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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법무장관 급부상 추미애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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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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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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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세탁소집 둘째딸'·'추다르크'…DJ 인연 정계입문해 5선의원, 민주당계 최초 임기 완주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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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로 급부상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선 의원의 가도를 달려오는 동안 다양한 이력과 특색을 쌓은 정치인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세탁소집 둘째딸'이 소신 강한 판사가 되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민주당계 최초로 임기를 채운 최초의 당 대표까지 지냈다.

추 의원은 지난해 8월 대표 임기를 마치며 "임기를 다 채운 첫 번째 당 대표라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 수십년간 정치적 분열과 통합을 거듭해온 민주당의 아픈 역사를 끝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2016~2017년 촛불 정국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권교체 등 정치 격동의 한 가운데에 그가 있었고 그가 당 대표직을 완주한 것을 여권에선 매우 높게 평가한다.

당 대표 이후 지난 1년 여 동안 추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을 통해 의회외교 등 국제적으로 보폭을 넓혀가면서도 국무총리, 장관 등 문재인정부에서 역할 요청이 있을 때 언제든 헌신하겠다는 생각으로 지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세탁소집 둘째딸=대구의 한 세탁소 가게 둘째 딸로 태어난 추 의원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떠나 외가에서 자랐다. 가난을 가까이서 겪은 그는 열심히 살지만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법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판사가 된 추 의원은 1986년 1000여 명의 학생을 구속한 '건국대 사건' 당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등 100여 권의 책을 압수수색하겠다는 검찰의 영장을 기각했다. 그는 당시 "판사는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구 며느리=DJ는 1995년 추 의원을 영입하며 "세탁소집 둘째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정치 발전 없이는 사법 발전도 없다"고 정계 입문 이유를 밝히고,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추 의원은 당시 38세 여성이란 점에 판사 이력까지 더해 화제를 모았다. 최초의 여성 부대변인, 최초의 판사 출신 야당 정치인 등 '최초' 수식어가 뒤따랐다. 고향이 대구인 점까지 주목을 받았다. DJ는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추 의원 16대 총선 서울 광진을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후 정치권에서 꾸준히 주목받았다. 1999년에는 홍콩 '아시아 위크'지가 선정한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의 젊은 지도자 20인'으로 선정됐다.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 사진제공=더리더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 사진제공=더리더
◇추다르크=추 의원의 별명은 '추다르크'다. 1997년 대선에서 추 의원은 김대중 후보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전국을 누볐다. 특히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활약했다.

반(反)호남 정서 때문에 '대구에서 민주당 간판을 들고다니면 돌맞는다'는 우려에도 그는 꿋꿋이 유세 활동을 펼치며 DJ 지지를 호소했다. '잔다르크 유세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추다르크'의 시작이었다.

잔다르크 유세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남편이다. 혼자서 마이크를 잡고 지역감정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추다르크가 대구의 득표율을 바꿔놓진 못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했다.

◇소신=추 의원은 민주당에서 당적을 바꾼 적이 한번도 없다. 2002년 16대 대선까지만 해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돈독했고, 참여정부 탄생에도 공헌했다. 그러나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이미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사건에 대한 특검을 수용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거리가 생겼다.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DJ를 배신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탄핵 사태 때도 추 의원은 민주당을 버릴 수 없었다. 탄핵이 부결된 후에는 삼보일배를 통해 속죄했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조용히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 것도 속죄의 의미에 해당했다.

모든 것이 그의 강한 소신에서 비롯된 일들이었다. 그의 소신은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추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과 단독으로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 조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과 복수노조를 시행하고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되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문제였다.

민주당과 민주노총 등 야권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또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범위에 대해서도 모호성을 띠고 있어 논란이 일었다. 노동개악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야권은 '여당과 날치기했다'며 환노위 위원장인 추 의원을 비판했다.

하지만 추 의원에겐 '소신'이 있었다. 당시 비정규직으로 2년을 근무할 경우 무기계약직(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의 비정규직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노조 전임자 등을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 조정법 개정안의 통과 때문에 비정규직법 통과를 미룰 수 없어 강행했다는 것이다.

◇문재인=추 의원은 이제 '친문'(친 문재인) 주류 의원으로 꼽힌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들어가 친문 계열에 동참했다.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도 추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도왔고 문 대통령은 추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2016년 당 대표에 오르면서도 친문 주류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프로필]
△1958년 대구 출생 △한양대학교 법학과 학사 △24회 사법시험 합격 △춘천지법, 인천지법, 전주지법, 광주고법 판사 △제15~16대, 18~20대 5선 국회의원 △2016~2018 더불어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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