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텔레토비' 이후 실종된 정치 풍자,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tvN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 코너인 '여의도 텔레토비' 제작진의 성향을 조사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됐다./사진=JTBC 뉴스 캡처

KBS2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일번지'의 간판 코너였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서슬 퍼런 5공 시절 가상의 재벌그룹 회의실에서 회장 및 이사진이 회의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대한민국 재벌의 민낯을 풍자 개그로 풀어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여야 정당의 대선후보였던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이정희 등을 텔레토비 캐릭터에 비유한 tvN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난 14일 개그맨 김영희가 팟캐스트 '육성사이다' 방송에서 '금수저'를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던 중 언급한 "지금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조국 딸 느낌 나요. 박탈감 느껴요"라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이후 '육성사이다' 방송 전면 중단 선언까지 벌어지면서 정치 풍자 코미디는 '사실상 금지'의 소재가 되어버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개그맨 황현희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예전보단) 전체를 만족시키는 코너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다소 정치풍자가 옛날보다는 많이 시들해진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예전 군부독재 정권처럼 누가 봐도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인식도 많이 없어졌고, 한쪽 편을 들다 보면 다른 한쪽의 항의를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요즘 개그 아이디어 회의는 웃기려고 하는 회의가 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욕을 안 먹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회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정치풍자 코미디는 정부에 의해 탄압됐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여의도 텔레토비' 등 CJ그룹의 영화·방송 사업이 좌편향됐다며 당시 이미경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려 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해당 코너 제작진들의 성향을 조사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하지만 현재 정치풍자 코미디 실종의 원인은 정권이 아닌 시청자에게 있었다. 황현희는 "어떤 말을 하든 반에게 욕을 먹는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며 "(시청자들이) 코미디나 이런 방송의 내용을 보는 것보단 '내 편과 아닌 것',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주로 많이 따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황현희는 과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토크콘서트에 출연했을 때도, 최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채널인 '알릴레오'에 출연하면서도 반대쪽 진영에게 악플을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그맨 강성범도 지난 12일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석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향해 강성범을 개념 개그맨이라며 지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강성범의 고향인 전라남도 영암을 들먹이며 그를 비판하는 여론도 존재했다.

황현희는 "개그맨, 제작진 스스로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는 (내부 분위기가 있다)"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정치 풍자 코미디가 실종됐다고 말했다. 서초동 촛불집회와 광화문 촛불집회로 둘로 나뉜 사회 속에서 정치 풍자 코미디는 그 어떤 측의 입장에 서든 반대 측에게 비판받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이에 한 누리꾼은 "강성범이든 김영희든 모두 본인이 지지하는 바를 정치 풍자로 밝힐 수 있다"라며 "나와 다르다고 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