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형 퇴직연금 줄 돈이 없다" 미국 기업들에 무슨일이

/AFPBBNews=뉴스1

미국이 올해 세 번이나 금리를 내리면서 기업들의 퇴직연금 역풍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금 운용 수익률은 점점 떨어지는데, 지급해야 할 ‘빚’은 불어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아예 지급 방식을 바꾸거나 빚을 내 적립금을 마련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인하하는 등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미 기업들의 퇴직연금 운용 압박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50만명이 넘는 산업계 종사자들이 퇴직연금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달 초 GE(제너럴일렉트릭)이 2만여명 임직원의 퇴직연금 지급을 동결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GE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사 임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연금 총액만 918억달러(약 106조원)로 같은 기간 시가총액 660억달러(약 76조원)을 크게 웃돌았다. 결국 회사는 애물단지였던 확정급여(DB)형연금 제도를 동결한 후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키로 했다.


DB형은 근로자가 퇴직시 받을 연금액을 미리 정해놓고 적립금 운용을 회사가 책임지고 맡는다. 만약 연금 수익률 부진으로 부족분이 발생하면 이를 회사가 책임지고 메워야 한다. DC형은 직원들이 투자에 어느 정도 개입하고 운용 책임도 떠안는 방식이다.

GE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직원들에게 지급할 퇴직연금 부족금액이 224억달러(약 26조원)에 달한다. 이를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까지 줄인다는 계획이다.

GE 같은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2016년부터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기업들은 현재 기준금리 등을 기준으로 향후 연금 지급액을 정하는데, 저금리 때문에 점점 부담할 금액만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 증시가 올해 상승세를 보였지만, 퇴직연금은 통상 원금 보장률이 높은 채권 등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증시보다 금리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FT는 연준의 금리 인하로 장기금리는 물론, 미 채권금리 역시 하락 압력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말에는 30년물 국채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2%를 밑돌기도 했다. 올 3월만 해도 이 금리는 3.12%였고, 현재는 2% 초반대를 형성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에셋매니지먼트는 올 4월 기준 여전히 DB형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미 기업의 비중이 86%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나마도 종전 최고치인 91%에서 줄어든 규모이다. 보험통계업체 밀리맨은 GE를 비롯한 미 상위 100개 사기업들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연금 규모만도 총 1조6600억달러(약 1925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미 기업 대부분이 자구책을 찾지 않으면 퇴직연금이 폭탄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때문에 아예 저금리를 이용해 회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퇴직연금에 적립하는 기업들도 생겨난다. 미 운송업체 UPS와 페덱스는 이 같은 방식으로 빚을 져서 기업 최소 부담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적립하고 있다. 이같이 빚으로 퇴직연금을 조달하는 금액 규모가 지난해 270억달러(약 31조3000억원)로 전년 대비 20%이상 증가했고, 올 상반기에도 95억달러(약 11조원)을 기록했다. FT는 “미 공적연금도 지난 20여년간 기대치보다 낮은 수익률로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