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국민을 따르며… 세계평화 기원"

【도쿄=AP/뉴시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22일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선포의식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19.10.22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의식이 22일 약 2000명의 국내외 인사가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일왕은 이날 "(일본) 국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일왕은 정치적인 권력은 갖지 않지만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의미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인 62%는 왕실에 친근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아베 신조 총리(같은 조사에서 45%)의 지지율보다 높다.


즉위의식 중 핵심 행사인 '즉위례 정전의 의식'은 이날 오후 1시부터 일왕이 거처하는 도쿄 고쿄(皇居)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약 30분간 진행됐다. 나루히토 일왕은 지난 5월 새로운 일왕으로 즉위했으나 이번 의식을 통해 국내외에 즉위를 선포했다.

일왕과 왕비, 왕족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의식을 진행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황색의 전통 관복인 고로젠노고호(黄櫨染御袍)를 입고 마사코 왕비는 여성 전통의상 쥬우니 히토에(十二単)를 입었다. 일왕이 앉은 옥좌 다카미쿠라(高御座)에는 왕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삼종신기(三種神器) 중 검과 굽은 옥인 '검새(剣璽)', 국가의 인장인 국새, 일왕의 인인 어새 등이 놓였다.

나루히토 일왕은 "국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항상 기원하며, 국민을 따르면서 헌법을 쫓아 일본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예지와 쉼 없는 노력으로 일본이 한층 발전하고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아버지인 아키히토 전 일왕(상왕)은 재임 중에 세계 평화, 전쟁에 대한 반성을 언급해왔는데, 이날 나루히토 일왕 역시 '평화'를 거론해 눈길을 끈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를 선포하자 아베 총리는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며 만세 삼창을 했다.

아베 총리가 22일 오후 도쿄 왕궁의 정전(正殿)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일왕의 즉위 선포에 이어 축사를 한 뒤 즉위 축하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그는 축사 중 "자부심이 있는 일본의 빛나는 미래,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모으는 가운데 문화가 태어나 자라는 시대를 만들어 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내각부 제공) /사진=뉴스1

일본 현지 언론들은 나루히토 일왕이 국민의 뜻을 따르면서 '상징적인 존재'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했다는 데에 초점을 둬 보도했다. 이전 아키히토 전 일왕의 즉위선언 때에 비해 '국민의 행복', '세계 평화', '국민을 따르며' 등의 구절들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NHK는 특히 '국민을 따르며'라는 말은 지난 2월 생일 기념 기자회견과 5월 즉위식에서 나루히토 일왕이 반복해 온 말이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일왕이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역임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고 니혼테레비도 일왕이 "국민을 따르며" 즉위했다고 전했다.

즉위의식에는 약 180개국과 국제기관 등에서 모인 약 2000명의 왕족과 국가원수, 고위공직자들이 참석했다. 궁전 내에는 귀빈객이 왕과 왕비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모니터 30대가 설치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낙연 총리가 참석했다. 일레인 차오 미국 교통장관,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고문, 영국의 찰스 왕세자 외에도 일본 국내 인사로 노벨상 수상자인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모리 요시로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이날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즉위 의식을 예정대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가 나왔으나 '즉위례 정전의 의식'이 시작된 오후 1시께에는 빗발이 약해졌다. 다만 정원에서 서있을 예정이었던 궁내청 직원들은 궁전 내부로 이동했다. 궁내청 직원 약 80명은 긴 칼이나 활과 화살을 든 무인 복장을 하고 정원 깃발 아래 정렬해 있을 예정이었다.

궁전 밖에서도 일본 국민들은 즉위 의식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일본정부는 이날 임시휴일로 정하고 일본 증시도 휴장했다. 삼종신기 중 검이 안치돼 있던 나고야시의 아츠다신궁에는 참배객들이 줄을 지었다. 방문객들은 일본 언론 매체를 통해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바란다", "새로운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다"는 소감을 전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를 맞아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의 이름을 딴 역도 생겼다. '레이와'의 연고지인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사카모토하치만궁(坂本八幡宮)에서 가장 가까운 도후로마에역(都府楼前駅)은 부제를 '레이와의 마을(令和の里)'이라고 명명하고 이날 부제를 더한 새로운 현판을 공개했다. 레이와는 질서, 평화, 조화를 의미한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万葉集)'의 '매화나무 꽃' 노래에서 따왔는데 그 배경이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다.

한편 아사히신문이 19, 20일에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왕실에 친밀감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친밀감을 갖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62%, '그렇지 않다'는 27%였다. 일왕이 즉위 의향을 드러낸 후에 실시된 2016년 12월 여론조사와 비슷한 결과다.

(도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현지시간) 도쿄 고쿄의 규덴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에 참석한 뒤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