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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목(同想異目)]피는 물보다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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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 2019.12.04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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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자동차업계를 출입하던 시절, 집안 친척 제사에는 못가도 ‘청운동 할아버지’ 제사에는 빠짐없이 갔다. 매년 3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기일에 현대가(家) 패밀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 제사는 2015년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고 정 명예회장의 생전 자택에서 지내다가 2016년부터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한남동 집에서 지낸다.

당시만 해도 제삿날만 되면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정몽구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대중공업 대주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당시 새누리당 의원) 등이 좁은 언덕길 끝자락에 위치한 자택 정문으로 들어설 때마다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행여 누군가 차에서 내려 한마디라도 해주면 기자들은 더 신이 난다. 특히나 범현대가 내부의 경영권 분쟁 등 큰 이슈가 생기면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취재현장이다.

현대그룹은 고 정 명예회장이 이끌던 1990년대 말까지 부동의 재계 1위를 지켰다. 하지만 그의 작고 이후 2000년 터진 ‘왕자의 난’을 기점으로 분리와 분가를 거듭했다. 물론 현대해상화재보험, 현대백화점 등 일부 현대 패밀리는 집안싸움과는 관계없이 분리가 끝난 상태였다. 오늘날 ‘범현대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가가 아니더라도 ‘숙질의 난’ ‘시동생의 난’ 등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집안갈등이 벌어져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세상 사람들은 재벌가에서 분쟁이 벌어지면 “있는 사람들이 더 한다”고 비판을 하면서도 관음적 시선으로 은근히 즐긴다.

물론 갈등과 분열, 분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옛 한라그룹에서 떨어져 나간 자동차부품사 만도를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되찾을 때 정몽구 회장, 정몽진 KCC 회장 등 ‘몽’(夢)자 돌림 현대패밀리의 측면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만도 인수는 범현대가 내에서 이미 힘을 합치자는 공감대가 이뤄진 상태였다.

2002년 현대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해 출범한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오일뱅크, 현대종합상사 등을 인수하며 규모를 키웠고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간 집안 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도 결국 현대가의 품으로 돌아왔다.

현대가 사람들은 적통 문제와 사업적 이해관계 등을 놓고 갈등을 빚거나 신경전을 펼치면서도 창업주 ‘정주영’ 이름 앞에서는 존경과 애틋함을 감추지 못한다. 느슨하거나 불편해 보이면서도 ‘정주영의 현대’라는 향수와 상징성을 매개로 특유의 결집력이 발휘된다.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범현대가의 행보는 역시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HDC현대산업개발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다. 정지선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은 두산면세점을 품에 안았다. 재계에선 범현대가가 잃어버린 가족 찾기와 상호협력, 측면지원 등을 통해 ‘육(자동차)-해(조선)-공(항공)’을 아우르는 거대 재벌 집안으로 거듭났다는 평을 내놓는다.

HDC현대산업개발 안팎에선 벌써부터 범현대가 기업들과의 지분투자, 사업적 제휴 등 논의가 한창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정씨 일가 연합군의 교감과 지원사격을 전제로 한 분석이다.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협업과 측면지원의 가능성은 농후하다.

고 정 명예회장 슬하 9남매와 일곱 동생의 후손들은 이미 3세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 ‘아산’을 뿌리로 한 현대 패밀리들의 행보는 앞으로도 세대를 초월해 언제든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상징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계기로 범현대가 기업의 임직원과 가족들이 누가 뭐라지 않아도 ‘아시아나 비행기만’ 타는 불문율이 생길 수도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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