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동상이목(同想異目)]선량한 갑(甲)을 위하여…

머니투데이
  •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 2019.11.06 04:42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글자크기조절
  • 댓글···
image
불륜, 출생의 비밀, 시한부 불치병, 복수 등 소위 막장요소가 없다. 웃기다 못해 때론 어이없고 황당하다. 사장은 어떻게 하면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면서 엉뚱한 아이디어를 줄줄이 내놓는다. 얼마 전 우연히 본 ‘쌉니다 천리마마트’란 드라마 얘기다. 알고 보니 이미 잘 알려진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대마그룹에서 좌천된 임원 정복동이 경기 봉황시의 적자투성이 대형마트에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천리마마트는 직원을 이력서도 없이 즉흥적으로 채용하고 고객이 아니라 직원이 왕인 곳이다. 곤룡포를 입은 직원이 고객만족센터에서 용상에 앉아 고객을 상대한다. 심지어 옆 마트가 더 싸니 그리로 가라고 안내한다.
 
과한 패러디와 비현실적 스토리가 이어지지만 좀처럼 채널을 돌리기 어렵다. 사장은 늘 마트를 망하게 할 궁리를 하지만 그 궁리가 역설적으로 마트를 살려낸다. 여러 황당한 아이디어를 짜내는데 이게 의도치 않은 참신한 ‘역효과’를 가져온다.

최근엔 ‘상생’을 풀어내는 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비싼 가격에 대한 고객들의 항의에 사장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마트에서 장을 보라”고 당당해 한다. 고객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점장이 나서 “사람들은 누구나 생산자고 소비자”라며 “천리마마트는 모두가 상생하는 건전한 경영방침을 갖고 있다”고 상생을 앞세운다. 협력업체 목을 조르는 최저가 경쟁은 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상생을 기반으로 한 만큼 고객들이 ‘아름다운 불편’을 감수해달라는 묘한 감동과 설득의 포인트가 있다.
 
물론 현실의 기업들이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가격경쟁을 한다는 식의 과한 설정과 풍자지만 여기서 기업 경영, 기업가정신과 관련한 교훈은 있다. 일단 갑(甲)은 악이고 을(乙)은 선이란 이분법에서 묘하게 이탈한다. 아울러 적어도 강요된 상생, 보여주기식 상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도 있다. 순수한 갑, 선량한 갑으로 인정받으면 갑질도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가 생긴다.
 
대부분 사람이 갑을관계를 불편해하거나 비판하면서도 일단 갑이 되길 희망한다. 그 이면에는 우월적 정신세계를 즐기고 싶은 의식이 작용한다. 갑들의 다양한 상생이 ‘이벤트’ 이상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포인트다.

수년 전 상생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소개한 인터넷에 나돈 에피소드가 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즐겁게 술 한 잔 하고 회비를 걷으려고 하는데,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가 대기업 5만원, 중소기업은 3만원을 내자고 제안했다. 중소기업 다니는 애들 힘들다는 게 그 이유다.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가 장난이라 생각하고 5만원을 냈더니 그 대기업 친구는 그럼 2차는 대기업이 쏠 테니 하청은 그냥 따라오라며 앞장을 섰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상생협력 보고대회’를 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정부가 대기업의 상생을 독려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만 대기업이 협력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라면 좋은 일을 하고도 ‘이벤트’ 이상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드라마로 돌아가면 우월적 갑의 강요된 상생보다 선량한 갑의 순수한 갑질이 더 이해될 수도 있다. 기업의 정신으로 범위를 넓히면 온갖 엉뚱한 이벤트 속에서 현실적 한계와 가능성을 뛰어넘는, 파격 그 이상의 마인드 전환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칼럼목록

종료된칼럼

오늘의 꿀팁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제 15회 경제신춘문예 공모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11/1~11/18)
블록체인

포토 /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