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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운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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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19.09.26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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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 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했지만 실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던 계급과 신분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그 존엄과 권리에서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이상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거리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루소의 말이 여전히 현실을 더 잘 묘사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라는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쇠사슬로 묶인 현실을 개선하는 과정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평등이론 가운데 운 평등론자들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운’과 ‘선택’으로 나누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불평등은 정당하지만 운으로 인한 불평등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따라서 운의 차이를 어떻게 사회제도적으로 통제해서 운의 불평등에 영향받는 개인에게 평등한 삶의 기회를 부여하느냐에 관심을 쏟는다. 물론 여기서 초점이 되는 개인의 재능이나 여건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자연적 사실이다. 즉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나 남과 다른 여건을 어떤 사회도 인위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천부적 재능과 타고난 여건에서 더 나은 계층이 있고 그렇지 못한 계층이 있을 때 사회의 제도는 그렇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줄 수 있게 설계되어야 한다. 사회의 방향과 제도가 재능과 여건을 가진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구성되면 이들은 그 자체로 이미 보상받은 것에 더해 사회적 보상까지 확보하면서 이중으로 유리한 상황을 맞는다. 따라서 롤즈는 그의 정의의 원칙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는 그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여건에 처한 계층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게 만들 때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권리의 보장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상황을 개선한 복지국가의 등장도 이처럼 운에 의한 불평등을 조정한 사례다. 20세기 중반에 복지국가를 설계하던 영국 이론가들은 국가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모든 노동자가 신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회 구성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제도 아래서 노동자 계급은 자부심을 갖는 노동자로 대를 이어 재생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함께 치른 2차 세계대전 직후 강한 사회적 연대에 근거해 가능했던 이와 같은 합의는 1979년 마거릿 대처 총리의 등장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면서 완전히 무너진다.
 
시장에 의한 분배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한국 사회에서도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본격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 이른바 ‘97년 체제’는 그간 지배해온 발전국가모델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민주화의 결실인 ‘87년 체제’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우리 사회에 가져왔다. 특히 ‘87년 체제’에서 국민을 중심으로 강조된 연대와 공공성은 ‘97년 체제’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경쟁의 공정성에 대한 강조로 바뀌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공정한 경쟁은 천부적 재능과 타고난 여건이라는 운의 문제를 통제하지 않고선 무의미하다. 명문대 학생들이 공정한 절차를 외치는 시위를 할 때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도 자신들이 가진 재능과 여건을 당연하게 전제한 경쟁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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