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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50원 인상 때문? 중남미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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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희석 기자
  • 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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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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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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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중남미](종합)

[편집자주] 중남미가 들끓고 있다.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하고 안정적이라던 칠레를 비롯, 베네주엘라 아이티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에쿠아도르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 좌우 대립, 정치실종 원인은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핵심이다. 


중남미, 부패와 무능…불평등만 심해졌다


'자원의 저주'에 무너진 경제…빈틈 파고든 포퓰리즘 악순환
갈수록 힘들어지는 생활에…중산층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와

20일 (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대의 방화로 버스가 불에 타고 있다. /AFP=뉴스1
20일 (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대의 방화로 버스가 불에 타고 있다. /AFP=뉴스1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나온 날 대통령이 가족들과 피자를 먹는 모습이 SNS에 게재됐다.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칠레 얘기다. 볼리비아에서는 부정 투개표 시비가 연일 이어진다. 페론주의와 포퓰리즘 논란은 대선 승자가 가려진 아르헨티나를 여전히 뒤덮고 있다. 중남미 곳곳이 시위의 '불길'에 휩싸였다. 곳곳에서 들고일어난 성난 민심이 거리를 점령했다. 불만 가득한 시민들은 목소리를 높여 정부를 비난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일부는 도로를 막고 경찰에 돌을 던졌으며, 공공시설을 파괴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MT리포트] 50원 인상 때문? 중남미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

한 국가나 특정 지역이 아닌 중남미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인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 지역을 관통하는 '부패'와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다. 소수 특권층이 경제성장의 성과를 독식하는 반면 경기침체의 고통은 빈곤층에 떠넘기는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누적된 시민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언론인 출신의 중남미 전문가 마이클 리드는 최근 중남미 지역에서의 시위 확산 원인으로 △신흥 중산층의 경제적 불만 △썩은 정치권에 대한 분노 △홍콩과 유럽 등 세계적인 시위 움직임으로부터의 영향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경제가 성장할 때는 사회가 조금 불평등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임금이 더는 오르지 않거나, 자녀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없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좌절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키토=AP/뉴시스】13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에콰도르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유류 보조금 폐지 등 긴축정책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시위대와 원주민들이 울먹이며 기뻐하고 있다.   레닌 모레노 대통령은 시위대가 요구해온 유류 보조금 폐지를 백지화하기로 했으며, 원주민 지도부와 함께 위원회를 구성해 양측 모두 동의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2019.10.14.
【키토=AP/뉴시스】13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에콰도르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유류 보조금 폐지 등 긴축정책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시위대와 원주민들이 울먹이며 기뻐하고 있다. 레닌 모레노 대통령은 시위대가 요구해온 유류 보조금 폐지를 백지화하기로 했으며, 원주민 지도부와 함께 위원회를 구성해 양측 모두 동의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2019.10.14.

◇'자원의 저주'가 만든 부조리=중남미 시위의 배경에는 취약한 경제구조가 자리한다. 풍부한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은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른바 '자원의 저주'다. 이 때문에 경제가 자원 가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자원 가격이 오르면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경기침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중남미(캐리비안 포함)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국제유가가 배렬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세계 경제 평균을 웃돌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기 시작한다. 2016년에는 마이너스(-)0.6%까지 기록했다. 그해 세계 경제는 평균 3.4% 성장했다. 올해도 중남미 지역 경제성장률은 0.2%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품 가격이 내리고 수입이 줄자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빈부 격차가 확대됐고,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재정이 악화한 정부가 보조금 삭감과 공공요금 인상 등 긴축정책을 추진하자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그동안 경제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부유층과 기업,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칠레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2000년대 들어 구리가격 상승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2010년에는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칠레 보통 사람의 한 달 수입은 여전히 560~700달러(약 65만~83만원)에 불과했다. 지하철 요금 4%(약 50원) 인상 소식에 분노에 찬 수천 명의 칠레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다.

