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칠흑같던 삶에 한줄기 빛"간첩누명 이사영씨 고문상흔 ‘사진치유’

  • 뉴스1 제공
  • 카카오톡 공유하기
  • 카카오톡 나에게 전송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2019.10.31 06:05
  • 글자크기조절
  • 의견 남기기

유신때 간첩 몰려 15년 억울한 옥살이…청장년기 삶 실종
오늘부터 옛남영동 대공분실서 간첩조작 파해자들과 사진전

울릉도 간첩사건 피해자 이사영씨 © 뉴스1 서혜림 기자
울릉도 간첩사건 피해자 이사영씨 © 뉴스1 서혜림 기자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너 일본에 있는 형이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나 줬지? 그거로 이북방송 들었지?"

"전혀 없습니다."

고장난 유성기처럼 똑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일주일 내내 고문을 받은 이사영씨는 한순간 정신줄을 놓았다. "내가 그랬다"고 자백해버렸다.

200명의 직원들 둔 섬유공장 사장이었던 이씨는 하루 아침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남녀의 성전환을 빼고는 모든 게 가능했던 무소불위의 초법적 권력기관이었다. 대법원에서 15년을 선고받은 이사영씨는 14년9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간첩이라는 누명은 그의 30~40대를 지워버렸다.

"억울하지. 지하니까 밖은 보이지도 않고 낮과 밤 구분도 안됐지. 누구한테 말해도 내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어."

박정희 유신정권의 초기이던 1974년 2월 새벽, 36세의 공장 사장이 갑자기 서울 동대문구 중앙정보부 이문동 분실로 납치됐다. 살기등등한 건장한 사내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이 사장을 꽉 잡고 지프차에 밀어넣었다.

이사영씨(81)에게는 30대부터 50대까지 청장년기의 기억이 암흑이다. 1987년 세상에 나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불안했어. 혼자 가면 이상해 어딜가도. 좁은 공간에서 거의 15년을 살다보니 마음도 좁아지고 세상을 잘 몰랐어. 그런데 막상 나오니까 세상이 확 열려버렸어. 불안했지."

생질의 봉제공장에서 미싱일을 하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비디오가게도 운영해봤다. 유치원의 노란차 운전도 하고 주차장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세상에 적응하기는 역시 쉽지가 않았다.

"대인 관계가 아직도 순탄하지가 못해. 모임에 가더라도 내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 아마도 송두리째 잃어버린 15년의 삶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

국가 공권력에 의해 망가졌던 그의 삶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 사진기를 쥐고 세상을 구경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그냥 죽고만 싶었던 고문 현장 이문동도 찾아가고 수감됐던 서대문 형무소도 돌아봤다. 그가 운영했던 공장 터에도 갔다.

"바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사진을 찍은거야. 햇빛이 저기 있잖아. 왜 절망적인 상태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이 검게 보여. 정말 암담해. 희망이 전혀 없는 상태 말이야. 그래도 지금은 내 삶에 햇빛이 있어."

이사영씨가 찍은 이문동 사진(공감아이 제공)© 뉴스1
이사영씨가 찍은 이문동 사진(공감아이 제공)© 뉴스1

지금은 없어졌지만 비슷한 건물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하에서 그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사진에 담았다. 전문사진가는 아니지만 그가 렌즈를 바라보는 방식은 진짜였다.

"널리 알려주고 싶어. 어떻게 국가가 아무죄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 잡아다가 파괴시킬 수 있나. 국가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줘야 하는 거 아닌지. 너무도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야. (나 말고) 나머지 문제들도 다 풀어줘야해."

당시 박정희 정권은 재일교포들과 연루된 47명을 조총련과 연관이 있다고 조작하고 간첩 누명을 씌워 감옥에 잡아 넣었다. 1974년 2월15일. 이른바 울릉도간첩단 사건이다. 이 중 3명은 사형을, 나머지는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우리 형은 간첩이랑은 관계도 없고 일본에서 조용히 사업하던 사람이었어. 울릉도가 뭔지도 몰랐어."

이사영씨는 2012년 8월 재심이 결정돼 2014년 1월29일 대법원으로부터 결국 무죄를 확정받았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숨진 공간이 아직 선명히 남아있는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5층. 그곳에는 방마다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한 피해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의 사진도 벽에 가득 걸려 있다.

이씨의 발걸음은 고문 현장으로, 트라우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그런 곳들에서 사진찍기로 서서히 자기치유를 시작했다. 마치 수도자가 고행을 통해 구도의 길을 가듯이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시켜 갔다.

"처음에는 가기 싫더라고. 옛날 생각 나잖아. 그런데 마음이 어쩐지 몇번 가니까 떨린다고 해야하나. 처음 갔던 그런 기분이 없어졌어. 임종진 선생님이랑도 몇번 갔어"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는 '지금 여기에'의 의뢰를 받아 3년 동안 간첩조작 고문 피해자들과 동행했다. 임 대표는 "무섭거나 두려워서 회피했던 것을 다시 바라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를 마주하게 하고 싶었다"며 "자신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건지에 대해 세상에 전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40여년이 흐른 후 다시 가본 이문동. 고문받던 중앙정보부 자리는 헐려 잔디밭으로 변했다. 터의 일부를 간직한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들어가 아픔을 대면했다. 당시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였던 곳을 다시 찾아 셔터를 눌렀다.

"검사가 화를 내면서 다시 이문동 가고 싶냐고 그랬어. 거기는 죽어도 가기 싫었지. 아무 것도 모르는 나보고 서류뭉치더미를 주더니 그대로 쓰래. 밤새 뒤져가면서 형무소에서 썼어. 손발이 추워서 퉁퉁 부었지."

이사영씨에게 이제 사진은 치유가 됐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꼭 바깥에 가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진을 찍는다. 이제는 그를 따라오는 형사도 없고 갑자기 들이닥칠 지프차도 없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지금여기에'는 31일부터 11월17일까지 민주인권기념관 5층(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간첩조작사건으로 고문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자기회복 사진치유전을 개최한다. 공감아이가 기획했다. 이사영를 비롯해 간첩조작사건 고문 피해자인 강광보, 김순자, 고(故)김태룡, 최양준씨의 자기치유적인 사진이 옛 대공분실 5층에 걸린다. 전시 제목은 '나는 간첩이 아니다-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다.

'나는 간첩이 아니다-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전시 중 이사영씨 섹션. © 뉴스1
'나는 간첩이 아니다-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전시 중 이사영씨 섹션. © 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머니투데이 주요뉴스

'여의도 통개발' 접었다..시범아파트 35층 재건축 승인할 듯

베스트클릭

오늘의 꿀팁

  • 날씨
  • 건강쏙쏙

많이 본 뉴스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퀴즈 이벤트
부꾸미
사회안전지수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