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 설 곳 좁아진다… '반독점법' 휘두르는 유럽

/AFPBBNews=뉴스1

유럽연합(EU)이 IT(정보기술) 대기업을 향해 점점 더 날카로운 '반독점법'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유럽시장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EU는 미국 통신칩 제조업체 브로드컴이 반독점적 계약을 체결하는 관행을 중단토록 '잠정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 담당 집행위원은 브로드컴이 자사 6개 TV셋톱박스 및 모뎀 제조 고객사들이 경쟁업체의 통신칩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막는 계약행위를 3년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브로드컴이 이런 관행을 지속할 경우 경쟁사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어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컴측은 "이번 조치 관련해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EU 법원에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EU의 이번 잠정조치는 브로드컴에 대한 반독점 조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것으로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독점법 조사는 통상 수년이 걸리는데, EU는 브로드컴에 대한 조사를 지난 6월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NYT는 "EU가 잠정조치를 2001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 발동했다"면서 "EU가 IT대기업 규제에 점점 더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고, CNN은 "EU가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미국 IT기업에 엄중 단속을 시작했다"면서 "EU가 새로운 반독점법 무기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이번 조치가 최근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 것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12월부터 EU집행위원회 경쟁 담당 집행위원의 두 번째 5년임기를 시작한다.

이 때문에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이 브로드컴을 시험 삼아 규제 강도를 높힌 후,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미국 기업을 타깃으로 삼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지난 5년간 IT기업들에게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렸다. 구글은 2017년 반독점법 위반으로 27억달러를 부과받는 등 최근 총 95억달러(약 11조2700억원)의 벌금을 받았고, 애플도 아일랜드에 미납한 세금 145억달러(약 17조2000억원)를 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EU는 지난 7월에는 아마존이 자사에 입점한 업체들로부터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수집했는지 들여다보겠다고 했고, 애플페이의 반독점법 위반 여부도 조만간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EU의 반독점법 조사와 규제가 강화되면서 미국과 마찰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을 향해 "세금 여인(tax lady)"라면서 "그 누구보다 미국을 혐오한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앞으로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 관세 부과 여부 결정을 남겨두고 있고, 이달초엔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유럽에 연간 75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관세를 매길 권리를 받으면서 미국이 보복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이번 조치가 앞으로 기업들에게 모두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다"라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WSJ는 "만약 잠정조치들이 IT기업들에게 줄줄이 적용되기 시작한다면, 기업들은 유럽 공략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