(쿠쿠타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지난 6월 9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인들이 생필품과 약품 등을 구하기 위해 콜롬비아 쿠쿠타에 있는 국경교량인 시몬 볼리바르 다리로 몰려가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8일 마지막까지 폐쇄했던 콜롬비아 국경 2곳을 4개월만에 열었다.   © AFP=뉴스1
(쿠쿠타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지난 6월 9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인들이 생필품과 약품 등을 구하기 위해 콜롬비아 쿠쿠타에 있는 국경교량인 시몬 볼리바르 다리로 몰려가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8일 마지막까지 폐쇄했던 콜롬비아 국경 2곳을 4개월만에 열었다. © AFP=뉴스1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하는 부패한 정부=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는 중남미의 가장 큰 골칫덩이다. 시민들은 질릴 정도로 계속되는 정치인들의 부정에 분노하고 있으며, 포퓰리즘은 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에서 복지 정책을 남발하던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 물러나자 이번엔 자국 우선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포퓰리즘이 똬리를 틀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서 남은 것은 막대한 부채와 치솟는 물가뿐이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무능하고 정권 유지에만 신경 쓰는 정부 탓에 경제가 회생 불가능한 상황에 부닥친 상징적인 사례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분석한 베네수엘라의 부패지수는 18로 세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20만%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화폐는 휴짓조각보다 못한 처지가 됐다. 주유소와 마트 등에서는 화폐 대신 물물교환으로 거래가 이뤄질 정도다.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 정권은 국가 경제가 붕괴 위기로 몰리는 상황에도 긴축 재정 대신 시중에 돈을 풀고, 무상복지를 남발했다.

이번 시위로 중남미 각국이 긴축 정책을 포기하면 경기침체는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10년 전 중남미 GDP의 51% 정도였던 국가부채가 최근 78%까지 치솟은 것이 문제다. 블룸버그통신은 "중남미 투자자가 금융시장에서 다시금 커지는 정치적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희석 기자



'부채의 악순환'…중남미, 해결책은 있을까?


1980년대 중남미 부채 위기랑 비슷한 상황…정부 부채 GDP의 78%, 10년 전에는 51%

/사진=로이터
/사진=로이터

중남미가 부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유가 등에 기반한 정부 차입확대와 복지 정책이 지속됐지만 산업구조 개혁에는 실패했고 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못 했다. 석유·원자재 가격이 하락하자 경기 침체가 찾아와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됐고 시민들은 당장 더욱 가난해질 것을 우려해 복지 축소에 반대하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올해 중남미 국가들의 총 부채는 중남미 국내총생산(GDP)의 78%에 달한다. 이는 10년 전 51%에 비해 크게 오른 수치다.

2000년대 초반 원자재 열풍이 불면서 호황을 맞이했고,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각국이 복지를 확대한다며 빚을 늘렸기 때문이다. 중남미 국가가 2016년 국민 1명에게 지출한 사회복지비용은 894달러로, 2002년 453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사회복지지출도 GDP의 8.5%에서 11.2%로 뛰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원자재 열풍이 끝나면서 중남미가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최근 몇 년간 금리를 인상하면서 부채 부담은 더욱 커졌다. 불안해진 해외자본이 시장을 이탈하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지난해 3월까지 달러당 20페소 수준을 유지했지만 현재는 달러당 58페소를 넘긴 상황이다.

올해 들어 금리는 인하됐지만 이미 중남미 경제는 불황에 빠졌다. 중남미의 올해 평균 성장률 전망치는 0.2%로, 지난 5년간의 0.6%에 비해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이는 1980년대 중남미 경제를 붕괴시킨 '중남미 부채 위기'와 비슷한 모습이다. 1970년대 고유가에 힘 입어 연 평균 4.1%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중남미 국가들은 저금리 기조 속 해외 은행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손쉽게 빌릴 수 있었다. 정통성 없는 군부독재자들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산업구조 개혁과 인프라 투자를 명목으로 빌린 자금을 복지 지출에 사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미국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19%까지 올리면서 중남미는 부채 상환 능력을 상실했다. 산업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장기 성장 동력도 부족한 가운데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지게 됐다. 1975년 중남미의 대외채무는 750억달러였지만 1983년에는 3150억달러로 4배 가까이 뛰었다. 결국 1982년 멕시코가 디폴트를 선언, 다른 국가들도 그 뒤를 이으면서 위기가 발발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이에 대해 "(부채 위기로) 쿠바를 제외한 중남미의 모든 독재정권이 민주적으로 뽑힌 정권으로 교체되며 끝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28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당선되자 한 지지자가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로이터.<br>
28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당선되자 한 지지자가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로이터.<br>
문제는 이번에는 부채 위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저소득층이 빈곤에 시달리면서 막대한 부채를 줄이려는 정부의 개혁에 대한 반발도 심해지고 있다. 칠레 정부는 최근 지하철 요금 50원을 인상했다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이를 철회했다.

