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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제 몸에 상처 하나씩 지닌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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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 2019.10.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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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방수진 시인 ‘한때 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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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방수진(1984~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한때 구름이었다’는 현재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여기’가 아닌 미지의 세계를 지향한다. 하늘을 떠도는 구름처럼 시인의 상상은 우주로 향하고, 발길은 국경을 넘는다. 시인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슬픔의 가장 낮은 지층에는 유년의 상처가 웅크리고 있다.

언제 탈출할지 알 수 없는 삶의 미로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글(시인은 기자와 카피라이터, 음식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을 썼기 때문이다. 특히 시를 통해 고통스러웠던 ‘한때’를 슬쩍 드러내고서야 비로소 낯설지만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전에 늘 내 편이 되어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우주물리학에 대한 관심, 나 혼자만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슬프다’는 동질감이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일 수도 있다.

1.
선전물이 붙는다 오늘 하루뿐이라는 창고대개방
준비 없는 행인의 주머니를 들썩이게 만든다 간혹
마음 급한 지폐들이 앞사람 발뒤꿈치를 따라가고
몇몇은 아예 선전물처럼 벽에 붙어 버린다
철 지난 윗도리, 떨어진 단추, 올 풀린 스웨터, 뜯어진 주머니까지
다들 제 몸에 상처 하나씩 지닌 것들이다
습기 찬 창고에서 울먹이는 소리는 여간해서 지상으로 들리지 않는 법

2.
조금은 잦은 듯한 창고개방이 우리 집에도 열린다
일 년에 다섯 번 혹은 예닐곱으로 늘어나기도 하는 그날엔
아버지 몸에서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물건들을 받아내느라 힘들다
하지만 나는
집 안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냄비며 플라스틱 용기들이
온몸으로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때론 다리에 멍울을 남기고
깨진 도자기에 발을 베게 만들지만
아버지의 창고 그곳에서 누구도 딸 수 없었던
창고의 자물쇠가 서서히 부서지고
서로 쓰다듬을 수 없어 곪아 버린 상처들이
밤이면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제 심장 소리에도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3.
아직,
연고 한번 바르지 못한 상처들로 창고가 북적거린다
창고의 문을 열어 두는 이유는
더는 그것들을 보관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서로 다리 한쪽씩 걸치고 있는
우리들의 절름발이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몇 번의 딱지가 생기고 떨어졌어도
한번 베인 자리는 쳐다보기만 해도 울컥하는 법이지
그래서 창고개방하는 날
거리에는 저마다의 창고에서 빠져나온
우리들이, 눈송이처럼 바닥을 치며 쌓여 가고 있었다

- ‘창고大개방’ 전문


먼저 등단작 ‘창고大개방’부터 살펴보자. 길거리에 창고대개방 선전물이 붙는다. 낮은 가격대, 다양한 상품들, 경품을 준다는 요란한 선전과 달리 그곳에는 “철 지난 윗도리, 떨어진 단추, 올 풀린 스웨터, 뜯어진 주머니까지” ‘온전하지 않은 것들’뿐이다. 매장에서 팔다 남거나 해진 것들의 마지막 종착지와도 같은 창고대개방. 그곳에서 시인은 “제 몸에 상처 하나씩 지닌 것들”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는다.

붙박인 듯 그 자리에 서서 “일 년에 다섯 번 혹은 예닐곱” 번 지속하는 아버지의 폭력을 떠올린다. “냄비며 플라스틱 용기들”과 “도자기” 등을 집어던지는 아버지의 폭력이 끝날 때까지 “온몸으로 떨고 있”던 가족들에게 “때론 다리에 멍울을 남기고/ 깨진 도자기에 발을 베”이는 상처보다 더 깊은 것은 내면의 상처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폭력에 늘 불안한 날들을 견뎌야 하는 것은 죽음 같은 고통이다.

“여간해서 지상으로 들리지 않는” 울음으로는 가정폭력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안에서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밖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대문을 열고 “연고 한번 바르지 못한 상처들”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곪은 상처는 째서 고름을 빼내고 약을 발라야 새살이 돋는다.

문제는 가정폭력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 “우리들”의 문제라는 데 있다.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 그 이웃의 이웃집도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 내가 “철 지난 윗도리”이면 너는 “올 풀린 스웨터”인 것이다. 같이 아프고, 같이 아파해야 하기에 “우리들의 절름발이 상처”를 서로 들여다보고, “한번 베인 자리는 쳐다보기만 해도 울컥하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다.

