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공동 수상자인 아브히지트 배너지 교수. /사진=뉴스1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에 대해 떠올릴 때면 흔히 무능하고 게으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는 극빈국에 대한 원조가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 중 하나다. 일시적 도움은 그들의 게으름을 더 부추기고 자립할 동력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이유다.


경제학자들의 논의가 가난한 이들의 본질적 성격, 국제 원조를 둘러싼 효용성 논란 등 거대담론에 치우쳐있을 때 현장에서 답을 찾은 이들이 있다. 지난 14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부부 연구자 아브히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다. 이들은 10여년간 전세계 4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가난을 만드는 구체적인 원인들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 연구 결과를 담은 책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Poor Economics)다.

이들은 가난에 대한 기존 통념부터 의심했다. 가난하면 굶주리고, 돈이 더 생기면 보다 많은 음식을 먹어 체력을 기른 뒤 생산활동에 나설 것 같지만 현실은 달랐다. 보조금을 받은 극빈층이 오히려 섭취 열량을 줄이고 TV나 설탕 같은 사치재를 사들였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보다 많은 값싼 곡물'이라는 기존의 식량정책을 수정해 필수 영양제를 공급해야한다고 결론 내린다.

이들이 수년간 현장 데이터를 분석해 실질적 빈곤퇴치 해법을 내눈 분야는 비단 식량정책만이 아니다. 무료 예방접종도 꺼리는 이들에게 곡물 2파운드를 준 사례, 진학률이 낮은 지역에 조건부 보조금을 지급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인 사례 등을 통해 가난한 이들이 불안정한 미래에 투자하기 보다 당장의 유용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파악한다.

가난한 나라의 다자녀 출산 역시 마찬가지다. 피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자녀 중 부모를 부양할 정도로 성공할 1~2명이 나타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상이 위험으로 점철된 가난한 이들이 자녀들을 여러 마을에 보내고 스스로도 다양한 일을 겸직하는 데 대해 배너지 교수는 '헤지펀드 매니저 스타일'이라고 표현한다.


가난의 원인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들의 해답은 작지만 현실적이다.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서 계좌개설 비용을 낮춰주고, 자녀 교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교복값을 지원하고, 말라리아 감염을 막기 위해 모기장을 배포하라는 식이다. 구충제를 먹은 아이들의 미래 연소득이 비복용자에 비해 20%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처럼, 이들은 초기의 작은 선택이 큰 차이로 돌아올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이 자포자기해 자신의 잠재력을 포기하지 않도록 희망을 주기 위해 효과적인 사회정책을 펼치는 게 경제성장의 발판이 된다고 역설한다. 이를 통해 '밑바닥 10억명'으로 불리는 최빈국 국민들이 당장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때에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가난한 이들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