2012년 경기가 둔화하면서 복지 축소를 공약해 당선됐던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복지 정책 강화를 약속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선 후보에게 28일 치러진 대선에서 완패해 대통령 자리를 내줬다.

긴축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생활고가 겹치자 아르헨티나 시민들이 정권 교체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현재 아르헨티나 인구의 32%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과도한 정부 지출로 가난해진 이들이 복지 축소로 더욱 가난해질 것을 우려하면서 부채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남미 사람들이 불평등을 바로잡고 복지를 확대한다는 이유로 긴축정책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정치인들은 긴축을 시행해야하지만 강한 반발에 쫓겨날 처지다"라고 지적했다.

정한결 기자



100년간 41번 개입...美는 왜 중남미 흔드나


200년된 '먼로주의' 아래 美뒷마당 중남미 문제 개입…최근들어 중·러 영향력 커지자 다시 견제 나서

/AFPBBNews=뉴스1
/AFPBBNews=뉴스1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지켜만 볼텐가?"

지난달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간 군사 충돌 긴장감이 커지자 미국은 이같이 말하면서 적극적 개입을 시사했다. 지금은 물러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11월 베네수엘라·쿠바·니카라과를 ‘독재정권 트로이카’로 불렀고, 지난 4월17일 피그스만 침공 기념일에는 "먼로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까지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이상 경찰국가 역할을 안할 것"이라며 각국에서 미군을 철수 시키면서도 중남미 문제 만큼은 '이웃집' 논리를 들이대며 끼어드는 것은 '먼로주의' 전통 때문이다. 이는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이 미국 독립 직후인 1823년 발표한 외교정책으로 '아메리카 대륙에는 유럽을 비롯한 외부세력이 간섭해선 안된다'는 내용이다. 당시만 해도 유럽이 미국보다 훨씬 강했기에, 미국의 안보를 위해 뒷마당을 적극 보호해야한다고 느낀 것이다. 이후 유럽이 1·2차 세계대전으로 시달리는 사이 강해진 미국은 먼로주의 등을 기반으로 중남미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해 왔다.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비롯한 중남미 각국의 자원들, 미국 다국적회사들의 중남미 투자 확대 등도 미국의 자연스런 개입을 정당화했다. 때로는 중남미 개별국가의 쿠데타 용인과 무기수출 등 우회지원, 직접적인 군사개입 등을 통한 정권 교체도 불사했다.

미국은 이후 약 200년간 먼로주의 전통 아래 중남미를 자국 문제와 비슷하게 다뤄왔다. 미 하버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1898년부터 1994년까지 96년간 미국이 개입해 남미 정권교체를 성공시킨 사례만도 41차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직접적 개입은 17차례, 간접적 개입은 24차례였다.

미국의 이러한 먼로주의가 극에 달한 것은 미소 냉전시대이다. 이 중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는 미국과 소련간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 당시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카스트로 좌파 정권이 탄생하면서 쿠바는 소련과 손을 잡기 시작했고, 급기야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미국도 핵전쟁을 준비했던 것이다. 당시 소련의 배치 철회로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이후 미국은 중남미에서 사회주의가 득세하는 것에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은 80년대 들어서도 엘살바도르 내전에 친미 성향 정권을 지원했고, 같은해 니카라과에서도 정권 전복을 시도했다.

최근들어 미국의 중남미 개입이 다시 노골화 하는 데는 베네수엘라를 둘러싸고 벌어진 원유 갈등이 터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그동안 반미성향을 띄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다수의 미국 정유사들이 베네수엘라 원유에 의존하는 데다가 멕시코만에서 각종 시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페데베사(PDVSA)가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한 미국 법인 시트고(Citgo)가 미국내 3개 공장을 운영하고 수천명을 고용하는 등 영향력도 컸다. 하지만 반미 정권이 미국 정유사의 시추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고, 급기야 2014년 이후 경제난에 빠진 베네수엘라가 러시아에 빚진 170억달러에 달하는 차관을 갚기 위해 시트고 지분까지 넘기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다.

