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엔 끔찍한 그림, 소주병엔 여자 연예인…왜?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담뱃갑에는 끔찍한 경고 그림이, 소주병에는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붙어 있다. 담배와 술은 모두 발암물질로 분류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 둘을 대하는 태도의 온도 차가 크다. 유독 음주 행위 등 술 문화에 관대해 '술 권하는 사회'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정부가 이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소주병 등 주류 용기에 연예인의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개선하기로 하면서다.

이영애·이효리·아이유·수지…소주병에 붙은 연예인 사진, 음주행위 미화?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술병 등 주류 용기에 연예인 등 유명인의 사진을 붙이지 못하도록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류 용기에 연예인 사진을 붙여 광고하는 것이 음주행위를 미화한다는 판단에서다.

주류 광고에 대한 기준은 현행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제10조를 따르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제10조는 '음주행위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표현'을 금지하고 있으나, 술병 광고 등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동안 국내 주류기업들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여성 연예인들을 소주 광고 모델로 발탁해왔다. 하이트진로 소주 브랜드 '참이슬'은 1대 모델인 이영애를 필두로 황수정, 박주미, 김정은, 최지연, 김태희, 성유리, 남상미, 하지원, 김아중, 이민정, 문채원, 공효진, 아이유, 아이린 등을 내세웠다. 롯데주류 '처음처럼'도 이영아, 구혜선, 이효리, 유이, 고준희, 신민아, 수지 등 여자 연예인들을 모델로 기용했다.


이 때문에 주류 회사가 앞장서서 음주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됐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명인 사진을 술병에 붙이는 곳은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부터 알코올을 담배 성분인 비소, 카드뮴과 같이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상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5일 국정감사에서 "담뱃갑에는 암 환자 사진이 붙어있지만 소주병에는 여성 연예인 등 유명인의 사진이 붙어있다"며 "담배와 술 모두 1급 발암물질이며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암,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

한국, 음주로 하루에 13명 사망…사회적 비용 약 10조원

━

한국의 음주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의 고위험 음주율은 2018년 14.7%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증가했다. 고위험 음주율은 1회 평균 음주량이 남자는 7잔 이상, 여자는 5잔 이상이고 주 2회 마시는 걸 뜻한다.

보건복지부가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를 통해 분석한 결과 2017년에 알코올성 간 질환 등 음주로 숨진 사람은 총 4809명으로 조사됐다. 하루에 13명이 숨진 셈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3년 기준 9조4524억원으로 추산됐다. 2017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 범죄의 30.35%가 음주상태에서 발생했다. 스스로 상처를 가한 환자의 42.0%는 음주와 관련 있다는 게 질병관리본부 통계다.

"소주병 규제 환영, 담뱃갑처럼 경고 그림 넣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은 소주병 광고 규제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음주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어서다.

직장인 김모씨(28)는 "담배보다 술이 더 문제"라며 "음주 사고에 비하면 담배 피워서 난 사고는 새발의 피다. 이 기회에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소맥을 수십잔 먹는다는 등 '술부심'(술+자부심)을 부리는 것도 규제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직장인 박모씨(24)도 "음주 행위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건강에도 안 좋은데 그동안 너무 관대했던 거 같다. TV에서도 담배는 모자이크하는데 술 마시는 건 그대로 보여주지 않냐. 우리 사회는 술에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술병에 연예인 사진을 삭제하는 대신 담뱃갑처럼 경고 그림을 넣자는 주장도 나온다. 누리꾼 bang****은 "우리나라처럼 술에 관대한 나라는 없다. 소주병에도 담뱃갑처럼 간암, 식도암 등 질병 사진을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남 의원은 "현재 금연 공익광고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음주폐해도 TV매체 등을 활용한 홍보가 필요하다"라며 "금연예방사업의 1%도 되지 않는 음주폐해 예방사업 예산을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