매 및 입출고 정지조치를 취해 고객과 시장 피해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고 사실을 알린 고객은 타 증권사 계좌의 채권을 한국투자증권 계좌로 옮기는 '타사 대체 채권' 입고 과정에서 2000만원 규모 JTBC 채권이 200억원 규모로 늘어난 것을 발견해 회사 측에 이를 알렸다. 총 7개 계좌에서 동일한 오류가 발생했고, 현재 시스템 오류는 고쳐졌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거래가 체결되지 않아 금융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유령채권이 또다시 버젓이 거래될 뻔 했다는 점에서 안일한 증권사 내부통제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삼성증권이나 유진투자증권 사고를 겪고서도 나아진 점이 없다는 지적이다.

앞서 삼성증권의 경우 직원 실수로 우리사주 조합원에 대한 현금배당을 주식배당으로 잘못 입력, 실제보다 30배 많은 유령주식이 잘못 입고되고 시장에서 거래된 바 있다. 유진투자증권도 해외주식 거래 중개 과정에서 주식병합을 누락, 고객이 실제보다 많은 수량의 주식을 매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증권사에서 개인 계좌로 채권을 입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만큼 증권사 책임이 가장 크다"면서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는 많은 주의가 필요한 만큼 내부 점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시장 뿐만이 아니라 채권시장에도 주문 오류 사고 방지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삼성증권과 같은 유령주식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식 거래시 총발행주식수를 넘어선 수량은 입력이 불가능하도록 자동차단하는 전산시스템을 마련했다. 대량고액 주문오류를 막기 위한 호가 거부도 도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발행금액을 넘어서는 주문을 자동으로 거부하도록 시스템이 설계돼 있는데 이번에 주문이 쪼개서 나와 감지하지 못했다"며 "채권시장은 기관투자자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공매도 제한도 없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는데 앞으로 주식시장처럼 호가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나 매도잔량을 점검하는 방안 등 대책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이 전자증권제도를 도입한 16일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도 들여다 볼 대목이다. 이번 사고는 실물증권을 입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지만 "실물증권을 전자증권화할 경우 전산 오류나 해킹 등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의 유사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뿐 아니라 각국 금융투자업체들은 정보통신기술(IT)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오류를 완전히 잡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