그 사이 베네수엘라는 중국으로부터 500억달러를 투자받아 에너지 협력을 구축했고, 러시아가 전략핵폭격기를 배치하고, 차관을 원유 채굴로 대신 갚는 등 에너지 동맹도 강화했다. 그러자 미국이 아예 정권 교체 수순에 돌입한 셈이다.

올해들어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대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내세우며 베네수엘라를 둘로 갈라놨고, 시트고의 배당금을 베네수엘라로 유입되지 못하게 막는 등 경제제재에 군사개입까지 경고했다. 지난 4월엔 쿠바와 니카라과도 베네수엘라 지원 등을 이유로 금융 및 여행 제재 등을 시행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반미 성향이었던 우고 차베즈 전 대통령이 지목한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불편하게 여겨온 미국이 최근 경제난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틈타 정권교체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앞서 2002년엔 차베즈 대통령 반대 세력을 지원해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강기준 기자



칠레의 분노는 50원이 전부가 아니다


교통비 월 소득 20% … 잦은 공공요금 인상 불씨
GDP 2만달러 달하지만 … 빈부격차는 최대
'남미의 오아시스' 이면에 숨겨진 불평등

2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위대가 방화를 벌이는 모습. /사진=AFP&lt;br&gt;
2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위대가 방화를 벌이는 모습. /사진=AFP<br>

"세계가 '진짜' 칠레를 볼 수 있어서 기쁘다. 대통령이 해외에 세일즈하던 그 완벽한 칠레가 아니라 말이다." (자비에르 아글리오, 25세, 산티아고 시위 참여 중 NPR과의 인터뷰 중)

"우린 1%를 위한 대통령을 갖고 있다." (줄리오 곤잘레스, 칠레 최대 뉴스사이트 '에몰' 기사 댓글 중, 2000여개 넘는 '좋아요'를 받음)

"오랜 시간 조용히 견디며 침묵해왔던 우리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대니얼 만수이, 칠레 국립사회과학연구소(IES) 선임연구원, 에몰과의 인터뷰 중)

'남미의 오아시스'가 무너졌다. 지하철 요금 30페소(50원)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시위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며 전국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남미 최대 부국이자 안정적 민주주의까지 정착한 나라로 꼽히던 칠레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두고 '예상치 못했다'는 해외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거리에 나선 국민들은 "이것이 바로 칠레의 현실"이라고 외친다. 이번 칠레 시위는 빈부격차 확대가 글로벌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전세계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교통비가 월 소득 20%인데 … '50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2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도심 상공에서 바라본 반정부 시위대 모습.
2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도심 상공에서 바라본 반정부 시위대 모습.

칠레 반(反)정부 시위는 지난 6일 산티아고지하철공사가 교통 혼잡 시간대의 지하철 요금을 기존 800칠레페소(약 1288원)에서 830페소(1366원)으로 인상을 발표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그러나 단돈 30페소(50원) 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1월에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을 20페소 인상했고, 12년간 지하철 요금은 두 배 이상 올랐다. 심지어 이번 인상안에는 지하철뿐만 아니라 버스비도 검토됐고,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발표한 지 몇 주 만에 나온 터였다.

칠레의 한 달 최저임금은 30만페소(약 48만원)에 불과하며, 월 소득이 550달러(약 64만원) 이하인 노동자는 절반을 넘는다(칠레 국립통계연구소). 산티아고 주민들의 상당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최대 2시간이 걸려 출퇴근하며, 매달 소득의 20%가량을 교통비에 쓴다. 잦은 교통비와 공공요금 인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후안 안드레스 폰테인 경제부 장관의 "돈을 더 내기 싫으면 일찍 일어나면 된다"는 말은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14일 학생들을 주축으로 시작된 시위는 도심 곳곳으로 확산됐고, 평화 시위를 군대가 진압하는 영상이 SNS에 퍼지며 반발은 더욱 커졌다. 노동자까지 합세하며 시위는 지하철 요금 인상뿐만 아니라 시위대 폭력 진압·칠레 정부의 이중성과 위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격렬 시위대가 방화나 약탈을 벌이기도 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18일 밤 칠레 정부는 산티아고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무장 군인을 배치했고, 오후 10시~오전 10시 사이 통행금지령까지 내렸다.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것은 칠레가 민주화된 1990년 이후 29년 만이다.

