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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댓글살인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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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동희 사회부장
  • 2019.11.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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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하나의 젊음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그의 친구를 보낸 지 40일만이다. 그 죽음 뒤엔 포털이나 SNS(사회관계망)의 악성댓글(소위 악플)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타인으로부터의 공감에서 힘을 얻고, 비난으로부터 절망을 느낀다.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들은 이런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이며, 비이성적 악플에 절망한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일부 포털은 설리 사망 이후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연예기사에 댓글기능을 폐지했다. 절망에 노출되는 빈도를 줄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다른 포털이나 SNS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익명의 폭력을 멈추려는 시도에 대해 겉으로는 언론자유침해라는 대의명분을 내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이익이 숨어있다. 이를 숨기기 위한 구실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내건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정보통신망법의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를 '위헌'이라 결정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헌법 제21조 1항(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을 금과옥조로 삼는다.

어떤 경우라도 인터넷실명제는 위헌일까. 2008년 헌재의 또 다른 판결인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에선 인터넷 실명제를 합헌으로 봤다. 선거의 평온과 공정이 위협받아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 손실과 부작용을 방지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직선거법상 실명제는 합헌이라는 것.

인터넷실명제는 어떤 법익이 더 크냐에 따라 합헌일 수도 위헌일 수도 있다. 한 인간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가치는 없다. 한명의 인간은 하나의 우주다.
그 우주를 지키는데 어떤 더 귀한 가치가 존재할까.

언론의 자유도 인간의 생명에 앞서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포털 등이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에 원인을 제공하는 댓글정책에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유다.

헌법 21조 4항에는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돼 있다. 댓글의 자유는 이 헌법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렇지 못하면 방종이다. 현재의 포털 댓글은 방종을 방임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 기사의 댓글 정책은 OOO이 결정합니다.' '클린봇이 악성댓글을 감지합니다'라는 것은 '저희는 책임을 지지 않겠습니다'라는 포털 무책임의 다른 표현이다.

'모두의 책임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책임소재는 명확해야 한다. 포털의 책임을 다른 쪽에 넘기는 순간 이 문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된다. 그게 현실이다.

대안은 간단하다.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의 책임을 명확히 지우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익명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다. 실명제로 전환하거나 비실명 댓글 기능을 없애는 것이다. 우리의 실명제는 통제의 수단이 아닌 인권 강화의 수단이다.

포털 댓글의 실명제는 폐지됐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정보통신망법(제44조의5)에 정작 국민이 서슴없이 비판해야 할 정부 기관의 인터넷 가입은 실명으로 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언론의 자유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지, 약자에 대한 혐오와 지역·인종·성 차별과 반인륜적 댓글을 배설한 후 그 책임을 면해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또 이런 배설에 기대어 이익을 추구하려는 포털이나 SNS들의 책임회피의 피난처도 아니다.

젊은 연예인들이 죽음으로 몰리는 이 엄혹한 상황에서 그 피로 자라는 성장이 아름다운 꽃으로 필 수는 없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사회부장.
오동희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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