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이후의 선택

머니투데이

세종=박준식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22일 일왕 즉위식에 정부 대표로 가는 이낙연 총리는 고민이 깊다. 기다려온 중책이지만 결과에 따라 여론은 바뀔 수 있다. 관계를 녹일 수도, 더 얼릴 수도 있다.

물론 해볼 만한 베팅이다. 본인 언급대로 "심장은 여전히 정치인"이다. 총리로서 아베와 단독으로 만나 긴장완화를 이끌어낸다면 정상급 리더십을 얻을 수 있다.

일본 특파원 시절 구축해둔 현지 정계 네트워크가 자산이다. 아베 부친인 신타로 전 외무장관과 같은 항렬 정치인들과 관계가 깊다. 아베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미 알려진 대로 밀사 4명을 보내 사전조율을 끝마쳤다. 어느 정도 해빙무드를 조성하는데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50명 넘는 기자단 동행도 기대의 반영이다.

문제는 이후 선택이다. 11월이 되면 역대 최장수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직선제 이후 2년 5개월을 재임한 김황식 전 총리 기록을 깨는 것이다. 딱 보름 남았다.

최장수라는 타이틀은 본인이 원치 않던 선택이다. 경색된 한일 관계 해결을 일순위에 두고 버텼지만 임무 완료 후엔 결단이 남는다.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청와대는 총리가 더 남기를 바란다. 조국 전 장관 사태가 지지율 하락으로 번지는 상황이라 내각 안정을 원하는 것이다. 한데 정치인 이낙연에 대한 배려는 없다.

사석에서 총리는 "내 이름이 '최장수'가 아닌데 왜 자꾸 장수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농을 던진다. 영광스럽지만 과히 늘어난 임기는 부담스럽다는 뉘앙스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총리는 승부수를 던질 수 있을까. 청와대나 여당 수뇌부 바람대로 남는 건 2인자 이미지를 굳힐 수 있다. 이미 문정부 절반을 동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신인 노무현과 이회창을 정계로 이끌었다. 두 남자는 인도자에 반기를 들고 그를 넘어선 이후에야 1인자가 됐다. 배신이 아닌 숙명이다.

이총리 정치 여정은 계파 없이 단기필마로 꾸려온 것이다. 자신을 전국구로 끌어올린 이들에게 진 빚은 지난 2년 반 동안 안정적인 국정으로 충분히 갚았다.

각성한 백면서생은 4선 의원에서 호남 영주로, 국가 재상으로, 파격적인 관운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 이상에 무혈입성은 없다. 총리가 아닌 정치가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