당황한 칠레 정부는 19일 지하철 요금 인상안을 철회한 데 이어 22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저임금 및 연금 수령액 인상, 부자 증세 등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또한 공공서비스 요금을 동결하고, 의료비 국가 부담을 높이며, 공무원 수와 임금을 줄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칠레노동자연합(CUT)을 포함한 20개 단체가 23일 예고대로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시위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칠레 인권위원회(INDH)에 따르면 지난 18일 이후 시위 도중 최소 18명이 숨졌으며, 535명이 부상했고, 2410명이 군과 경찰에 체포됐다.


◇1인당 GDP 2만달러 달했지만 … '남미의 오아시스' 뒤에 가려진 불평등

(산티아고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20일 (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던지고 있다.   &#169; AFP=뉴스1
(산티아고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20일 (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던지고 있다. © AFP=뉴스1

칠레 시위가 유독 관심을 받는 이유는 칠레가 잡음이 끊이지 않는 중남미에서 '살만한 나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칠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6078달러로 남미국가 중 우루과이에 이어 2위였고,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GDP는 2만5700달러에 달했다. 2010년 남미 국가 중 처음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국가도 칠레였다.

정치적으로도 1990년 군사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 민주화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나라로 꼽혔다. 로이터통신은 칠레를 "청렴한 통치와 투명성, 투자자 친화적인 환경으로 남미의 총아로 불린다"고 전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칠레를 '남미의 오아시스'라고 칭해왔다.

그러나 시민들이 분노한 지점은 '과연 누구를 위한 오아시스냐'는 의문이었다. 화려한 칠레의 성장 이면에는 극심한 불평등이 자리한다. 칠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빈부격차가 최고 수준에 달한다. 소득 격차는 OECD 평균보다 65%가량 크다. 지난해 칠레 정부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최상위층 소득이 최하위층 소득보다 13.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 의지가 거의 없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칠레의 문제는 자원 부족이 아니라 시민들에 대한 의무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17년간 칠레를 장악한 군사 정권은 자유시장 경쟁을 장려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과 경제정책을 뜯어고쳤다. 이는 군사 독재가 끝난 이후에도 지속됐다. 아직도 칠레의 정부 재정지출 규모는 OECD 국가 중 바닥 수준이다.

◇억만장자 대통령과 "일찍 일어나라"는 장관 … 누구를 위한 오아시스인가

(산티아고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20일 (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대의 방화로 버스가 불에 타고 있다.  &#169; AFP=뉴스1  &lt;저작권자
(산티아고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20일 (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대의 방화로 버스가 불에 타고 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49세 변호사인 엔리케 아라야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 도심은 고급 아파트단지, 개인 병원, 사립 학교 등으로 가득 차 미국의 맨해튼과 비견돼 '산해튼(Sanhatton)'으로 불릴 정도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난 공공병원이나 공립학교 등은 부족한 지원금과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환자와 학생들로 골치를 앓아왔다.

로이터통신은 "시위대는 그들이 높은 교육 비용, 보건시스템, 주택임대료, 공공요금에 시달려왔으며, 민영화된 연금제도는 급여도 적은 데다 종종 지급이 연기되기까지 해 불만을 키웠다고 호소한다"고 전했다.