눈은 밑도 안 보고 떨어진다
꽃잎은 방향도 없이 흩어지고
길 잃은 외로움마저 곁으로 와
줍기조차 힘든 가시들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다
내 몸마저 빈틈없이 채색하고 달아난 당신
한 줌의 생애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술이 되고 있다

- ‘꽃피는 중환자실’ 부분


어렸을 적 할머니는 자기 전에 꼭 내 귓불을 만져 주었다 젖을 빨아대는 아기의 입술처럼 만지고 쓰다듬었다 이따금 물기도 했지 동생과 작은방에서 싸우다 잠이 들면 허락 없이 슥 다가와 귓불을 만지작거리다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다 체한 듯 가슴을 두드리다 방문을 잠그고 돌아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도 했다 새들도 외로워 지들끼리 가슴을 비비고 사는데 어미 없이 만질 젖가슴 없이, 울먹이며 잠이 깨고 귓불이 새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으로 도망가려는 기억을 누르고 누르곤 했지

- ‘귓불’ 부분


시 ‘꽃피는 중환자실’은 믿고 의지하던 할머니의 임종을 다루고 있다. “부음을 받고 부산으로 가는 첫차” 안에서 몸속의 “물이란 물은 죄다 쏟아”낼 만큼 할머니의 죽음은 충격이다. “바닥을 치며 쌓여 가”는 눈송이처럼 시인은 한없이 절망한다. 가정폭력에 바람까지 핀 아버지(‘그날들’)와 한겨울에 “벌거벗긴 채 밤새도록 물을 뿌”(‘오래된 탄생’)린 또 다른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어머니에 비해 할머니는 “내 머리 위에다 향을 피우고 밤새 불경을 외”(‘그날들’)우거나 “만지고 쓰다듬”어주는 따스한 손길이다.

하지만 인자한 할머니도 실상은 외롭고 쓸쓸하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른인지라 겉으로 내색을 안 했을 뿐이다. 다들 잠든 밤이면 “체한 듯 가슴을 두드리”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자기 전에 내 귓불을 만져 주”는 것은 불쌍한 손주를 위로해주는 동시에 할머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염주를 돌리듯, 어린 손주의 귓불을 만지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진정되는 것. ‘어린 나’는 본능적으로 잠든 척해야 함을 안다. 그 순간은 할머니 혼자 아파하고 스스로 다독이는 시간인 것이다.

곡선의 아름다움은 직선의 외도에 있다. 걸어온 것들을 그 자리에서 추락시키고 뼈를 꺾고 살을 베어 처음과 끝 그 태생적 외로움을 안으로 안으로만 품어 주는 일. 직선이 제 팔을 꺾어 곡선이 될 때 수만 개의 관절이 부서지고 뒤틀린다. 차마 둥글어지지 못한 것들은 각이란 허공을 가지지. 어둠을 낳고 어둠으로 깊어진다. 품을 수 없는 것들은 가두어 내려앉아 버리고 밑으로만 밑으로만 아득해지지. 하이힐이 섹시한 이유는 곧고 날렵해지는 다리 곡선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의 무게를 버티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삼각의 감정 때문이다. 발뒤꿈치의 동동거림, 그 허공의 눈빛 때문이다. 그래서 견디는 것들은 모두 슬프지. 버티는 것들은 간절하다. 평생을 고개 숙여 허공을 받아내는 저 ㄱ처럼.

- ‘ㄱ의 감정’ 전문


밤은 상상의 시간이다. 삶이 힘들 때마다, 하나의 의식은 미지의 세계인 밤하늘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또 다른 의식은 “감정의 폐허”(‘흩어지는 몸, 실크로드’) 같은 집을 벗어날 궁리를 한다. 집을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명분은 타지로 진학하는 것이다. 고향 부산에서 서울과 중국으로 떠나 국문학과 중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雨요일’, ‘도넛 이론’, ‘개기일식’, ‘어떤 불시착’ 등의 우주물리학을 차용한 시들과 ‘자라나는 아이들’ 시리즈와 ‘네이멍구, 기록수첩’, ‘흩어지는 몸, 실크로드’ 등 중국에 관한 시들은 어릴 때 꿈꾸던 삶과 상상의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방수진의 시는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다. “보고 싶은 웃음들// 바닥이 흥건”(‘폭우’)할 만큼 울음을 머금고 있다. 가족과 살 때에도, 집을 떠났을 때에도 상처를 동반한 외로움이 늘 함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집 떠난 시간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무인반납기’)다. “몸뚱이가 스쳐간 곳은 모두 상처”(‘부드러운 통로’)였지만 “누구 생의 한 조각”(‘보도블록, 미완성 3악장’)이 아닌 오로지 ‘시인 방수진’으로 살아야 할 때임을 알고 있다. “태생적 외로움을 안으로 안으로만 품어 주”면서 버티거나 견디지 말고, ‘ㄱ’이 아닌 ‘ㅣ’으로 꼿꼿하게 사는 그런 삶….

◇한때 구름이었다=방수진. 문학수첩. 140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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