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차 타고 싶어서 타나"…5등급차 단속 논란

서울 사대문 안 녹색교통지역 배출가스 5등급 차량 단속 시행 첫 날인 1일 오후 서울시내 진입 도로에 단속 안내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1억4000만원. '녹색교통지역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단속 하루 만에 서울시가 차량 416대를 적발해 부과한 과태료(1대 25만원) 총액이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너무 가혹할 수 있다"고 지적한 가운데, 이 같은 과태료 부과가 5등급 차량을 운행하고 있는 서민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 '5등급 차량 제한' 강남·여의도 확대 예정…5등급 차량 기준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녹색교통지역 운행제한 및 미세먼지 시즌제 시행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도심 지역 내 자동차가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고 교통량을 총체적으로 관리해 지속가능한 서울교통의 미래를 열기 위해 지난 1일부터 '녹색교통지역 운행제한 및 미세먼지 시즌제'를 운영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9시까지 저공해 조치를 하지 않은 전국의 모든 5등급 차량이 한양도성(16.7㎢) 내 진입할 경우 과태료 25만원이 부과된다.


서울 도심을 시작으로 5등급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거리는 점점 좁아질 예정이다. 서울시는 오는 2021년부터 강남과 여의도까지 녹색교통지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내년부터 경남 창원·김해·진주·양산시에서도 5등급 차량 운행을 제한한다.

5등급 차량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목표다. 서울시는 최종적으로 녹색교통지역에서 5등급 차량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면 녹색교통지역 내 초미세먼지 배출량을 15.6%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은 경유차의 경우 2002년 7월1일 이전 기준이 적용된 차량이다. 가솔린 및 가스 차량의 경우 1987년 이전 기준이 적용된 차종이다.

◇서울시가 과태료 25만원 부과할 수밖에 없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서울시가 과태료를 25만원이나 부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량 운행 제한 위반에 관한 과태료 규정이 '지속가능 교통물류 발전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지속가능 교통물류 발전법'에 따르면 자동차 운행의 제한을 위반한 경우 기본적으로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적으로 서울시는 50만원의 2분의1 범위에서 금액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기 때문에 현재 2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서울시가 과태료를 매길 수 있는 최저 금액인 셈이지만, 여전히 과속(4~16만원) 등 다른 과태료와 비교하면 과도한 수준이다.

과태료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이 개정돼야 하는 상황이다. 5등급 차량의 수도권 통행을 제한하고 어길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미세먼지 특별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미세먼지 특별법은 자동차 운행제한 조치를 위반한 사람에게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문 대통령도 지난 3일 국무회의를 열고 과태료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경감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단속의 과태료 부분은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되면 10만 원 이하로 될 텐데 현재는 법 통과가 안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태료 25만원이) 너무 가혹할 수 있다"며 "서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다가가서는 곤란한 문제이니 법 통과를 위한 노력과 함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가능한지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누가 5등급 차 타고 싶어서 탈까"…비판 여론 계속

서울 사대문 안 '녹색교통지역 배출가스 5등급 차량 단속' 시행 첫 날인 1일 오후 서울시내의 도로에 단속카메라가 설치돼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과태료가 10만원 이하로 줄어들더라도 5등급 차량 소유주들이 경제적 부담을 피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적 사정 등 피치 못할 이유로 오래된 차량을 타는 사람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자체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는 배출가스저감장치(DPF, pDPF, DOC)를 부착하거나, 저공해 엔진으로 개조해야 한다. 또는 노후차를 조기폐차하고 다른 차량을 사야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해도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배출가스저감장치를 달거나 저공해 엔진으로 개조하는 경우 장치부착비가 일부 지원되긴 하지만, 자기부담금도 상당하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에 따르면 자기부담금은 저감장치 종류나 차종에 따라 최소 24만원에서 최대 103만원 수준이다. 다만 생계형 차량의 경우 자부담금 없이 전액 지원된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은 "가난한 사람은 서울에 살지 말란 건가", "누가 옛날차 타고 싶어서 탈까", "왜 서민을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여기냐", "서민 잡는 정책"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 냈다.

반면 환경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과태료를 부과했을 때 효과를 보려면 억제력이 있어야 한다"며 "과태료 예외 차량 리스트를 보면, 저감 장치 부착을 신청한 차량도 제외된다. 최대한 회피 수단을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사무처장은 "저감 장치 부착 사업을 안하면 일방적 규제라고 볼 수 있는데, 지원금 90% 지원하며 사업을 하고 있다"며 "하겠다고 했으면 예외없고 차질없이 해야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방식이 유지되거나, 향후 좀 더 강화된 방식으로 간다면 분명히 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첫날에 비해 단속에 걸리는 차량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시민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녹색교통지역 내에 있는 차량의 경우 보조금을 더 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태료 부과와 관련 다른 차량 관련 단속 수준인 10만원 선으로 낮춰달라고 정부에 건의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