시위 초반 국민감정과 유리된 정치인들의 태도 또한 문제였다. 시위가 격화되기 전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대가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됐음에도 "전쟁을 치를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고 군대를 동원해 강경 진압했다. 억대 자산가 출신인 그가 서민 시위대의 울분을 이해할 수 있냐는 비판도 인다. 앞서 언급한 "일찍 일어나라"는 경제부 장관의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산티아고 소재 사립대학 유니버시다드 마요르의 로드리고 페레스 개발경제학 교수는 "비슷한 불평등 수준을 지닌 나라도 있지만, 칠레의 경우는 정부가 재분배나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 아무것도 해오지 않았다"며 "칠레 인구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시민들도 사태를 빠르게 인식하게 됐고, 이는 (정부가) 시민들의 눈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강민수 기자



부정개표에 자금유용…부패에 일어난 민심


4선시도 대통령 '변화요구'하는 볼리비아…정부의 자금유용의혹에 1년 가까이 시위 지속 중인 아이티

25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한 시위 참여자가 조커 분장을 하고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로이터
25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한 시위 참여자가 조커 분장을 하고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로이터
남미 볼리비아와 아이티에선 부정개표 논란과 정부의 자금유용 의혹으로 시작된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시민들은 그간 지속돼 온 부패와 독재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 등에선 수 천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선거관리당국의 석연찮은 발표에 이들은 대선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각 지방 선거재판소 등을 에워싸고 들고 나온 솥과 냄비를 두드렸다. 야권 성향이 강한 볼리비아 최대 도시 산타크루스에선 대중교통 운행과 학교 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23일부터는 야권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무기한 총파업도 계속되고 있다.

볼리비아의 대선투표 개표는 지난 20일 치러졌다. 이날 선거관리당국은 아무런 이유없이 개표 결과 발표를 중단했다가 하루 만에 1,2위 격차가 갑자기 늘어난 결과를 공개해 개표조작 의혹을 키웠다. 투표 마감 4시간 뒤인 저녁 7시45분쯤 공개한 개표(83.76%)에서 두 후보의 격차는 7.12%포인트에 불과했지만 갑자기 다음날 오후에 두 후보 간 격차가 10%포인트로 벌어진 것이다. 볼리비아는 대선 1차 투표에서 한 후보가 50% 이상을 득표하거나 40% 이상을 득표하고 2위와의 격차가 10%포인트 이상이어야 결선 없이 당선을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볼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시위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모랄레스 대통령의 당선을 공식 선포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6년 원주민 출신으로는 처음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돼 14년째 집권 중이다. 그는 집권 이듬해인 2007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연임을 가능케 했고, 올해 대선 출마에서도 '대통령의 3선 연임 제한 규정은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해 4선에도 도전하게 됐다.

계속된 장기집권 시도에 지친 시민들은 점점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들어 끊이지 않았던 산불에 모랄레스 대통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민심은 더욱 악화했다. AP통신은 "특히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변화를 향한 요구와 반(反) 모랄레스 정서가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에 있는 한 교회에서 시민들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에 있는 한 교회에서 시민들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아이티에서도 주말마다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거의 1년간 지속됐던 반정부 시위에 아이티는 극도의 혼란상태다. 연료 부족으로 대중교통은 운행을 중단했으며 병원과 기업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학교도 거의 휴교에 들어가 수백만 명의 아이들은 동네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UN에 따르면 아이티 전역에서 시위대와 경찰 간 유혈 충돌로 인해 적어도 3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티 반정부 시위 역시 정부의 부패가 시발점이 됐다. 지난해 11월 아이티에서는 정부가 카리브해국가 석유동맹 '페트로카리브'를 통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수십억달러를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가 사건에 연루된 관리들을 조사하지 않자 반정부 시위가 촉발됐다.

1년 가까이 계속된 시위에 아이티 시민들은 미국의 개입을 바라는 상황. 반정부 시위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별 관심이 없다"면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이티 국민들을 버리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되면 더 이상의 폭려과 불안을 막기 위해 시민과 정부 간 대화를 압박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아이티계 미국인 선거구가 많은 플로리다의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아이티에는 민주주의와 선거, 법치가 있다. 그들이 누구를 지도자로 선택하느냐는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달려 있다"며 선을 그었다.

김수현 기자



다시 좌회전, '페론주의'는 아르헨을 구할까


빈곤율 35%대·인플레이션 50%대…
중도좌파 페르난데스 새 대통령에
IMF 경고 내리는 등 금융시장 불안
중앙은행은 달러 구매한도 대폭↓

1월 1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AFP
1월 1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AFP

"환멸을 느끼는 중산층과 좌파에 열광하는 젊은층, 분노를 키운 빈곤층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 르네상스가 나타나고 있다"-워싱턴포스트(WP)

2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은 4년 만의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중도좌파연합 '모두의전선' 소속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는 48.1%를(개표율 97% 상황) 득표해 중도우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40.4%)을 누르고 당선됐다.

35.4%까지 치솟은 빈곤율, 연 50%가 넘는 인플레이션, 낮은 임금과 '빚도 못 갚는 나라'라는 오명 속에, 아르헨티나의 부유했던 20세기 초를 떠올리게 하는 '페론주의'를 내세운 페르난데스다.

△페론주의, 향수의 대상? 경제파탄의 원흉?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점 앞에 다리를 다친 한 남성이 누워있다/사진=로이터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점 앞에 다리를 다친 한 남성이 누워있다/사진=로이터

페르난데스 당선자가 앞세운 페론주의란 1940년대 후안 페론 대통령과 에바 페론 영부인의 정치 활동 전반을 일컫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페론 전 대통령은 1946년 집권해 정치적으로 민족주의와 중앙집권화, 반엘리트주의를 내세웠고 경제적으로는 임금인상, 복지확대, 노동자 권한확대를 표방했다. 그래서 산업화와 국가경제 성장, 독재와 부패라는 장·단점이 뒤섞여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한쪽에선 페론주의를 무분별한 복지 확대, 임금인상 등 경제적 포퓰리즘의 원조로 해석한다. 페론주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임금을 연 20%씩 올리고 복지를 확대하면서 국가 빚이 폭증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저소득층 임금을 올리고 복지, 교육 등을 확대해 아르헨티나 국민총생산(GDP)을 127% 성장시키고 빈곤율을 낮췄다는 평가도 있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일본보다 잘 살았고, 프랑스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굴렸다. 1960년대까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임금 수준이 가장 높았고, 중산층이 전체 인구의 40%까지 늘기도 했다.

앞서 마크리 현 대통령은 중도우파로서 "포퓰리즘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겠다"는 슬로건으로 당선됐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채와 인플레이션 수준은 과거와 비슷한데 임금이 억제되면서 국민의 분노만 커졌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마크리 대통령이 여론 눈치를 보면서 과감한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시장은 불안해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모두의전선' 소속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오른쪽) 대통령 후보가 러닝메이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임 대통령과 24일(현지시간) 선거 캠페인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아르헨티나 '모두의전선' 소속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오른쪽) 대통령 후보가 러닝메이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임 대통령과 24일(현지시간) 선거 캠페인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복지 확대 등을 내세운 페르난데스가 당선되기 전부터 금융시장은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 8월 대선 예비선거에서 페르난데스가 압승하자 다음날 페소화는 30% 이상 폭락했다. 이달 13일 대선 1차 토론회 다음날에는 신용평가사 피치가 아르헨티나 신용등급을 기존 'CCC(상환 불가능성 있음)'에서 'CC(상환 불가능성 높음)'로 2개월 만에 강등했다.

페르난데스의 당선 이후인 이른 28일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지난달 1일부터 적용하던 달러 구매한도(월 1만달러)를 월 200달러로 대폭 줄였다. 가뜩이나 불안한 외환시장을 틀어막는 강경 조치이다.

앞서 아르헨티나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있는 IMF(국제통화기금)는 "아르헨티나 채권투자자들이 가파른 손실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 투자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페르난데스의 공약대로 복지가 확대되고, 긴축이 완화되면 아르헨티나의 상환 능력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IMF 채무불이행 전력이 8번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페르난데스 당선자는 "IMF가 요구한 긴축정책 때문에 아르헨티나 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주장하며 IMF와 구제금융 재협상을 하려고 한다. IMF는 아르헨티나에 지원하기로 한 560억 달러 중 120억 달러의 집행은 미루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정부는 2021년부터 시작되는 상환 시기를 미뤄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총 외채는 2800억 달러(280조 원)가 넘는다.

한편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긴급 수혈'을 기다리고 있다. 대중들은 페르난데스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과거 대통령 8년 재임 시절 부패 문제로 정권을 넘겨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내세웠음에도 그에게 표를 줬다. 체육관을 운영한다는 한 시민은 투표 전 WP에 "지난 1년간 매출이 20% 떨어졌다"며 "마크리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크리스티나가 부패했단 걸 알지만 페르난데스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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